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 30초 박수갈채…세계 1위도, 왕세자빈도 열광 '윔블던 황제'
올해 윔블던 테니스대회 최고 스타는 세계랭킹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20·스페인)도 역대 메이저 대회 최다인 24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노박 조코비치(36·세르비아)도 아니다. 두 수퍼스타를 제친 주인공은 바로 지난해 은퇴한 '황제' 로저 페더러(42·스위스)다.
페더러는 4일 엘레나 리바키나(24·카자흐스탄)와 셸비 로저스(31·미국)의 첫 경기가 열린 영국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 센터코트를 찾았다. 그가 로열박스에 등장하자 장내 아나운서는 페더러의 방문을 큰 소리로 소개했다. 그러자 1만5000여 명의 관중은 뜨거운 박수로 '전설'에게 경의를 표했다.
페더러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한 미소로 여러 차례 감사 인사를 했으나, 박수는 끊이지 않고 1분 30초 동안이나 이어졌다. 페더러의 활약을 담은 짧은 영상도 전광판을 통해 소개됐다. AP는 "페더러는 라켓을 들지 않고도 관중을 열광하게 했다"고 묘사했다. 페더러는 아내 미르카와 케이트 미들턴(41) 영국 왕세자빈 사이에 앉아 경기를 관전했다.
이날 행사는 윔블던에서 은퇴 경기를 치르지 못한 페더러를 위해 윔블던 주최 측이 마련한 자리였다. 페더러는 4대 메이저 대회 중 유일하게 잔디 코트에서 열리는 윔블던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통산 8차례(2003~07, 09, 12, 17년) 우승해 대회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 중이다. 메이저 우승에선 20회로 라이벌 조코비치(23회), 라파엘 나달(37·스페인·22회)에 밀리지만, 윔블던에서만큼은 팬들에게 그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다. 영국 BBC는 이날 페더러를 "역대 최고의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도 윔블던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1981년생으로 만 42세인 그는 당초 올해 윔블던에서 은퇴하는 것이 마지막 꿈이었다. 하지만 2021년 7월 윔블던 이후 세 차례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과 치료를 반복했지만, 끝내 호전되지 않아 복귀전을 치르지 못한 채 지난해 9월 코트를 떠났다. 페더러는 부상 중에도 "한 번 더 윔블던에 뛸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페더러는 은퇴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이번 대회 주요 홍보 영상에 등장했다. 윔블던 소셜미디어는 대회 개막을 앞두고 "미들턴 왕세자빈과 페더러가 올잉글랜드클럽에서 훈련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어려서부터 테니스를 친 미들턴은 테니스 팬으로 유명하다. 그는 윔블던 대회가 열릴 때마다 남편 윌리엄(41) 왕세자와 코트를 찾아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됐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대회 시상자로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페더러와 같은 시대를 보냈으며, 고관절 부상을 이겨내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영국의 스타 앤디 머리가 이날 페더러 앞에서 라이언 페니스턴(영국)을 꺾고 단식 1회전 승전고를 울렸다. 머리는 경기 후 "왕족뿐 아니라 '테니스 왕족'도 이곳에 와 놀랍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윔블던 코트에서 페더러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2012년 런던 올림픽 때 나와 (스위스 출신의) 스탄 바브링카의 경기에서였는데, 그때 로저가 관중석에서 바브링카를 응원한 기억이 난다"면서 "오늘은 내가 좋은 샷을 치니 몇 번 손뼉을 쳐줘서 참 좋았다"고 농담했다.
이날 같은 경기장에서 2회전 진출에 성공한 톱시드의 알카라스는 "페더러가 팬들에게 환영받는 모습을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더러가 내 경기를 봤으면 좋겠다"면서 "그와 대화도 해보고 싶다. 만남이 이뤄진다면 정말 기쁠 것"이라며 대선배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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