돈도 시간도 부족한 청춘에게 다가온 달콤한 제안

조영준 2023. 7. 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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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61]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국내 단편 상영작 <몽중> 외 1편

[조영준 기자]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몽중>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1
<몽중>
한국 / 2023 / 19분
감독: 이하은

불면의 시대가 도래했다. '일한 만큼 벌자'라는 누군가의 말이 무제한 근로법을 만들어 냈고, 그 시기 제약회사 '몽중'에서 잠을 잔 만큼의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DRM이라는 신약을 개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위의 문구로 시작하는 영화 <몽중>에는 고된 삶으로 늘 돈과 시간이 부족한 현아(장세림 분)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전국체전 출전을 앞두고도 저녁 훈련에 참가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삶은 여유가 없다. 깨어나지도 못한 채로 병상에 누워있는 엄마를 간호하는 일은 물론, 당장 다음 주에 내야 할 월세를 벌기에도 한시가 아까운 상황. 영화는 당장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꿈을 팔 수밖에 없는 한 사람의 삶을 따르며 어둡게 비춰낸다.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현아는 친구 지민(송하진 분)의 소개를 받아 신약을 만들어낸다는 제약회사 '몽중'을 찾아간다. 그 자리에서 자신이 꿈을 팔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제안을 받게 되는 그녀. 꿈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신약 DRM을 만들기 때문에 꿈이 필요하다는 회사는 꿈이 A부터 D등급으로 나뉘고 높은 등급일수록 더 많은 신약을 생산할 수 있기에 그저 좋은 꿈만 꾸면 된다는 말로 현아를 유혹한다.

물론 회사의 달콤한 꼬드김과는 달리 영화 속 많은 장면들은 이들의 제안이 위험한 종류의 것임을 보여준다. 처음 꿈을 추출하던 날 계단에서 만난 남자의 핼쑥하고 핏기 없는 모습, 훈련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뒷골목을 배회하며 마약처럼 DRM을 찾던 친구 지민의 모습, 처음에는 몰랐지만 회사 바깥 후미진 곳에서 마주한 수많은 중독자들. 꿈을 추출하기 시작한 현아 역시 어느 순간부터 훈련 중에 악몽을 꾸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놓아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제안을 뿌리칠 수 없었던 것은 조금 먼 미래에 생길 부작용을 생각하기도 힘들 정도로 압박하며 다가오는 현재의 무게 때문. 심지어 그녀는 가불까지 미리 받고 계약서를 썼다.

영화 내부에서 꿈을 팔라던 회사의 제안은 영화의 바깥에서 하루빨리 꿈을 포기하라는 현실의 재촉으로 전환될 수 있다. 점점 더 긴 꿈을 꾸기 어려워지는 시대의 모습과 그 아래에 짓눌려 허덕이는 젊은 세대의 몸부림이 이 영화 속에 차분하면서도 서늘한 장면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영화 <몽중>은 꿈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와 두 번째 사전적 의미 모두를 가진 채로 그 사이에서 중의적인 모습으로 태어났을지 모른다.

"꼭 제 꿈을 팔아야 하는 것은 아니죠?"

자신이 꿈꾸던 미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던 꿈도 점차 질이 나빠지기 시작하고, 건강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현아는 자신에게도 어떤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직감한다. 이미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지민의 말에 따르면, 회사 몽중은 꿈이 아니라 잠을 빼가는 것이라고 한다. 줄어드는 잠의 크기만큼 신체적 부담이 더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며, 그것이 곧 담보한 미래가 망가지는 수순이 되는 것이다.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와 이미 작성해 버린 계약서. 현재의 상황은 과거의 상황에 비해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나빠졌을 뿐이다. 이제는 마음대로 잠을 잘 수도 꿈을 꿀 수도 없다. 혼자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 그녀는 처음에 자신이 담보했던 자신의 미래 대신 다른 누군가의 꿈과 미래로 대신하기로 마음먹는다. 처음부터 잠을 자고 있던 사람. 병원의 침대 위에서.

