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로리'처럼 통쾌한 복수 없지만... 독일 관객 사로잡았다

클레어함 2023. 7. 5. 10:0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뮌헨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임오정 감독 <지옥만세>

[클레어함 기자]

 영화 <지옥 만세> 포스터
ⓒ KAFA
"우울한 현실을 다루지만 유머가 도처에 존재하고, 예상외의 반전이 많아 흥미롭다."
"다들 미성년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글로벌한 부분이 있는 반면, 컬트 장르도 재미있게 결합했다." 
"끝까지 인내하며 시련을 이겨낸 두 주인공이 제게도 위로를 주었다."

1일 폐막한 독일의 뮌헨국제영화제(Filmfest München)에서 임오정 감독이 연출한 영화 <지옥만세> 상영회를 찾은 관객들의 평이다. 영화가 '학교 폭력'과 '사이비종교'라는 무게 있는 소재를 블랙 코미디로 위트 있게 풀어냈다는 반응이 다수다. 어느 현지 관객은 "올해 영화제에서 본 제일 훌륭한 영화다. 꼭 상을 받았으면 좋겠다"라며 감독을 격려하기도 했다.

<지옥만세>는 임오정 감독이 2022년 완성했고 같은 해 48회 부산국제영화제와 27회 서울독립영화제에 소개되어 각각 'CGK촬영상'과 '넥스트링크상'을 수상했다. 또한 주인공 나미 역할을 맡은 신인 배우 오우리는 제11회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아빈 크리에이티브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8월 개봉 예정이며, 뮌헨국제영화제는 해외 첫 상영이었다.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도 7월 말 해외 관객을 만난다.

서울로 원흉을 찾아나선 두 여고생들

이 영화는 두 외톨이 소녀의 복수와 구원이 뒤섞인 엉뚱한 방랑기를 그린 영화다. 수학여행을 가는 대신 자살을 계획한 나미(오우리 분)와 선우(방효린 분)는 자신들의 인생을 곤두박질치게 만든 원흉, 채린(정이주 분)의 행복한 근황을 알게 된다. 복수의 칼날을 갈며 낯선 도시 서울로 가서 만난 채린은 새로 태어난 듯 선하게 변해 있어 두 사람은 커다란 혼란에 빠진다. 임오정 감독은 이미 <거짓말>(2009년), <더도 말고 덜도 말고>(2013년) 등의 단편으로 주목받았고, 2019년에는 옴니버스 영화 <한낮의 피크닉>을 선보이기도 했다. 

임오정 감독은 독일 관객들에게 "저를 비롯한 외톨이들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 풍경을 그린 영화인데 이들의 호쾌한 모험과 탈출, 이들에게 보내는 응원을 즐겁게 봐주셨으면 감사하겠다"고 자신의 작품을 소개했다.

임오정 감독은 6월 23일과 6월 30일 두 번에 걸친 영화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Q &A)' 시간에 사회자와 관객들이 감독에게 던진 질문들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아웃사이더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로 "사회적으로 변방에 있는 외톨이들끼리 서로 소통하고 힘을 내고 연대하는 과정을 그리는 걸 제가 좋아한다. 고립된 채 지내거나, 사회와 불화해 적응하지 못하는 외로운 마음들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저도 아마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인 것 같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믿고 있다.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 집단논리 그리고 잘못된 신에 대한 믿음이 팽배하다. 그런 헛된 믿음 사이에서 사람들이 오히려 더 외로워지고 고립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다 중요한 믿음은 바로 우리 곁에 있는 나와 같은 다른 외톨이들을 믿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는 걸로 출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고생들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전에 18살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학교생활에 괴로워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면서도 시종일관 깔깔거리는 모습이 생의 두 가지 면을 잘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삶이라는 것이 빛나는 면과 어두운 면도 있고, 또한 차가운 면과 따뜻함도 있고 여러 층의 아이러니와 온도 차이가 반복되지 않나. 그런 삶을 두 소녀가 함께 살아나갈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고, 무엇보다 그들이 죽지 않길 바랐다"고 답했다.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의 공통점
 
 블랙코메디 <지옥만세>로 제40회 뮌헨국제영화제를 찾은 임오정 감독이 영화관 (Astor Club Kino)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클레어함
<지옥만세>라는 제목에 대해서는 "'왕을 쫓아내자'라고 외쳤던 프랑스혁명의 구호다. 이 영화에서 어린아이들이 가진 혁명성 내지는 반항심 같은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영화 속에서도 천국과 지옥에 대해 계속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한국 시민들이 '헬조선'이라고 풍자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여기가 아닌 자꾸 어디론가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한다.

