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괴담·가짜정보, 인터넷 댓글 타고 무차별 전파…규제 강화 목소리↑
현대차, 기술 탈취 의혹 근거 없는 악성 댓글…6년간 법정 다툼 끝 승소
지난해 20대 배구선수 “악플 버티기 힘들다” 호소 끝 극단적 선택
“네가 무조건 싫다” 식 묻지마 악플 범람…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해야
#1. 지난 2월 초 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엔 맥도날드의 감자튀김에서 '동물 다리가 나왔다'는 글이 게재됐다. 검은색 물체를 튀긴 듯한 사진은 "쥐 실험을 해봐서 보자마자 쥐 다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일방적인 추정성 댓글이 달리면서 일파만파 확산했다. 당시 업체 측은 “감자에 튀김 옷을 입히지 않는다”며 법적 대응 등 강력 조치를 예고했다. 하지만 일부 매체가 네티즌 반응을 옮기며 매출과 이미지에 타격을 입는 등 곤욕을 치른 것으로 전해진다. 사태는 게시글 게재 2주 만에 식약처가 “해당 물질은 감자가 튀겨진 것”이라는 공식 분석 결과를 내놓으면서 일단락됐다.
#2. 지난 2016년 A사는 현대자동차가 자신들의 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며 1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현대차는 기술 탈취가 없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고, 사법부는 1심과 항소심, 상고심에서 모두 현대차의 손을 들어줬다. 기술 탈취 등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대차는 소송이 진행된 기간 동안 ‘협력업체는 안중에 없느냐’ 등 대기업을 향한 근거 없는 비방성 댓글에 시달려야 했다. 기술 탈취 의혹은 벗었지만, 악성 댓글은 고스란히 남아있고 작성자 중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처럼 악의적 허위 사실 및 미확인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되는 인터넷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에 불평하는 글을 넘어 악의적 허위 정보로 인한 편중된 여론조작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특히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은 자칫 허위 사실로 회복 불가능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전문대행사가 돈을 받고 실생활이나 체험을 빙자한 허위 리뷰를 작성하거나, 경쟁 업체를 비방하는 악성 댓글을 조직적으로 올렸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허다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이 온라인에서 접하는 정보의 진위 여부에 대해 우려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올 정도로 온라인 댓글 등으로 인한 악의적 허위 및 미확인 정보는 이미 심각한 사회 문제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악성 댓글에 대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하다. 징역형까지 가능한 법 규정과 달리 대부분 기소유예 또는 벌금형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온라인 댓글 내 악의적 허위 정보가 여과 없이 노출되며 야기되는 사회적 비용과 폐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에 번번이 막혀온 악성 댓글 규제 강화를 통한 대다수 시민 보호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허위 댓글, 사이버 렉카 의해 순식간에 확산… 피해자 극단적 선택
무엇보다 인터넷 댓글 속 악성 허위 및 미확인 정보는 신빙성이 없더라도 관심을 끌만한 자극적 내용들이기에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특히 조회수가 곧 수익인 일부 SNS는 악성 허위 정보 확산의 온상으로 꼽힌다. 루머에 대한 확인 대신 구독자의 눈길을 끌기 위한 선정적 제목과 내용 짜깁기를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악의적 허위 정보 확산에 앞장서는 이들을 교통사고 현장에 경쟁적으로 달려가는 견인차에 비유해 ‘사이버 렉카(Cyber Wrecker)’라고 부른다.
악성 허위 댓글로 인한 피해는 기업 뿐 아니다. 멀쩡한 사람이 암 환자로 둔갑하는가 하면 올해초 한 중년 배우는 자신의 사망설에 대해 직접 “살아있다”고 해명해야 했다. 심지어 지난해 7월에는 일본 전 피겨 스케이트 선수 A씨가 근거 없는 사망설의 희생양이 됐다. 허위 정보를 그대로 수용한 다른 네티즌들의 댓글이 이어지면서 어느새 루머가 팩트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번 타깃이 되면 익명성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욕설, 맥락 없는 무차별 비난 등이 쏟아지고, 마음의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우울증을 앓거나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지난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20대 배구선수는 자신의 SNS에 “저를 괴롭혀온 악플은 이제 그만해 달라. 버티기 힘들다”고 호소한 바 있다. 또한 인터넷 방송 중 여성 커뮤니티에서 주로 쓰는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과도한 공격을 받다 극단적 선택을 한 BJ의 가족도 “그동안 수많은 악플과 루머로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토로했다.
지난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조사 결과 일반 성인의 사이버폭력 경험률은 65.8%에 달했다. 같은 해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초·중·고교 학생 중 사이버폭력(12.3%) 경험자가 언어폭력(33.6%)과 집단 따돌림(26.0%) 다음으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등 유명인 및 공인뿐 아니라 일반인 역시 더 이상 인터넷 악성 댓글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고객과 사회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은 악성 허위 정보 또는 미확인 정보가 담긴 악성 댓글의 여과 없는 확산으로 자칫 회복 불가능한 치명적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최근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들까지 일부 소비자 사이에서 쉽게 확산하고 있지만, 기업이 인터넷의 빠른 콘텐츠 유통 속도를 쫓아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심지어 허위 정보임을 입증한 뒤에도 게시글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허탈감을 나타냈다.
기업, 악의적 댓글로 치명적 손실…폐해 비해 처벌 수위 낮아
악성 허위 정보 또는 미확인 정보를 담은 비방성 댓글로 인한 사회적 폐해에 비해 예방을 위한 규제와 처벌은 미미하다. 형법 제314조에 따르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 등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악성 댓글에 악의적 허위 사실이 포함돼 있는 경우라면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으로 7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도 가능하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인 댓글 작성자를 일일이 특정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찾아내더라도 2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초범의 경우 기소유예 처분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단순 일회성 댓글의 경우 사실상 처벌이 어렵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사회적 불안감과 혼란을 야기하는 정보에 대해 삭제 등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모호한 기준 및 인력 부족 등으로 실효성이 낮다는 평가다.
민∙형사상 처벌 수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는 이유다.
특히 악성 댓글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재발 방지를 위한 경고 효과와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현실적 규제 방안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미 플로리다 법원이 문제학생들을 위한 대안학교 알선 사업을 하던 한 시민에 대해 ‘사기꾼’이라는 악플을 단 여성에게 무려 1130만 달러의 배상 판결을 내리는 등 해외 국가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시행 중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021년 가짜뉴스 및 악플방지법의 일환으로 고의적 허위 또는 불법정보 작성자에게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지난 몇 년간 댓글 범죄가 치밀하게 전문화하고 일상화된 상황에서 기존의 처벌 체계로는 제대로 된 예방이 어렵다”며 “악성 댓글의 해악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적절한 구제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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