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인터뷰] 셔틀콕 천재에서 여제로...안세영 "나는 아직 이룬 게 없다"

안희수 2023. 7.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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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소녀에서 여제로 거듭나고 있는 안세영. 대한체육회 진천선수촌 진천=정시종 기자 

한국 배드민턴 에이스 안세영(21·삼성생명)은 파이팅이 넘치는 선수다. 트레이드마크인 헤어밴드를 벗어던지고, 한쪽 손을 귀에 갖다 대며 관중의 환호를 유도하는 승리 세리머니로 쾌감을 안긴다. 

김연아(피겨 스케이팅) 김연경(배구) 등 각 종목 슈퍼스타들이 나선 토크쇼(유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하고, 유명 패션 잡지 화보 촬영에선 능숙한 포즈와 표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안세영은 의외로 차분하고 수줍음이 많았다. 그는 "솔직히 (이런 인터뷰처럼) 코트 밖 활동은 익숙하지 않다. 나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좋지만, 쑥스럽기도 하다"라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그 엄청난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가"라는 물음에 "코트 위에 있을 때만 그런다"라고 했다.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도, 코트 밖을 벗어나면 바로 잊고 다시 다음 경기를 준비한다고. 

안세영은 상반기 스포츠계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선수 중 하나다. 출전한 세계배드민턴연맹(BWF) 대회마다 쾌거를 전했다. 8개 대회 연속 결승에 올랐고, 금메달만 5개를 따냈다. ‘배드민턴 윔블던’으로 인정받는 전영오픈에서 세계 톱랭커 천위페이(중국·랭킹 3위)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올림픽(1996 애틀란타) 금메달리스트 방수현 이후 27년 만에 이 대회 여자단식을 제패했다. 그사이 랭킹도 세계 4위에서 2위(4일 기준)로 올랐다. 2019년 한국 선수 최초로 BWF 신인상을 수상하며 '천재 소녀'라는 별명을 얻은 안세영이 꾸준히 성장하며 '여제' 등극에 다가섰다. 


정작 안세영은 지난 5년 동안 실력이 정체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2022시즌을 마치고 돌아보니 그동안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경기를 즐기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많이, 또 높은 강도로 훈련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어느새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라고 돌아봤다. 

올해 안세영이 보여주고 있는 화려한 퍼포먼스는 슬럼프를 이겨낸 결실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 라켓을 쥐지 않았다. 대신 약점인 근·체력 보강을 위해 노력했다. 

안세영은 “공격력이 약하다는 지적도 결국 파워와 지구력이 뒷받침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솔직히 근력 운동에 소홀했다. 몸이 커져서 둔해 보이는 게 싫었다. 하지만 슬럼프를 겪으며 약점을 직시했다. 무작정 뛰었고, 필사적으로 근력 운동을 했다”라고 전했다. 

가족·동료들의 도움으로 멘털까지 다잡은 안세영은 올해 첫 출전한 말레이시아오픈부터 달라진 경기력을 실감했다. 결승에서 랭킹 1위 야마구치 아카네(일본)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친 대회였다. 

안세영은 “(결승에서) 졌지만 기뻤다. 수비만 하며 끌려다니다가 내 스피드를 활용하지 못했던 지난해와 달리, 내가 리드하는 랠리가 많아졌다. 무엇보다 이전처럼 승패에 연연하지도 않았다. ‘즐겼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이어 그는 “이제 스스로도 ‘공격도 어느 정도 한다’고 믿는다”라며 웃었다. 실제로 이후 안세영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안세영은 천위페이·야마구치·타이쯔잉(대만·랭킹 4위)과 함께 배드민턴 여자단식 ‘빅4’로 거듭났다. 기세는 네 명 가운데 가장 좋다. 지난해까지 천위페이에게 1승 8패, 야마구치에게 5승 10패로 크게 열세였지만, 올해는 각각 3승 2패로 우세했다. 

높아진 위상에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안세영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나는 아직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그들 사이에 껴있는 게 숨이 막힐 때가 있다”라며 “어떻게 지난 몇 개월 결과로 실력을 평가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전에 그들에게 훨씬 많이 졌다”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무엇보다 이룬 성과 차이가 크다고 본다. 천위페이는 2022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야마구치는 세계선수권 2연패(2021~2022)를 해낸 선수다. 안세영은 “난 아직 이룬 게 없다. 당연히 자만심이 생길 틈도 없다”라고 했다. 


코트 밖 안세영은 진중하고, 생각이 많다. 그런 면이 자신을 객관적으로도 평가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가 톱클래스로 올라선 이유다. 

경쟁자들의 기량이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승부에서 질 생각은 없다. 안세영은 “예전보다는 (세계 톱랭커들을) 잡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선수들처럼 빨리 나만의 (경기) 스타일을 만들어서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더 높은 무대에서 화끈한 세리머니를 보여주는 게 안세영의 목표다. 그는 “랭킹 1위도 올라보고 싶고,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대회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도 따고 싶다. 테니스에 그랜드슬램(4대 메이저 대회 제패)이 있는 것처럼 나도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번씩은 해보고 싶다. 아직 멀었지만, 그렇게 한 계단씩 방수현 선배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전영오픈 우승은 그 첫 발이다. 오는 8월 세계선수권,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안세영을 기다리고 있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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