이게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의 논리와도 굉장히 비슷하다. 그런데 사이비 종교에서는 현실을 떠나 낙원에 가고자 하는데, 오히려 그 과정에서 세속적인 욕망을 쫓거나, 세속적인 가치로 착취하고 계급을 나누기도 한다. 그런 모순 자체를 지옥을 닮은 낙원으로 풍자하고 싶었다. 외톨이 주인공들이 삶 대신 죽음이라는 안식처를 찾고 싶어 하지만, 함께 하는 여정을 통해 진정한 용기를 가지고 조금은 변화된 모습으로 다시 지옥 같은 삶으로 당차게 돌아온다는 뜻을 담은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라는 두 소재에 대해서 임오정 감독은 "학교에서는 계속 경쟁시스템을 강조하고 약육강식의 논리에 누군가는 희생양이 된다. 그렇게 외톨이가 된 주인공처럼,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이 기댈 곳 없는 상태에서 대안적 공동체로 찾는 곳이 사이비종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학교나 사회와 마찬가지로 사이비 종교 안에서도 피라미드 구조와 경쟁이 존재한다. 그 피라미드 꼭대기가 낙원이라는 허상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을 가해자와 피해자로 만드는 기성세대와 시스템에 대한 폭넓은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한국에서 오는 8월 개봉된다. 임오정 감독은 "매우 떨리고 기대도 되지만 또 불안하기도 하다. 제가 원했던 '외톨이들의 연대'가 실제 상처 입은 분들에게 또 다른 생채기를 내지 않을까 두렵다.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야기 안에서 나미와 선우가 채린이를 용서하거나 구원했다고 단정 짓지 않았으면 하는 점이다"라며 "채린은 모든 것을 잃었고 이번에야 말로 진정한 회개를 해야 제대로 된 삶을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또한 주인공들은 복수나 용서와 상관없이 이제 채린과 무관한 삶을 함께 시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감독은 이어 "앞으로 삶이 이어지는 동안 때론 즐겁고, 행복하기도 하다가 때론 무섭고 끔찍해 또다시 삶의 끈을 놓고 싶을 때도 있겠지. 하지만 이 짧은 둘만의 수학여행을 통해, 자신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경험과 기억을 남기고 싶었다"라며 "그것 만으로 선우와 나미가 조금은 더 살아볼 만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다. 영화가 전하고 싶은 작은 용기가 관객 분들에게 진심으로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더 글로리>같은 통쾌한 복수는 없지만
 
 임오정 감독이 뮌헨 도심에 위치한 영화관 (City 2 Kino)에서 <지옥만세> 상영 후 팬들에게 사인을 하며 대화하고 있다.
ⓒ 클레어함
 
아울러 뮌헨영화제를 찾은 한국의 유학생들도 <지옥만세> 상영 후 본인의 감상평을 전했다. 김수민(20세)씨는 "해외에서 살아본 게 올해 처음이다. 한국 사회는 무한 경쟁하는 사회이다 보니 쉼, 휴식의 가치가 너무 평가절하 되어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응축되어 학교폭력이라는 형태로 표출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정하영(22세)씨는 "교환학생으로 나와보니 삶이 여유로워서 참 좋았다. 그동안 간과했던 사소하지만 소중한 행복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됐다. 사이비종교에 빠진 이들처럼 우리 사회가 헛된 것에서 행복을 찾고 '타인에 대한 배려, 연대' 등 주변의 소중한 것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임오정 감독의 <지옥만세>는 화제의 넷플리스 작품 <더 글로리>처럼 가해자들에 대한 통쾌한 복수를 결말로 선사하지는 않는다. 반면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아울러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한국 관객들의 반응은 아직 미지수지만, 일단 독일의 시네필들에겐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 듯 보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