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복병, 족욕탕

권유정 2023. 7. 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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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자유여행 3일 차, 소라니와 온천에서

경증의 성인 발달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의 특수교사로 1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발달장애 학생들이 자립과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 및 수업을 합니다. 캠핑, 농사, 라이딩, 메타버스 등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드디어 해외 자유여행까지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장애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비슷한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이 되길 바라며 글을 씁니다. <기자말>

[권유정 기자]

 고난의 시작과 끝이었던 유카타
ⓒ 권유정
'일본' 하면 온천은 빼놓을 수 없지만 사실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다. 씻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과정이 불편하고, 남녀가 분리되어야 하는 온천의 특성상 많지 않은 수의 인솔교사가 다시 나누어질 수밖에 없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러나 아이들이 유니버셜 스튜디오 다음으로 목놓아 부르짖던 곳이 온천이었고, 다행히 탕만 있는 온천이 아니라 테마파크로 꾸며진 소라니와 온천이 오사카에 있다고 해 온천에 가게 되었다.

교토투어가 끝나고 숙소 대신 소라니와 온천에 하차를 요청했다. 교토투어 가이드는 친절하게 소라니와 온천이 위치한 벤텐초역 오사카베이타워 앞에 우리를 내려주고 가는 길도 알려주었다.

투어 시간이 다소 지체되어 소라니와 온천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했던 6시를 훌쩍 넘겨 7시 가까이 되고 있었다. 소라니와 온천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운영하는데, 성인 기준 평일 입장권은 2640엔(입욕세 150엔 별도)이지만 오후 5시 이후 입장하는 야간권은 1980엔이다.  

온천 입장권은 한국에서 미리 구매하면 20% 정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야간권은 현재 온라인에서 판매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저녁에 도착할 계획이었고, 할인 금액보다 야간권이 저렴하기 때문에 티켓은 현장에서 구매하기로 했다.

온천에 입장하기 전 먼저 신발을 신발장에 넣고 열쇠를 챙겨야 했다. 신발장 열쇠는 온천 안에서 결제를 할 수 있는 카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절대 잃어버리지 않게 주의하라는 안내가 있었다.

온천에 입장하면 입구에 갈아입을 유카타와 끈, 큰 수건, 작은 수건, 물품을 담을 가방을 비롯해 일회용 칫솔, 양말, 면도기 등 각종 물품이 구비되어 있다. 샤워도구도 욕탕 안에 모두 있기 때문에 따로 준비물을 챙기지 않고 가도 된다는 것이 여행 중 부담을 덜어주었다.

온천의 아쉬운 점

유카타는 성별과 사이즈에 따라 네다섯 종류의 디자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각자 원하는 유카타를 골라 탈의실에 들어갔다. 탈의실에는 벗은 옷과 소지품을 넣을 수 있는 보관함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신발장 열쇠와 별개로 또 새로운 열쇠를 챙겨야 했다.

그리고 위층에 있는 탕에 들어가기 전에도 유카타를 넣을 수 있는 보관함과 열쇠가 또 있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겼는데 번호는 제각각인 세 개의 열쇠를 구별하고 찾는 일은 아이들 뿐 아니라 나에게도 헷갈리는 일이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나의 열쇠로 전부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유카타를 갈아입는 과정 역시 난이도가 높았다. 옷을 입는 방법이 벽에 붙어있었지만 길게 늘어진 천을 끈 하나로 여미는 방식은 우리 아이들이 혼자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나마 한 종류는 상, 하의가 분리되어 있고, 하의가 원피스 식으로 입을 수 있게 되어 있어 조금 수월했는데, 다른 옷들도 좀 더 이용자의 편의를 고려하여 개선됐으면 싶었다.

한참 만에야 모두 유카타를 갈아입고 모였다. 그 와중에 신발장 열쇠를 옷 보관함에 넣어놓고 온 아이들이 있어 다시 탈의실을 다녀오기도 했다. 열쇠의 분실과 무분별한 결제가 우려되는 아이들에게 각별하게 당부를 했다.

소라니와 온천 안은 일본의 옛 거리처럼 꾸며져 있어 사진 찍기가 좋았다. 탕에 들어가 모양새가 흐트러지기 전에 기념사진을 찍었다. 포토존의 옆으로 이지카야 및 레스토랑이 있는데 문을 연 곳이 많지 않아 선택지가 없었다. 그래도 돈가스, 덮밥, 우동, 초밥 등 메뉴는 다양하게 있었다.

주문은 각 테이블에 있는 태블릿 메뉴판에 신발장 열쇠를 찍은 후 원하는 메뉴를 주문하고, 온천에서 나갈 때 한꺼번에 결제하는 방식이었다. 한글로 언어를 바꿀 수 있었지만 사진과 글씨가 작고, 선택하는 옵션이 너무 많았다. 그나마 각자 테이블에서 주문하는 거라 기다리는 사람 눈치 볼 필요 없이 천천히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식당, 오락실, 옥상 정원, 족욕탕 등이 함께 있어 이용하기 좋은 온천 테마파크
ⓒ 권유정
하지만 주문한 음식이 나왔을 때 비슷한 종류는 누가 선택한 메뉴인지 헷갈리기도 해, 결제한 열쇠의 번호 등 주문자를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보완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지갑을 소지하지 않은 채 편하게 온천 안을 다닐 수 있고, 앉은 자리에서 직원을 부르지 않고 주문을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장점이다. 그러나 그 편리를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으려면 보다 세심하게 불편함을 살피고 개선방법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긴 주문과 식사를 마치고 나니 시간은 8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본래 9시쯤에는 나와서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그러기에는 온천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잠시 고민 끝에, 10시까지 실컷 논 후에 입구에서 만나자고 공지했다.

