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염 속 노트르담 대성당, 너무 리얼해서 역효과 불러온 장면

원종빈 2023. 7. 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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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원종빈 기자]

*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2019년 4월 15일, 노트르담 대성당의 목재 지붕에 담배꽁초 하나가 떨어진다. 오래된 전선에서는 불꽃이 튀긴다. 불과 몇 시간 후, 860년 역사가 깃든 건물을 비롯해 가시면류관, 성 십자가, 십자가 못 등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성유물까지 모두 불탈 위기에 처한다.

이에 상황을 파악한 파리 소방대가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한다. 그러나 교통 체증을 비롯해 여러 이유로 화재 진압은 뜻대로 진행되지 않고, 불은 점점 더 커진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불탔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뉴스는 충격적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 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버텼던 웅장한 건물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그렇게 파리의 역사는 불탔다. 파리에서 약 9천 km 떨어진 곳에 사는 한국인도 이렇게 놀랐으니,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경악했을지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노트르담 온 파이어>를 보면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화재 발생부터 종료 시점까지 훑으면서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의 의미를 알려주기 때문이다. 특히 아노 감독의 접근법이 흥미롭다. 화재 사고 당시에는 인명 피해가 없었다. 따라서 통상적인 재난 영화처럼 특정 인물의 시점을 따라가는 드라마틱한 전개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에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정면 승부를 건다. 사고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고 화재를 두 관점에서 풀어나간다. 불을 끄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소방관 이야기는 영화의 스펙터클과 장르적 쾌감을 맡는다. 노트르담 대성당 관계자와 파리 시민의 반응은 사고의 의미와 직결된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아쉽지만 두 마리 토끼 중 하나만 잡았다. 

스펙터클은 잡았다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스틸 이미지.
ⓒ 찬란
 
재난 영화의 재미를 볼거리에서 찾는다면 <노트르담 온 파이어>은 분명 성공적이다. 제48회 세자르 영화상 시각효과상 수상작다운 스펙터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상황 재현이 돋보인다. 소실된 성당의 상부 부분을 CG로 만들어 낸 결과 '혹시 성당이 불에 안 탔나?' 혹은 '벌써 복원이 다 됐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뉴스 자료나 SNS 화면 등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사실성을 더했다. 

특정 영웅을 치켜세우는 대신 사투를 펼친 소방대원들의 모습을 세심히 묘사한 대목도 인상적이다. 계단과 발걸음 수를 세면서 검은 연기와 유독 가스로 가득한 성당에 진입하는 소방관. 호스가 꼬이고 수도관이 터져서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유물을 구하기 위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성당 안에서 작업하는 소방관까지. 당시의 긴박감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한다. 

적절한 강약 조절도 눈에 띈다. 파리의 악명 높은 교통 체증을 묘사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차가 움직일 줄 모르는 거리 상황 때문에 소방차는 제때 성당에 도착하기 못한다.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화면을 분할해서 불타는 성당과 성당을 향해 달려가는 소방대의 모습을 교차하기에 더 효과적이다. 화재를 막지 못하는 결말을 알고 있는데도, 소방대원의 답답함이 스크린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다. 

노트르담, 파리, 그리고 프랑스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스틸 이미지.
ⓒ 찬란
 
반면에 재난 영화의 다른 미덕에 주목할 경우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실패에 가깝다. 많은 재난 영화는 재난을 스펙터클로 활용하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스펙터클을 오락의 영역에 남겨두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신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로 활용한다. 가상의 재난을 스크린에 투사해 공동체가 겪은 실제 재난을 마주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공통의 아픔과 상실을 보듬는다. 실제 재난을 다룬 영화라면 두말할 필요 없다.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특히 파리 시민에게 노트르담 대성당이 갖는 의미를 바탕으로 재난의 사회적 의미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영화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관광 가이드의 입을 빌려 노트르담 대성당과 관련된 설명을 들려준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잔 다르크의 명예 회복 재판이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황제 대관식 등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이다. 또 존재 자체로 파리의 중심이자 상징이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의 시테 섬 동쪽에 위치해 있는데, 시떼 섬은 파리의 발상지로 여겨지는 장소이기 때문. 실제로 시테 섬은 옛 법원 청사이자 마리 앙투아네트가 투옥됐던 교도소인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 생트 샤펠(Sainte Chapelle) 성당, 헌법 재판소(Palais de Justice)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건축물로 가득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역사와 상징성은 화재 당시 프랑스 사회의 난맥상과 겹쳐진다. 당시 프랑스는 사회적 갈등이 극심했다.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는 가운데 마크롱 대통령이 친기업 정책을 펼치자 프랑스 대다수 시민은 노란 조끼 시위에 참여해 반발했다. 실제로 초반부에는 시위 관련 뉴스가 삽입되어 있다. 

