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빈지노에게 과거를 요구하는가?
[이현파 기자]
▲ 정규 2집 '노비츠키'를 발표한 빈지노 |
ⓒ BANA |
지난 3일, 래퍼 빈지노의 새 정규 앨범 < NOWITZKI >가 발매되었다. 많은 변화를 뒤로 한 채 발표된 첫 앨범이다. 재지팩트의 앨범 이후로는 6년 만이며, 정규 1집 < 12 > 이후로는 7년 만이다. 국내 힙합 팬들 사이에서는 역시 7월 발매를 앞둔 이센스의 <저금통>과 더불어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평가받았다.
돌아온 빈지노에 대한 팬들의 관심은 뜨겁다. 일반반에 앞서 판매된 한정판 앨범(한정판에만 수록된 두 곡이 담겨 있다.)은 47,000장 가량 팔렸으며 발매 20시간 만에 '멜론'에서 스트리밍 100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 역대 스물여섯 번째로 빠른 기록이며, 힙합 가수 중 가장 빠르게 100만 스트리밍을 달성한 앨범이 되었다. 방탄소년단과 임영웅을 제치고 아티스트 순위 1위에 오르는 기염도 토했다.
빈지노는 2010년대 초중반, 청춘의 아이콘으로 여겨진 아티스트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이나 <쇼미더머니>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대기업의 광고를 찍을 수 있는 아이콘의 지위를 획득했다. 대학 축제 무대에 선 그는 수많은 여성 팬의 환호를 받았지만, 남성 팬이 동경하는 패션 아이콘이기도 했다. 외모와 패션 감각, 그리고 명문대 미대 출신이라는 학력 자본이 그의 성공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이없지 내 성공이 외모 덕이었다니"('Born Hater' 중) 가사가 말해주듯, 핵심은 음악에 있었다. 그는 감각적인 가사와 세련된 플로우를 가진 래퍼다. 매력적인 프로듀서 시미 트와이스와 함께 결성한 재즈 힙합 그룹 '재지팩트'의 앨범(2010)는 방황하는 청춘의 송가가 되었다. < 24:26 >(2012)는 수많은 이들의 노래방 18번을 배출했다. 2011년 일리네어 레코즈에 가입한 이후, 도끼, 더콰이엇과 함께 한국식 트랩의 유행을 주도하기도 했다.
▲ 빈지노의 정규 2집 '노비츠키' |
ⓒ BANA |
▲ I'VE BEEN SEEING COLORS #2 ⓒ BANA |
빈지노는 앨범 작업을 위해 스웨덴 말뫼로 떠나 '송 캠프(Song Camp)'를 꾸렸다. 그는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뮤지션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고 곡을 만들어 나갔다. 이 과정은 소속사 'BANA'의 유튜브에 다큐멘터리 'I'VE BEEN SEEING COLORS'로 공개되었다. 슬롬과 250, mokyo, 백현진 등 앨범에 참여한 국내 뮤지션의 면면 역시 다양하다. 그는 힙합 뮤지션이지만 재즈, 알앤비, 싸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앨범에 수혈했다.
첫 정규 앨범 < 12 >(2016)도 다채롭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번엔 칠하고 여유로운 사운드가 앨범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선공개곡인 'Trippy'의 피치를 내리고 새로운 연주 파트를 추가하면서 신선함을 더 하기도 한다. 가사 역시 예전과 다르다. 빈지노는 선공개곡에서 예고했듯이 단어를 아무렇게나 흩뜨리고 해체하는 듯 가사를 썼다. 그러면서도 장면을 그리게 하는 빈지노 특유의 힘은 살아 있다. 어린 날의 복잡한 가정 환경을 묘사한 'Change', 늦은 군생활의 한 장면을 포착한 'Camp'가 대표적이다.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새로운 명반이 탄생했다는 예찬이 뜨겁지만, 더 이상 그의 노래가 공감을 불어 일으키지 않는다는 아쉬움도 발견된다. 공교롭게도 이 앨범이 나오기 11년 전 같은 날(7월 3일), 그의 대표작 < 24:26 >이 발매되었다. 그 시절의 감성, 'Always Awake'의 청춘 이야기를 그리워하는 팬들 역시 이해된다. 하지만 올해 30대 중반의 빈지노는 더 이상 청춘 담론을 재생산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 삶은 모든 게 내 맘대로 된다'는 가사가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평가를 떠나 '노비츠키'는 빈지노의 솔직한 오늘이 담긴 작품이다. 누구도 이 예술가에게 과거를 요구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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