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인데도 추위에 덜덜...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다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구교형 2023. 7. 5.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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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택배 현장에서 얻은 교훈 세 가지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구교형 기자]

▲ 정리의 달인 1 그냥 꽉꽉 채운 게 아니라 결마다 거리와 도로가 숨어 있다.
ⓒ 구교형
 
처음 '목사가 쓰는 택배 이야기' 연재 제안을 받았을 때, '내가 택배해 보니 힘들더라'라는 식의 넋두리만 늘어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시대, 이 사회에서 같이 살아가며 나눠보고 싶은 다양한 현장의 고민과 대안들을 공유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숨 가쁜 택배 현장을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회부터는 더 활기찬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오늘 얘기를 시작하자.

모든 일이 그렇지만, 사실 택배 일도 한고비만 넘기면 비로소 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즐기게 된다. 내가 알기로는 다른 모든 고된 현장에도 자기들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경구(교훈)가 있다 한다. 택배 현장에도 제법 있다.

나도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처음부터 들은 기억이 있지만, 초년병 때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차차 경험이 쌓이면서 어느 날 갑자기 이해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얼마나 신기한지 모른다. 이번에는 택배 일을 하면서 언젠가부터 알게 된 일상적 깨우침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택배의 기초는 정리에 있다"

보통 사람들은 택배는 '배송'이니, 몸이 건강하고 집만 잘 찾으면 되는 줄 생각하기 쉽다. 아니다. 택배의 기초는 정리에 있다. 정리 잘못하면 그날 내내 고생한다. 도대체 정리가 무엇일까? 정리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매일 같은 지역을 반복해서 도는 것이기에 가는 순서가 일정하다. 당연히 나중에 갈 물건부터 트럭 안쪽에 던져 넣는다. 그리고 정리를 다 마치고 배송을 시작할 때 가정 먼저 갈 곳의 물건들일수록 바깥에 둔다. 너무 당연하다.

말은 쉽지만 크기, 형태, 무게, 재질과 특성 등이 다 다른 물건을 한 곳에 다 넣어야 하기에 쌓는 방법이 매우 중요하다. 여기에 그날 물량에 따라 쌓는 높이와 방식도 조금씩 달라진다.

어떻게 해도 한 차 가득이지만, 비교적 물량이 적은 날 안쪽부터 꽉꽉 채워 높이 쌓으면 또 문제가 발생한다. 오르막길에 올라가다가, 또 어느 정도 바깥 물건을 배송해서 틈새가 벌어지면 안쪽부터 무너져 쓰나미처럼 바깥 물건을 덮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날은 끝날 때까지 내내 고생한다. 나중에 배송할 물건들이 무너져 한데 섞이면 배송할 때마다 물건 찾기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택배 기사는 '배송 ABC', 기초와 실전을 차분히 학습하지 못하고 하루, 이틀 따라 나간 후 바로 투입되기 때문에 실무는 틈틈이, 계속 스스로 익혀야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내가 정리의 달인이 되었다. 주변 동료들도 물건 정리를 참 잘한다고 칭찬하고, 최근에 택배를 시작한 분들은 자기들도 언제쯤 그렇게 될 수 있냐며 부러워한다. '글쎄, 엄청나게 헤매던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나도 신기하다.

내가 처음 택배를 시작했던 2015년에는 목회를 함께 하던 시절이라 일주일 4회만 배송했다. 내게 주어진(임대한) 차량은 낡은 다마스였다. 경차였기에 적재함이 작아 구역을 두 번에 나눠 배송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꽉꽉 채워 넣어야 했기에 어느새 최대한 빈틈 없이 구겨 넣는 요령이 생겼다.

그리고 나중에 1톤 트럭을 배정받으니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차가 커지니 그 나름의 문제가 생겼다. 적재함이 커져 정리한 물건들의 틈새가 생기니 앞서 말했듯이 고갯길만 들어서면 물건이 자꾸 무너지는 거다. 그래서 높게만 쌓으면 되는 게 아니라 틈새마다 적당히 채워 빈틈을 막고도 가는 길에 따라 구분하여 배열도 해야 한다.

잘못 쌓아 고생한 경험들이 쌓이니 실수가 머리에 새겨지고, 뼈에도 새겨진다. 연구와 연습,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부터 정리가 더는 문제도 아니게 되었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빈틈없이 높게 물건 잘 쌓은 것처럼 보이지만, 쌓은 물건들에는 나만 아는 결이 있고, 그 결마다 길이 보인다. 정리해 놓은 물건들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 흐뭇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 정리의달인2 다 싣고 문 닫기 전 모습, 그냥 숨 막혀 보이지만 쌓은 사람은 자부심도 느낀다
ⓒ 구교형
 
"차의 길, 사람의 길, 뱀의 길, 지렁이의 길이 있다"

이 말은 초보 시절 점장님이 내게 해 준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고, 알았다고 해도 남의 일일 뿐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한 집 찾을 때마다 지도에 의지해(그땐 그랬다) 겨우 한집 찾고 또 다른 집을 찾기 위해 지도를 이리, 저리 돌려보며 겨우겨우 찾아갔다. 차가 다닐 수 있는 '차의 길'이 있고,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들은 다 수레에 옮겨 실어 밀고 다녔으니 '사람의 길'이다(사실 가리봉동 주택가는 '차의 길'보다 '사람의 길'이 훨씬 많다).