늦은 귀가에 피로가 예상되었으나 깨끗이 씻고 가니 도착해서 잠만 자면 되고, 또 자유여행이니 푹 자고 내일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면 될 터였다. 실제로, 새벽같이 깨어나던 아이들은 다음날부터는 8시가 넘도록 고요하게 숙면을 취했다. 넉넉하게 주어진 시간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그룹별로 흩어졌다.

미처 예상 못한 족욕의 어려움

용돈 사용과 샤워 등 자기 관리가 가능한 아이들은 서너 명씩 그룹을 지어 보내고, 나머지 아이들은 남녀를 나누어 교사가 함께 했다. 소라니와 온천에는 욕탕뿐만 아니라 족욕탕, 옥상 정원, 오락실 등 즐길거리들이 있어서 좋았다.

특히 옥상 정원은 꽤 넓고 예쁘게 꾸며져 있어 야경이 멋졌고, 낮부터 보아도 좋았을 것 같았다. 다만 옥상 정원 안 족욕탕은 예상치 못한 큰 문제가 있었으니. 발만 담그면 되니 몸 전체를 담그는 목욕탕보다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크나큰 오산이었다.

"으악! 옷 조금 내려, 속옷이 다 보이잖아! 아니, 넌 더 올려야지, 밑단이 다 젖잖아!"

족욕탕에 다다름과 동시에 깜짝 놀란 교사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렇다. 치렁치렁한 유카타를 적당히 무릎 높이까지만 걷고 발을 담그는 건 엄청나게 고난이도의 미션이었다.

발목까지 내려오는 유카타는 발을 담금과 동시에 함께 잠겼고, 옷을 걷기 위해 말아쥐면 순식간에 속옷이 보일 만큼 바짝 올라갔다. 겨우 적당한 높이로 맞추어 잡아도, 고정이 되지 않는 옷은 걸음을 옮기면 다시 위아래로 요동을 쳤다.
 
 옥상 정원의 야경
ⓒ 권유정
평일 저녁이어서인지 다른 손님이 많지 않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무릎 아래로는 맨다리를 족욕탕에 담그고, 무릎 위로는 유카타를 덮어 지나치게 다리가 노출되지 않도록 조절하기까지 수차례 소동이 있었다. 차라리 옷을 다 벗고 들어가는 목욕탕이 쉬웠겠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이었다.

가족 외의 사람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는 기회가 별로 없는 요즘 아이들은, 타인과 함께 할 때 배려하고 주의해야 할 부분에 대해 미처 배우지 못한 것들이 많다. 숙소에서도 샤워 후 홀딱 벗은 채 복도를 가로지른다든지, 속옷만 입고 돌아다닌다든지, 내 것이 아닌 음식도 있으면 그냥 먹는다든지 등등 내 집에서는 괜찮지만 타인과 함께 할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는 행동들에 대해 문제의식 자체가 없는 경우가 있다.

사실 우리끼리 있을 때에도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려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정과 학교를 넘어 여러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려면, 관대한 이해보다는 보편적인 사회의 시선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적 규칙을 이해하고 눈치껏 적용하기란 우리 아이들에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가정에서든 학교에서든 일관되게 지도하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더 도움이 된다.

물론 노력해도 어려운 부분이 있기에 사회에는 더 따뜻한 시선을 바란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 아이들에게는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끊임없이 가르치고 또 가르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요란했던 족욕을 마친 후에는 샤워를 하고 진짜 온천탕을 즐겼다. 여러모로 어려웠던 온천이지만 막상 뜨끈한 탕에 몸을 뉘이니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았다. 10시까지 놀기로 결정한 게 잘했다 싶을 만큼. 

탕에서 나와 옷을 갈아입을 때에는 우려했던 대로 세 개나 되는 열쇠를 찾아 맞추느라 시간이 걸렸고, 각자 사용한 금액을 결제까지 하고 나니 30분이 넘어갔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은 잠깐의 행복을 잊고 좀 더 서두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숙소까지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 했지만 다행히 환승 없이 10여 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경로였다. 역 안에서 어느 노선이든 이동이 가능한 우리나라와 달리 노선별로 입구가 달라 다소 헤맸지만 지하철을 타고 오사카코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찾아가는 길은 수월했다. 이제 동네에서 숙소로 걸어가는 길은 교사들보다 몇몇 아이들이 더 잘 찾을 정도였다.

길었던 하루에 아이들도 피곤했는지 금세 잠이 들었다. 누적된 피로만큼 추억도 켜켜이 쌓인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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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brunch.co.kr/@h-teacher)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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