영화는 이처럼 혼란스러운 프랑스 사회를 은연중에 불타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빗댄다. 그러면서 화재 진압에 의미를 부여한다. 단순히 문화재를 지켜낸 것이 아니라 프랑스라는 공동체의 정신적 유산을 구했다고. 한 층 더 격정적인 이야기로 포장하면서 화재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의도는 좋았다
 
 영화 <노트르담 온 파이어> 스틸 이미지.
ⓒ 찬란
 
그런데 정작 영화는 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다.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초반부에 노트르담 대성당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기는 하나 단편적이다. 종교적 맥락에 대한 설명은 부재하다. 그 결과 배경 지식이 풍부하거나 천주교 교리에 익숙한 경우가 아니라면 클라이맥스의 의미와 감흥을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어렵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파리 시민들이 노트르담 대성당 주변에 모여서 함께 성모송을 바치는 순간이다. 마지막 화재 진압 작전이 시도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때 파리 사람들이 하필이면 성모송을 외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본래 프랑스어로 노트르담(Notre-Dame)은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즉, 노트르담 대성당은 그 자체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건축물이다. 또 승천한 성모 마리아는 프랑스의 수호성인 중 하나다. 

따라서 파리 시민들이 성모송을 바치는 것은 간절함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하늘에 있을 마리아가 도와주길,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신에게 기도해 주길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 작전에 나선 소방관들이 감동에 가득 찬 표정을 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한국 관객은 이 감정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 어렵다. 작중 성모 마리아와 성당의 관계가 전혀 설명되지 않은 까닭이다.

그나마 있는 몇 안 되는 장면도 재난 영화의 클리셰에 가까워서 악효과를 낸다. 불을 끄기 위해 뿌린 물이 성모상에 떨어지자 그 물을 마치 성모의 눈물처럼 묘사한다. 또 어린아이가 성모상 앞에 바친 촛불이 끝내 꺼지지 않았다고 강조하기도 한다. 설명 없이 보면 그저 '신에게 기도하니 천운이 따랐다' 정도로 해석되기 충분한 대목이다. 

극 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

이처럼 사실적인 스펙터클과 사회적 의미 사이에서 균형을 못 잡다 보니 부차적인 문제도 생긴다. 사건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나머지 인물이 소외된다. 스토리를 이끄는 몇몇 인물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풀리지는 않는다. 단지 화재를 진압하는 과정을 투영할 도구로 활용될 뿐이다. 

처음 화재에 투입된 신참 소방관 둘의 썸, 의견 차이로 갈등을 빚다가도 마지막 작전에 함께 자원하는 소방대 중사와 중령의 신뢰도 볼 수 있다. 정치인과 언론, 화재 진압 작전을 각각 나눠 책임지는 소방대 소장과 중장의 우정도 엿보인다. 모두 드라마 한 편을 충분히 만들 재료지만, 끝내 스케치에 머무른다. 그 결과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철저한 예방 조치만이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는 평범한 다큐멘터리 같기도 하다.

따라서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반응이 갈릴 이유가 충분하다. 킬링 타임용 재난 블록버스터를 기대하면 나름대로 만족할 수도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 사고의 다양한 비하인드를 현지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반대로 사회성에 초점을 맞춘 진중한 재난 영화를 기대한다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다만 어떤 의미에서든 장 자크 아노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그는 <색깔 속의 흑백>으로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불을 찾아서>로 세자르 영화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소 평범한 필모그래피를 이어가는 중이다. <노트르담 온 파이어>는 그 필모에 한 줄을 추가하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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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https://blog.naver.com/potter1113)와 브런치(https://brunch.co.kr/@potter1113)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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