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 100% 현금 결제" 사장님의 이유 있는 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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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기획을 했던 사람이 '인쇄인들을 위하고 시민들에게 인쇄문화를 알리기 위한' 서울인쇄센터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용역으로 공공 기관을 운영하면서 공간을 꾸리는 일, 시민들을 대하는 순간들을 소소하게 일지 형식으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기자말>
[최대혁 기자]
서울인쇄센터에서는 분기마다 인쇄물 제작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크리에이터 워크숍'이라 이름 붙인 이 프로그램에서는 인쇄 상품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을 모집해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전 과정을 지원하고 있다.
▲ 3기 <크리에이터 워크숍> 결과물 크리에이터 워크숍에서는 인쇄인과 디자이너가 짝을 이뤄 인쇄상품을 개발한다. 3기 프로그램에서는 ‘서울 여행’이라는 주제로 6명의 참여자가 6종의 결과물을 제작했다. 그간 세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만든 제품들은 모두 서울인쇄센터의 홈페이지나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
ⓒ 서울인쇄센터 |
제품을 만들었다는 보람도 크지만, '크리에이터 워크숍'의 진짜 가치는 다른 데 있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지만 이를 실현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던 크리에이터가 스스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된다는 점이다. 그 길잡이를 하는 이들은 바로 충무로의 인쇄인들이다.
▲ 제작상담 중인 김용선 대표 아이디어 단계부터 제품이 완성되는 단계까지 멘토인 김용선 대표와 참여자는 수차례의 상담을 거쳐 제품의 완성도를 더해간다. 사진은 작년 11월 진행한 2기 <크리에이터 워크숍> 상담 모습. |
ⓒ 서울인쇄센터 |
김용선 대표가 이번에 멘토로 도움을 준 작품은 일러스트레이터 황소현씨가 기획한 '땡감이의 영감수집상자 in SEOUL'이다. 이 제품은 서울을 여행하면서 일지를 기록할 수 있는 노트와 스티커 그리고 여행 중 얻은 소품을 담을 수 있는 상자로 구성되어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도시마다 디자인을 구별하여 마치 전집을 구성하듯 소장하도록 디자인했다.
아기자기한 구성만큼 종류가 다양하다 보니 거쳐야 할 공정도 제각각이었다. 일단 구성에 따라 쓰는 종이도 달랐다. 상자는 디지털 인쇄 후 동판을 제작해 박을 입히고, 마지막으로는 디지털 커팅기로 잘라 접었다. 노트는 인쇄 후 표지에는 박을 입히고 수작업으로 PUR제본을 했다.
제작을 처음 하는 이들은 당연히 막막할 수밖에 없다. 맞춤한 종이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부터 공정마다 최소한의 손실률로 정성껏 만들어 주는 인쇄사를 찾는 일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김용선 대표와 같은 멘토들이 있어 그 과정을 효율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제가 할 수 있는 거는, 어떤 상품을 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같이 논의하는 거 그리고 후가공 쪽에 어떤 게 들어갔으면 좋은지, 종이를 어떤 거 사용했으면 좋은지 그런 것들이고 이 업체를 소개해 준다든지 같이 가본다든지 이런 것들이었어요."
무형의 아이디어를 손에 잡히는 제품으로 만들어 주는 일은 자신의 일과라며, 김용선 대표는 겸손하게 얘기했지만, 그가 제작 과정에서 한 일은 적지 않다. 참여자의 초기 아이디어는 이미 개발한 '땡감이'라는 캐릭터를 응용한 스티커가 핵심이었다. 단일한 스티커를 제작하는 공정은 어렵지 않다. 요즘 스티커 제작을 전문으로 해주는 업체도 꽤 많아 별도의 멘토링이 필요 없을 것 같았다.