꿈을 팔아 (그것이 행위적 의미이든, 내일을 뜻하는 상징적 의미이든 간에) 현재를 살아보겠다는 한 사람의 모습만으로도 자신의 목적을 충분히 해내는 이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형식적인 방식을 통해 그 잔혹함의 정점을 그려낸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 동일하게 배치된 35초가량의 영상과 약간의 변주. 이 작품은 이 두 지점이 어떻게 상응하며 잃어버린 미래에 대해 울부짖는 지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제 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마이크로웨이브 러브>
ⓒ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02
<마이크로웨이브 러브>
한국 / 2023 / 27분
감독: 권찬영

"끝이 보이지 않는 긴 복도를 걷고 있는 것 같아요."

계속되는 공모전 탈락 소식과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는 전혀 무관한 업체로부터의 연락.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작가 지망생 지은(문지원 분)에게 어느 날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어떤 암호처럼 들리기도 하는 장음과 단음의 이 소리의 시작점은 집안에 있던 전자레인지. 전원 코드를 뽑아도 멈추지 않는 이 기계의 소리는 알고 보니 모스 부호로 걸어오는 그의 말이었다.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나를 오랫동안 지켜봐 온 존재처럼. 지은과 전자레인지, 두 존재는 그렇게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권찬영 감독의 영화 <마이크로웨이브 러브>는 인간과 기계가 소통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채워준다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품이다. 처음부터 아름답게 그려지지는 않는다. 시작점은 어둡고 좁은 방 안에서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꿈 하나만 바라보며 홀로 살아가는 젊은 세대이며, 그들의 삶 여백에 공허하게 남아있는 커다란 공백을 비춘다. 그 공간을 채워주는 존재로 선택된 것이 바로 기계, 전자레인지가 되는 셈이다. 사람의 눈과 코를 닮은 다이얼 두 개와 손잡이, 반짝거리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내부의 불빛. 영화는 두 존재의 만남과 그 사랑의 과정을 통해 관계의 형성과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가 사람과 기계를 만남의 주체로 설정한 것은 지은이라는 인물이 홀로 남겨진 방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 전자기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를 만나게 하기 위함이기도 할 것이다. 실제로 영화는 꼭 두 번의 그런 상황을 이끌어낸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공모전에 낙심한 지은이 전자레인지에게 관심을 쏟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와 마침내 공모전에 뽑히고 난 이후 행사장에서 만난 남자(박성환 분)와 호감을 느끼며 만나기 시작했을 때의 순간이다.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두 존재가 같은 공간에 있을 때는 서로를 바라볼 수 있지만 움직일 수 있는 쪽이 공간을 떠나게 되는 경우 홀로 남겨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하나의 경우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교감을 나눌 수 없는 경우, 즉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쪽은 자신의 시선이나 관심의 방향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상대가 바라봐주지 않을 경우 같은 공간에서조차 홀로 남겨지게 되는 상황이다. 감독이 이 두 가지의 경우 모두를 위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지은이 작가가 되고 난 이후 홀로 남겨지게 되는 전자레인지의 모습은 작가가 되기 전 혼자였던 그녀의 모습과 정확히 오버랩된다.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글을 읽어주지 않을 것 같다던 지은의 말이 역시 그녀를 바라볼 때 가장 행복하지만 자신을 돌아봐주지 않는 순간의 전자레인지 모습과 일치하는 이유다. 두 대상의 소통이 처음으로 이루어졌을 때 지은이 외로워 보여 말을 걸 수 있었다던 전자레인지의 말을 생각해 보면, 짧게나마 이제 다른 사람과 세상으로 인해 외롭지 않은 그녀가 기계에 불과한 그의 말을 들을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제 막 시작되는 자신의 새로운 기회와 챕터 속에서 과거의 소중한 것들(마이크로웨이브 러브와 같은)을 잠시 잊었던 사람이 신데렐라의 12시를 지나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홀로 남겨져 있던 소중함은 이제 다른 존재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지은이 주었던 사랑 속에서 자신이 따뜻해짐을 느꼈던 것처럼 이제는 반대로 자신이 따뜻함을 줄 수 있는 대상을 만나게 되었고, 그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건넬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이다.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도 떠나버릴 수 있는 사랑의 속성을 이 짧은 대화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마음을 파고든다.

"고마워, 나도 네가 없으면 그냥 전자레인지인 거잖아."

이제 사람은 두 번 다시 기계와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사랑이었음은 지금부터 한참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조금씩 더 크게 느껴갈 것이고,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사랑할 수 있었을 때를 진심으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전자레인지가 없으면, 자신 또한 그냥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지은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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