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건폭' 귀에 꽂힌다…"직접 만든다"는 尹의 조어정치
미국 정치권엔 ‘사운드 바이트(sound bite)’라는 정치 용어가 있다. 정치인이나 유명인이 대중에게 핵심을 요약해 던지는 강렬한 한마디를 가리킨다. 그런 점에서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를 두고 “사운드 바이트 정치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요약을 넘어 직접 말을 만드는 조어(造語)도 하고 있다.
지난 4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회의에서 언급한 ‘킬러 규제’가 대표적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 ‘킬러 규제’를 팍팍 걷어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회의 참석자와의 오찬에서도 직접 영어로 “킬러 레귤레이션(Killer regulation)”이라 언급하며 재차 규제개혁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두루뭉술하지 않은 명쾌한 단어로 국정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 뒤 관련 기사 제목 대부분엔 ‘킬러 규제’가 언급됐다.
윤 대통령이 만든 조어는 이번뿐이 아니다. 시작은 검찰총장 때였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에서 물러나기 직전인 2021년 3월 대구고검·지검을 방문해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하는 ‘부패완판’”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의 귀에 꽂힌 ‘부패완판’이란 용어는 당시 야당이던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는 일상어가 됐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으로부터 노조의 건설현장 불법행위를 보고받고 나선 “딱 사이즈가 건폭이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뒤 건폭은 민주노총과 각을 세우며 ‘노조 법치주의’를 내세우는 윤석열 정부의 키워드가 됐다. 윤 대통령부터 원희룡 장관과 김은혜 홍보수석 등이 공개석상에서 건폭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앞서 언급된 조어들은 모두 윤 대통령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한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발언을 윤색하거나 순화하는 것을 꺼려, 언급한 말 그대로 대중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같은 직선적 언어로 정치적 효과를 누리기도 했다. 올 초 30%대 초중반에 머물렀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2월 건폭 언급 뒤 30%대 중후반으로 상승세를 탔다.
지난달 중순 킬러 문항을 비판한 윤 대통령의 ‘공정 수능’ 지시 뒤 교육계 혼란이란 부정적 여론을 일부 전환시킨 것도 윤 대통령의 언어였다. 윤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를 앞세우며 사교육을 비판하자 현 정부와 수백억을 버는 일타강사·입시학원 간의 전선이 그려졌다. 여권 관계자는 “한때 큰 고비가 있었는데, 조금씩 공교육 정상화로 이슈가 전환됐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조어 정치’에 대해선 일부 우려도 있다. 킬러규제가 언급된 날 대통령실은 무엇이 킬러규제인지에 대해선 구체적 답을 내놓지 못했다.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거친 언어가 확장성을 해친다는 지적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윤 대통령의 화법을 통해 보수층과 2030 남성은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면서도 “반대로 여성과 중도층엔 그리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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