▲ 땡감이의 영감수집상자 in SEOUL 김용선 대표의 멘토링을 거쳐 제작 완료된 결과물이다. 초기의 아이디어는 멘토링을 거치면서 다양하고 완성도 있는 결과물로 제작된다. |
ⓒ 서울인쇄센터 |
김용선 대표는 1993년 인쇄 업계에 발을 들였다. 손으로 직접 오리고 붙이며 인쇄할 판을 편집하던 시절 처음으로 컴퓨터를 사용한 편집을 시작했다고 한다. 30년 동안 디자이너이자 기획사 대표로서 의뢰를 받은 인쇄물을 제작하면서 그는 제작 현장을 알아가는 데 십수년이 걸렸다고 했다. 김용선 대표는 '크리에이터 워크숍'이 자신과 같은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들에게 시행착오를 줄여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 남양에이피 1층에 걸려 있는 문구 ‘당일 100% 현금 결재’는 인쇄인들과의 상생을 위해 김용선 대표가 실천하고 있는 일이다. |
ⓒ 최대혁 |
인터뷰를 이어가던 중 사무실 벽에 걸린 글귀가 시선을 끌었다. 글에는 '남양에이피와 거래하는 모든 납품업체에게 (자재 공급, 인쇄 후가공 등) 대금을 당일 100% 현금을 결제해 드리오니 수령해가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대부분 원청으로부터 제작비가 들어온 다음에 하청에 지불하는 터라 하청으로 내려올수록 결재일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결재 지연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이야기인데, 김용선 대표의 대답은 별일 아니라는 듯 담백했다.
"지금도 저희가 하청도 하는데 결제를 계속 못 받고 몇 개월씩 못 받기도 하고 그래요. 결재가 밀리면 밀릴수록 (금액이) 커지는데 커질수록 더 자꾸 미루더라고요. 그러니까 저희는 재료비 같은 경우는 바로바로 해 주려고 해요."
상생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나름 실천하고 있지만, 김용선 대표도 최근 인쇄 업계의 어려움을 부쩍 실감하고 있다. 자구책으로 환경경영시스템이나 품질경영시스템 등 여러 인증을 취득하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최근 대형 기획사와 물품 공급 계약을 맺는 결실을 이루었지만, 그가 보기에 가장 큰 문제는 단가다. 그가 인쇄 업계에 들어올 때의 단가가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 데다 여름철 비수기가 되면 그마저도 반토막이 나기 일쑤라고 한다.
"전지 500장(1연, 1 roll) 기준으로 1도당 인쇄비가 7천~8천 원해요. 4도면 2만 8천 원인 거죠. 그런데 30연, 50연 이렇게 올라가면 가격을 4천 원 정도에 해달라고 해요. 비수기에 들어가는 여름철이 되면 더 낮아져도 기계 멈추느니 원가로 그냥 돌리는 거예요. 정상이라면 2만 원 받아야 하는데 3천 원, 4천 원에 돌리는 거죠."
김용선 대표는 충무로의 주민이기도 하다. 그의 집은 사무실에서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진양아파트에 있다. IMF 때 이곳으로 이사해 낳은 둘째가 지금 스물여섯이 되었다.
인쇄사를 운영하면서도 지역의 자치위원으로, 적십자 봉사자로,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곳에서 도시재생이 한창이던 2019년에는 진양아파트 부녀회 회장으로 뽑혀 지금까지 아파트 공동체를 위한 일들에 앞장을 서 오고 있다.
진양아파트는 인쇄단지 한가운데 자리한 터라 주민들 중에는 인쇄인도 많다고 한다. 부녀회의 구성원 중에서도 상당수는 김용선 대표처럼 아직도 인쇄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용선 대표는 부녀회에서 인쇄 관련한 이야기를 따로 하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그래도 본인들의 재능은 숨길 수가 없는 모양이다.
최근 중구에서 진행한 공모사업에서 진양아파트 부녀회는 인쇄사에서 다량으로 나오는 파지를 이용한 상품들을 제안해 선정되었다고 한다. 고급 파지를 모으는 일이며, 제품을 만드는 일 등등 인쇄를 잘 아는 이들이 아니면 쉽게 벌일 수 없는 사업이지만 벌써 시제품 단계를 넘어 제작을 앞두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서울인쇄센터에 바라는 점이 있는지를 물었다. 인터뷰 내내 그랬듯이 군더더기 없이 평소 당사자로 느끼는 아쉬운 점을 바로 들을 수 있었다.
"인디자인 포토샵 같은 프로그램은 저도 좀 배워볼까 하고 봤더니 시간이 업무 시간에 있다 보니까 어려운 거예요. 참여하기가. 저녁이나 주말에 하면 좀 해볼 만도 한데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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