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2도]반쪽짜리 진실…사라진 절반은 땅속에
전사자 유해 발굴엔 호국 강조
학살 피해자엔 여전히 외면만
“할머니, 인간의 몸에는 206개의 뼈가 있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뭐가 그리 많아’라며 웃으시겠죠. 그러나 학살 현장에서 발견한 유해 가운데 206개의 온전한 뼈를 다 가진 사람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요. (…) 이 슬픈 풍경은 제게 역사와 기억에 대한 거대한 은유로 다가오곤 해요. 진실이란 학살 현장의 유해와 같다는 것을요.”
다큐멘터리 영화 ‘206: 사라지지 않는’에서 흘러나오는 내레이션이다. 스크린에는 땅에 잠들었던 유해가 막 깨어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2000년대부터 한국 사회에서 끊임없이 발굴된 뼈들이다.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 및 전쟁 실종자와 국가폭력 피해자다.
정부는 전자의 유해를 발굴해 생략된 의례 절차의 공백을 메운다. 국립묘지에 안장해 비정상적 죽음을 정상화하기도 한다. 일종의 장의사 역할을 하는 셈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2000년부터 시작된 ‘6·25 전사자 유해 발굴’과 2010년 추진했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등이 있다.
후자의 처지는 딴판이다. 대부분 국가폭력에 의해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나 오랜 시간 공적 담론에서 외면당했다. 2000년대 초 고조된 과거사 청산 열기로 일부 사례가 공식화됐으나 의도와 내용에서 전자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전사자 유해 발굴은 안보와 호국의 기치 아래 진행된다. 유해들은 국가를 위한 의로운 죽음의 표상이 된다. 반면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은 숨겨져 있던 사실을 폭로하고 관련 사건을 조사하기 위함이 크다. 진실을 규명하려면 사건의 실재 여부 확인이 필요하다. 구술자 등의 증언도 중요하나 가장 확실한 물증은 피학살자와 실종자들의 유해다.
스페인에서는 이를 ‘역사적 기억회복 운동’이라 일컫는다. 노용석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저서 ‘국가폭력과 유해 발굴의 사회문화사’에 "한국 역시 유해 발굴이 진행된 지역에서 잊힌 과거의 기억들이 언급되며 새로운 담론이 조성됐다"며 다음과 같이 썼다.
“그것은 전사자 유해 발굴과 같이 '중앙적'이고 '국가적'이지 않으면서 '지역적'이고 다소 '대항적'인 의미를 담고 있기도 했다.”
사실 두 유해 발굴 모두 뼈를 통해 자신들의 담론을 공식적 지위에 올려놓고자 하는 일종의 ‘기억 전쟁’이다. 이때 유해는 담론을 공식화하는 표상으로 작용한다. 죽은 자의 몸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 어떤 표상보다 강력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아직도 한편의 발굴을 공식적 지위로 인정하는 반면, 다른 한쪽에 대해서는 미묘한 반감을 드러낸다. 노 교수는 “근대 국민국가의 중앙성과 대립하는 '대항 담론'을 섣불리 공식적 지위로 이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사자와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이 근대 국민국가라는 거대한 축을 중심으로 상호 대립하며, 근대 국민국가의 ‘장의사’ 역할을 다른 축으로 확장하는 것이 ‘근대 내셔널리즘’이라는 조금은 거대한 주제라고 생각되는 것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변화의 조짐이 아예 없진 않다. 국가 차원의 위령은 현대에 이르러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국가 의례가 국가권력 및 폭력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을 품기 시작했다. 제주 4·3사건, 거창 및 산청 함양 학살사건, 노근리 학살사건 등은 편입이 결정되거나 대기 중에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전체에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포괄적 인식 또한 크게 변하지 않았다. ‘206: 사라지지 않는’은 묻는다.
“우리는 사라져버린 뼈의 개수만큼 그 기억을 잃어버리게 되는 걸까요? 영원히 공백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반쪽짜리 진실의 사라진 절반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 걸까요? 그 사이 가해자들은 사라져버렸고, 돌아가신 분들은 말이 없습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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