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스릴러·감성… 신작 영화 뭐 볼까
예술 경지에 다다른 호러, ‘보 이즈 어프레이드’
영화 ‘보 이즈 어프레이드’(감독 아리 에스터)는 ‘유전’과 ‘미드소마’로 국내에도 팬덤을 보유 중인 아리 에스터 감독 신작이다. 편집증을 앓는 보(호아킨 피닉스)가 자신을 집착적으로 사랑하는 엄마 모나(패티 루폰)를 만나러 가는 길에 벌어지는 기이한 여정을 담는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에는 기억과 환상, 현실이 마구잡이로 뒤섞여있다. 몽환적인 분위기 사이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준다. 보는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삶 속에서 불운에 멍들었다. 보의 무의식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에게도 그의 불안감이 조금씩 스며든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예술성이 도드라진 작품이다. 초현실을 표현하는 감독의 시도는 참신하고 과감하며 난해하다. 집중해서 보다가도 전개를 놓치는 순간이 있다. 3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 역시 장벽이다. ‘유전’, ‘미드소마’를 재미있게 본 관객은 세 작품을 관통하는 아리 에스터 감독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겠다. 가족과 트라우마라는 두 줄기를 각기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는 솜씨는 역시나 일품이다. 영화 ‘조커’ 속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감탄했다면 ‘보 이즈 어프레이드’로 또 한 번 놀랄 듯하다. 아리 에스터 감독이 구현한 형이상학적 세계에서 그는 이질감 없이 마음껏 뛰어논다. 만만하게 관람할 작품은 아니다. 명쾌한 이야기를 원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예술적인 자극, 새로운 공포감을 원했다면 괜찮은 선택이다. 상영시간 179분.
오대환의 고군분투, ‘악마들’
‘악마들’(감독 김재훈)은 배우 오대환의 새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독특하다. 영혼이 다른 몸에 옮겨 붙은 보디 체인지를 소재로 삼았다. 몸이 바뀐 대상은 연쇄살인마와 형사. 연쇄살인마 몸에 갇힌 형사는 절규하고, 형사의 삶을 차지한 연쇄살인마는 그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려 한다. 형사는 가족과 제 삶을 사수하기 위해 연쇄살인마와 함께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잡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형사 재환은 오대환이, 살인마 진혁은 장동윤이 각각 연기했다.
저예산 영화지만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인 티가 난다. 보디 페인팅을 칠한 살인마 집단을 표현하거나, 조명과 구도를 활용해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다만 수위가 꽤 과격하다.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이어도 스너프 필름을 연상케 하는 잔인한 묘사가 자세히 담긴다. 관객에 따라서는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신선한 소재를 풀어가는 방식 역시 아쉽다. 무리수처럼 느껴지는 대목에서는 배우들의 연기가 겉도는 듯 보인다. 이를 상쇄하는 건 오대환이다. 정의감과 복수심, 적개심에 불타는 형사부터 비열하고 잔혹한 살인마를 각기 다른 이미지로 연기한다. 다수 작품에서 악역과 선역을 오간 그의 새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 MBC ‘옷소매 붉은 끝동’의 호위무사를 기억하던 이들에겐 신선한 충격일 듯하다. 상영시간 106분.
잔잔하고 진한 잔상,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감독 김희정)는 잔잔한 감성의 힘을 보여주는 영화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과 동생을 잃고 폴란드 바르샤바로 떠난 명지(박하선)와 지은(정민주), 단짝 친구와 이별한 해수(문우진)가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 친구 등과 사별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들은 담담하게 이별을 받아들이면서도 문득 치미는 그리움에 힘겨워하고, 그럼에도 묵묵히 삶을 이어간다. 버티던 사람들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찾은 바르샤바에서 이들은 도리어 생생히 떠오르는 기억에 흔들린다.
상실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일순 강해진다. 애도하며 쏟은 눈물은 이들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양분이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담담한 화법으로 관객의 마음을 다독이며 다정하게 위로를 건넨다. 자극적이진 않다. 과격한 사건이나 폭풍전야 같은 감정을 기대했다면 잘 맞지 않을 영화다. 하지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는 조용히 마음을 건드는 힘이 있다. 자연스레 소중한 사람이 떠오를 때면 어느샌가 영화가 전하는 감상에 흠뻑 젖은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삶에서 예기치 않은 공백을 경험해 본 이들이라면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잔상이 얼룩처럼 남을 수 있겠다. 어쩐지 지우고 싶진 않은 흔적이다. 상영시간 104분.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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