그런데 도로 정비를 하지 않은 우리나라 옛날 주택가들은 같은 번지수인데도 전혀 다른 집이고, 같은 집인데도 입구가 멀리 돌아 전혀 다른 골목에 난 곳들이 제법 있다. 몸은 지치고, 시간도 촉박한데 무거운 물건을 들고 다시 다른 골목까지 찾아가는 허탈감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렇게 헤매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이 골목이 저 골목과 연결되어 있고, 또 다른 집 쪽문을 통해 연결된 신천지를 발견할 때가 있다. '뱀의 길' '지렁이의 길'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그럴 때는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만큼 기쁘고, 신기하고, 집을 찾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익숙해지면 내가 찾으려는 집만 아니라 골목, 도로, 동네 전체가 다 보이지만, 일정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말해줘도 절대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는 진리를 체득하게 된다. 그럴 때면 택배하면서 깨닫게 되는 지혜들을 성경에 비추어 설교하게도 된다. 여러모로 득템이다.

"택배는 어떻게든 일단 나가면 된다"

택배를 하다 보면 배송을 시작하기도 전에 답이 안 나오는 날이 가끔 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은 수량에, 큰 물건들만 몰려서 나오는 날은 정리하다가 질린다. 그러면 기사들은 그때부터 머리를 굴리느라 복잡해진다. 반드시 그날 가야 할 물건(식품, 냉동품), 가급적 가야 할 물건, 그리고 그날 안 가도 되는 물건들을 다른 귀퉁이에 슬금슬금 쌓아둔다. 그리고 그날은 '죽었소'하고 때로는 운전만 가능하도록 조수석까지 최대한 욱여넣는다.

그러나 그보다 두려운 것은 역시 날씨다. 예전에 '군인은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말도 있었지만, 택배 기사야말로 우산을 쓰지 않는다. 아니, 우산 쓰고는 배송을 못 한다. 내리다 마는 비, 간간이 옷이 젖고 마는 가랑비 정도는 우리에겐 비도 아니다. 요즘 같은 장마철의 계속 쏟아붓는 장대비가 문제다. 2021년에는 역대급 폭우가 정말 한 달여간 거의 매일 쏟아졌다. 당장 아무리 장대비가 쏟아져도 30분 기다려 멈춘다면 기다리기도 하겠지만, 그때 장마는 아예 한 달 동안 작정하고 내리는 비 같았다.

배송을 위해 문을 열고 나가려 할 때마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 나가는 듯, 운전석에서 각오를 다지고 나가도 짐칸까지 가는 도중 쏟아진 빗발에 맞아 이미 전의를 상실한다. 나도 나지만, 물건도 온전할 리 없다. 일부러 물에 불린 듯 푹 젖어 상자가 화장지처럼 되어버린다.

장대비를 하루 종일 맞으면 정신도 없고 한여름인데도 추위에 덜덜 떨린다. 운전석에 돌아와 차 문을 닫으면 다시는 나가고 싶지 않다. 그런데 이럴 때는 운전도 문제다. 다 알다시피 비로 시계도 흐려지고, 습기로 성에가 껴서 유리가 잘 안 보인다. 추위를 무릅쓰고 에어컨을 켜지만 그걸로 안되면 할 수 없이 유리창을 반쯤 내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나 자신이 참 초라하고, 인생이 처량 맞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무조건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든다.

그해 겨울에는 유난히 큰 눈도 많았다. 눈이 오면 도로 상태가 걱정이지만 큰 길가는 당국에서 손도 쓰고, 오가는 차들이 밟으며 녹아 그리 큰 문제가 없다. 진짜 문제는 꼭대기 동네는 제법 물량이 많은데 '과연 차가 올라갈 수 있을지, 올라가도 과연 내려올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오죽하면 차에게 내려서 고개 위까지 걸어갔다 오면서 살핀 다음에야 비로소 차로 올라갔고, 다행히 사고 없이 내려왔다. 수레로 쉽게 오르내리던 골목길도 눈이 많이 쌓이면 바퀴가 구르지 않아 하나씩 다시 들고 찾아가기도 한다.

그러니 '추워서, 더워서 어떻게 하느냐' 정도는 일도 아니다. 일하다보면 추위는 금세 가시고, 더위도 거의 잊어버린다. 그래서 나온 말이 '택배는 일단 나가기만 하면 어떻게든 된다'다.

그런데 인생살이가 다 그런 것 같다. 앉아서는 도무지 답이 안 나오고 살아날 길이 없는데, 막상 부딪혀 하나씩 해 나가면 의외로 길이 보이고, 때론 답도 없이 어떻게든 헤쳐 나가다 보니 다 완수하는 일도 생기더라.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잠언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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