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히어로'의 할아버지, 시대의 아이콘이 된 스탠 리
[김상화 기자]
▲ 디즈니+ 다큐멘터리 '스탠 리' 예고편. |
ⓒ 디즈니플러스 |
<스파이더맨> <판타스틱 포> <엑스맨>. 이제는 영화로 더욱 친숙한 미국의 슈퍼 히어로 소재 코믹북에는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 주인공은 마블 코믹스의 편집장, 발행인을 거친 작가 스탠 리(1922~2018)이다. 요즘 영화 팬들에겐 마블 영화마다 빠짐없이 카메오 출연하던 선글라스, 콧수염 기른 할아버지로 기억되는 그는 미국 대중문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대공황 시절 가난이 싫어서 10대 후반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는 바지 공장을 거쳐 어느 출판사의 '사환'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1939년 마블 코믹스의 전신, 타임리 코믹스에 17살 어린 나이로 들어갔던 평범한 소년 스탠리 마틴 리버는 이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필명 '스탠 리'를 내걸고 초능력을 지닌 히어로를 소재로 창작된 만화의 스토리를 쓰기 시작한 그의 작품은 이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마블은 단행본 시장을 넘어 영화, TV산업까지 아우르는 대표적인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달 30일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공개된 <스탠 리>는 스스로가 마블의 역사이기도 했던 스탠 리의 코믹북 인생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과거의 희귀 영상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의 모습까지 영상에 담아 마블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 디즈니+ 다큐멘터리 '스탠 리' 예고편. |
ⓒ 디즈니플러스 |
스탠 리가 아르바이트생처럼 일했던 타임리 코믹스는 굴지의 코믹북 출판사였지만 늘 일손이 부족했던 업체였다. 그런 이유로 우연찮은 기회로 여러 만화의 스토리 작업에 참여한 그는 당시 회사의 대표작 <캡틴 아메리카>의 여러 에피소드의 각본을 담당하면서 점차 능력을 인정 받기 시작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군에 징집된 스탠 리의 경력을 유심히 살펴본 미 육군은 그를 전쟁터로 보내지 않고 본토에 남겨 각종 보훈용 영화, 교육 자료 제작 등의 업무에 투입시켰다. 특히 병사들의 월급 지급을 담당하는 장교 교육을 위해 교재를 코믹북으로 만들면서 6개월 소요되던 작업을 불과 6주로 단축시키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고 한다.
제대 후 회사로 돌아온 스탠 리는 편집장, 작가, 아트 디렉터 등 1인 다역을 맡아 본격적으로 출판 사업에서 자신의 능력을 착실하게 발휘하기 시작했다. 한때 작가를 꿈꿨던 그는 공장처럼 찍어내는 만화 제작에 회의를 느끼고 그만둘 생각도 했지만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봐"라는 부인의 설득으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신작을 만들게 되었다. 그 결과물은 바로 <판타스틱 포>였다.
▲ 디즈니+ 다큐멘터리 '스탠 리' 예고편. |
ⓒ 디즈니플러스 |
미국의 우주 탐사 프로젝트였던 아폴로 로켓의 발사에서 착안한 <판타스틱 포>는 기존 히어로들과는 차별화된, 완벽하지 않은 영웅들을 전면에 내세웠고 이와 같은 발상의 전환은 침체 빠졌던 회사를 재건하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가진 것 없고 멋지지도 않은 가난한 청년을 주인공으로 삼은 <스파이더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로마 신화에 비해 덜 알려진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토르>를 탄생시켰다.
1961년 지금의 마블 코믹스로 이름을 바꾼 후에는 팬클럽 제도 도입을 통한 코믹북 팬덤 확보 등 남다른 방식으로 독자들을 자신들의 품에 끌어 들이는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월남전, 흑백 갈등 등 1960년대 이후의 사회상을 작품에 적극 반영해 돌연변이 소수자들(엑스맨), 흑인 히어로(블랙팬서), 여성 주인공 (블랙 위도우, 캡틴 마블) 등 백인 남성 중심 히어로물에서 탈피하기 시작한 것 역시 스탠 리의 업적 중 하나였다. 만화책 검열을 과감히 거부한 것 또한 스탠 리의 공이 컸다.
하지만 빛이 있다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스토리 작가 vs. 만화가 사이의 갈등도 이 무렵 유발되었다. 전자의 역할을 중요시 생각하던 스탠 리와 달리 직접 만화를 그리고 때론 캐릭터 탄생에도 기여했던 스티브 딧코, 잭 커비는 이와 같은 분위기에 불만을 느꼈고 속속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십수년이 지난 후 어느 라디오 생방송에선 전화로 연결된 스탠 리. 잭 커비가 논쟁을 벌일 만큼 갈등의 골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 디즈니+ 다큐멘터리 '스탠 리' 예고편. |
ⓒ 디즈니플러스 |
1990년대의 암흑기를 거쳐 마블은 어느덧 월트디즈니의 자회사가 되었다. 2008년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마블 코믹스가 탄생시킨 수많은 히어로들은 이제 스크린을 누비는 새로운 스타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 일선에서 물러났던 스탠 리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 역시 이 무렵의 일이다. 마블 혹은 소니가 제작한 영화 속 카메오로 등장해 짧지만 유쾌한 웃음을 늘 선사해온 할아버지이자 영웅들의 아버지로 다시 평가 받게 되었다.
잭 커비, 스티브 딧코 등과의 일화를 놓고 혹자는 그에 대해두고 미디어를 잘 활용해 만화가들 대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인물로 치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스탠 리가 창작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결과적으로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지녔고 수십년이 지나 21세기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 수 있음을 증명해냈다.
남들보다 먼저 흑인, 유색인종,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을 만든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난했던 유럽 이민자 가정의 평범한 소년은 어느 덧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존경받기에 이른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어느덧 5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해맑게 웃는 콧수염 할아버지의 모습은 빨간색 마블 로고와 더불어 영원히 코믹북 마니아, 영화 팬들에겐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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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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