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3개월 월세 밀린 상가임차인 권리금 보호 배제 합헌"
3개월 분의 차임을 연체한 상가임차인을 권리금 보호대상에서 제외한 상가임대차법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임대인에게 이미 신뢰관계가 깨진 임차인이 주선한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것을 강요하는 것은 가혹하고, 상가임대차법상 차임감액청구권 등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들이 마련돼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이해관계 조절이라는 측면에서도 입법자의 선택이 지나치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결정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1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A씨는 2017년 4월 B씨와 경주시에 있는 한 기와지붕 음식점 건물과 주변 대지 등을 2017년 5월 1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 2년간 보증금 5000만원, 월차임 300만원에 임차해 사용하기로 하는 상가 임대차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는 B씨가 해당 건물에서 운영하던 카페의 기자재와 민박시설 침구류 등 시설물건비 명목으로 30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보증금과 시설물건비를 지급하고 식당을 영업하던 A씨는 2018년 1월 차임을 260만원으로 감액하기로 B씨와 합의했고, 임대차계약은 2021년 4월 30일까지 묵시적으로 갱신됐다.
그런데 2019년 2월부터 차임 중 일부를 연체하기 시작한 A씨는 2020년 3월 말까지 총 964만원의 차임을 지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임대차계약이 끝나갈 무렵 A씨는 B씨에게 신규 임차인을 주선했지만, B씨는 A씨가 주선한 사람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B씨가 상가임대차법에 따른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방해했다고 주장하면서 2021년 3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재판에서 B씨는 A씨가 3기 이상의 차임을 연체했기 때문에 상가임대차법상 권리금 회수를 주장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 A씨는 3기 이상 차임을 연체한 임차인을 권리금 회수 보호 대상에서 제외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1항 단서, 같은 법 제10조 1항 1호에 대해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장을 규정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1항은 '임대인은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임대차 종료 시까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권리금 계약에 따라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임차인이 되려는 자로부터 권리금을 지급받는 것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다만, 제10조 1항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정하고 있다.
즉 상가 임대인이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를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제10조 1항의 경우를 예외로 정했는데, 제10조 1항은 임대인이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경우를 열거한 조항이다.
구체적으로는 ▲임차인이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사실이 있는 경우(1호) ▲임차인이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임차한 경우(2호) ▲서로 합의하여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상당한 보상을 제공한 경우(3호) ▲임차인이 임대인의 동의 없이 목적 건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전대(轉貸)한 경우(4호) ▲임차인이 임차한 건물의 전부 또는 일부를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파손한 경우(5호) ▲그 밖에 임차인이 임차인으로서의 의무를 현저히 위반하거나 임대차를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는 경우(8호) 등이다.
헌재는 임차인의 보증금 회수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예외를 규정한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 1항 중 이번 사례에 직접 적용되는 제10조 1항 1호, 즉 3기의 차임이 연체한 경우에 대한 부분만을 심판대상으로 한정했다.
법령이 직접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재법 제68조 1항에 따라 헌법소원을 제기한 경우와 달리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이 법원에서 기각됐을 때 인정되는 헌재법 제68조 2항의 헌법소원(위헌소원)의 경우 위헌법률심판과 마찬가지로 '재판의 전제성'을 청구 요건으로 한다. 때문에 그 심판대상은 진행 중인 재판에 직접 적용되고, 해당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에 따라 진행 중인 재판의 주문이나 주요 결정이유가 달라지는 경우로 제한된다.
A씨는 헌법소원을 청구하면서 "보증금의 존재나, 연체 차임의 사후 지급 여부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로지 차임의 연체만을 기준으로 권리금 회수기회의 보호 여부를 결정하고 있는 것은 임차인에게 매우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또 "차임 연체의 기준을 3기가 아니라 6기 혹은 9기 등으로 좀 더 완화하거나 당사자의 약정에 의한 차임 지급 기간이 아닌 보다 객관적인 일정한 기간을 그 기준으로 설정할 수도 있는 점, 임차인에게 권리금 회수기회가 보장되지 않는 결과 권리금 상당의 이익이 임대인에게 부당하게 귀속되는 점 등에 비춰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해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헌재는 "3기에 이르는 차임액을 연체한 후 임대차가 종료된 상황에서까지 임차인이 주선하는 신규임차인과 계약을 체결하도록 강제해 임대인에게 사용수익권의 제한을 감내하도록 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가혹하다"며 "심판대상 조항이 임차인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심판대상 조항은 임차인이 가장 기본적이고 주된 의무인 차임 지급을 이행하지 않은 경우 임대인과 신뢰관계가 깨졌다고 봐 임차인을 권리금 회수 기회 보호 대상에서 제외함으로써 양자 간 이해관계를 조절하는 것"이라며 "만일 임차인이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경우에도 임대인은 임차인이 주선하는 신규 임차인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면, 임대인 입장에서 이는 차임 지급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아 신뢰를 잃은 임차인과 사실상 계약을 갱신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A씨는 임차인에게 귀책사유가 없는 경우까지 일률적으로 권리금 회수기회를 박탈하도록 한 것은 지나치다고도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급격한 경제상황의 변동 등과 같은 사정으로 말미암아 임차인이 귀책사유 없이 차임을 연체하는 경우, 임차인이 심판대상조항으로 인해 권리금을 회수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된다면 임차인에게 다소 가혹하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기본적으로 경제상황의 변동은 일차적으로 임차인 스스로가 감수해야 할 위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리고 상가임대차법은 경제사정의 변동 등으로 인해 기존의 차임 또는 보증금이 상당하지 않게 된 경우 임차인 측에서는 차임의 감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애초에 임차인이 차임 연체를 이유로 권리금 회수기회의 보호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헌재는 "이에 더해 심판대상 조항은 임차인이 차임을 단순히 3회 연체하는 경우가 아니라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했을 경우에 한해 임대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의무가 발생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 등도 고려해 볼 때 임차인에게 일방적으로 가혹하다고 할 수는 없다"며 재산권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 조항(제10조의4)은 2015년 5월 상가임대차법 개정 때 그동안 판례에 의해 인정돼 온 권리금과 권리금 계약의 정의조항(제10조의3)과 함께 신설됐다.
대법원은 올해 초 해당 조항의 취지에 대해 "상가임대차법 제10조의4의 취지는 임차인이 지불한 권리금 그 자체를 보호하기보다는 임대차 종료 당시를 기준으로 해 임차인이 임대차 목적물인 상가건물에서 영업을 통해 창출한 유·무형의 재산적 가치를 신규 임차인으로부터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상가임차인이 3기의 차임액에 해당하는 금액에 이르도록 차임을 연체한 경우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대상에서 제외되도록 한 상가임대차법 조항의 위헌 여부에 대해 헌재가 처음 판단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이어 "헌재는 상가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제도의 취지와 더불어 임대인과 임차인 양자 간의 이해관계 조절의 필요성 등에 비춰 볼 때 심판대상 조항에 합리적 이유가 있고, 입법재량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할 수 없다고 봐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했다"고 설명했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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