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얘기가 아닙니다, 요양병원에서 맞는 쓸쓸한 죽음
[김성호 기자]
▲ 탄생 포스터 |
ⓒ BIFAN |
흔히 예술은 시대와 공명한다고들 한다. 예술작품 안에 시대가 투영되고, 그 시대의 여러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게 한다는 뜻이겠다. 때로는 시대를 반영하고 그로써 나아짐을 모색하기 위하여 작품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또 때로는 별 의식 없이도 작품 안에 시대적 특성이 녹아드는 멋진 순간이 빚어지기도 한다.
영화와 문학, 그밖에 온갖 예술분과에서 시대와 공명하는 작품이 태어나니, 시대성과 예술의 관계는 떼어낼 수 없다 해도 좋겠다.
▲ 탄생 스틸컷 |
ⓒ BIFAN |
요양병원을 탈출하려는 할머니
영화는 어느 요양병원에서 간호사들에게 끌려온 한 환자의 모습으로 시작된다. 70대가 넘어선 듯 보이는 여성환자 미숙(전소현 분)은 이 병원에 한동안 입원해 있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마침내 침상에 팔뚝이 묶인 그녀에게 면회자가 찾아오고, 면회자는 그녀와 차가운 대화를 나눈다.
찾아온 이는 미숙의 딸이다. 대학교수인 그녀는 만삭의 몸으로 미숙을 찾아 그녀가 더는 탈출하지 않도록 말리려 든다. 그러나 미숙은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뿐, 둘은 좁혀지지 않는 대화만 거듭할 뿐이다. 이제는 제 집이 병원이란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딸과 어떻게든 제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엄마의 팽팽한 대립은 이야기를 평범한 모녀간의 드라마로 놓아두지 않는다.
▲ 탄생 스틸컷 |
ⓒ BIFAN |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노년의 공포
요양원에서 하나둘 치워지는 노인들의 시신이며 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노인들의 비참함은 러닝타임이 끝나도록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강한 이미지로 남는다. 그건 이와 같은 풍경이 결코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노년, 그리고 곧 노년이 될 관객들의 운명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탓이다. 인생의 마지막을 자신의 집에서, 사랑하는 가족들 가운데 맞이할 이는 생각만큼 많지 않을지 모른다. 집 한 채 마련하기 어려운 오늘의 세상 가운데 이 영화 속 미숙과 같이 처량하고 쓸쓸한 말년을 맞이할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옆자리에 앉은 어느 할머니는 제 또래의 다른 할머니에게 낮에 아이들을 봐주고 월에 250만원을 받는 다른 할머니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놓는다. 제 쓰임을 그렇게 찾지 못한 수많은 할머니와 불우하다 해도 좋을 또 다른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그 뒤를 따라 나온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보면 사람이 제 자리를 갖는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사회로부터 밀려나 은퇴하고도 수년이 지난 노년이 될지라도 말이다.
자식이 없거나 자식에게 챙김을 받을 수 없는, 또는 안락한 노후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쓸쓸하고 처량한 노년은 공포에 가까운 무엇이다. 그리고 <탄생>은 바로 그 공포의 소재를 더욱 선명하게 오늘의 관객에게 전달하는 작품이다. 감독은 늙으면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해왔다고 전한다. 쓸모 있고 제 자리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노년을 때때로 상상하기도 했을 것이다.
▲ 탄생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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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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