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석 발굴? 무모한 도전?…세대교체 ‘모차르트!’ [쿡리뷰]
‘모험’. 지난 1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개막한 뮤지컬 ‘모차르트!’를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단연 모험이다. 한국에서 10년 넘게 공연돼 이미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작품에 모험이 웬 말인가 싶겠지만, 열쇳말의 비밀은 캐스팅에 있다. 주인공 모차르트를 맡은 네 배우는 이 작품에 처음 출연하는 ‘뉴 페이스’다. 게다가 넷 중 셋은 전업 뮤지컬 배우도 아니다. 개막 전부터 기대보다 의심이 컸다. 뚜껑을 열어보니, ‘모차르트!’를 예매한 관객이라면 일단 걱정은 내려놔도 될 듯하다. 네 배우 중 뮤지컬 경력이 가장 많은 이해준은 연기와 노래 모두 안타 이상을 쳤다.
‘모차르트!’는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불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생애를 따라간다. 모차르트는 천재다. 5세 때 이미 작곡을 깨쳤다. 하지만 이런 음악 신동도 귀족에 고용돼야 먹고 살 수 있는 처지. 자유분방한 모차르트는 고용주 눈밖에 벗어나기 일쑤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속이 탄다. 망아지처럼 날뛰는 아들에게 “권력을 얕보지 마라”고 경고한다. 자신만만하던 모차르트는 어머니의 죽음과 거듭된 실패 속에 마음이 병든다. 음악은 그의 고통을 먹으며 자란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차르트는 레퀴엠(죽은 이를 위한 음악)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모차르트는 영혼의 마지막 방울을 쥐어짜 악보를 쓴다. 레퀴엠은 그를 위한 음악이 된다.
2010년 한국에서 처음 공연된 뮤지컬 ‘모차르트!’는 공연계 스타 등용문으로 통한다. 주인공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존재감에 많은 걸 기대서다. 우선 주인공 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데다, 노래와 연기 모두 고난도다. 김준수, 박은태, 박효신, 박강현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스타들이 ‘모차르트!’를 거쳐 갔다. 새 얼굴로 발탁된 이해준은 노래와 연기의 균형이 좋다. 대학로 중소극장에서 10여년 간 쌓은 관록이 돋보인다. 뮤지컬 ‘엘리자벳’에서 보여준 퇴폐미나 전작 ‘베토벤’의 단정한 느낌과는 영 딴판이다. 자유롭고 패기 넘치는 모차르트를 활기차고 에너제틱한 인물로 되살린다. 그가 연기하는 모차르트는 고통보단 성장에 방점이 찍혔다. 가족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자유로운 음악을 향한 확신으로 내면이 단단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같은 배역으로 그룹 엑소 멤버 수호와 엔플라잉 멤버 유회승, 가수 김희재가 캐스팅됐다. 김희재는 이번이 첫 뮤지컬이다. 배역 크기와 성격을 고려하면 모험적인 캐스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단 제작진은 만족하는 분위기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앞서 열린 프레스콜에서 “모차르트 역의 배우들이 무대에 익숙할 줄 알았는데, 공연 시작 전 떠는 모습을 보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무대가 무섭다’는 마음으로 임하면 못 할 수가 없다. 경외심을 가지고 무대에 임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실험적인 배우 기용을 가능케 만든 숨은 공신은 홍경수, 민영기, 김소향 등 베테랑 배우들이다. 관객이 주인공의 감정 변화를 따라갈 수 있도록 정서적인 토대를 탄탄히 쌓는다.
‘모차르트!’는 서사보단 상징이 도드라지는 작품이다. 뮤지컬을 처음 보는 관객이라면 불친절하게 느낄 수도 있다. 반면 그만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점이 매력이기도 하다. 이번 시즌에선 깃털이 중요한 상징물로 등장한다. 모차르트가 숨을 거둔 후 수많은 깃털이 승천하며 여운을 남긴다. 깃털은 모차르트의 음악과 그 음악을 위해 희생된 삶을 나타낸다. 권은아 연출은 쿠키뉴스에 “모차르트는 삶의 여정 내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고 울부짖지만, 그 역시 자신의 운명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거나 이해하지 못해 더 행복할 수 있었을 삶을 희생한다. 그 대가로 남는 것이 역사에 다시 없으리라고 평가받는 위대한 음악”이라며 “모차르트가 죽고 난 후 등장하는 깃털이 세상에 울려 퍼지는 음악이자 희생된 모차르트의 삶으로 보이길 바랐다. 깃털을 모차르트의 위대한 삶으로 본 관객에겐 각자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일 위로를, 모차르트의 희생된 삶으로 본 관객에겐 삶을 더 행복하게 끌어갈 용기를 드릴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은 다음 달 22일까지 이어진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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