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요즘 쉬는 풍경
일상의 속도와 시선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쉼이 된다
무엇이든 그냥 하던 일도 ‘잘’이라는 부사가 등장하면 돌연 긴장감과 책임감이 생긴다. 내 행동의 기준을 정하는 ‘잘’ 앞에서는 특히 그렇다. 일이나 식사처럼, 옳고 바른이란 ‘잘’의 본래 뜻이 수월하게 들어맞는 영역에선 방황이 덜하지만 ‘잘 쉬는 법’을 떠올리면 어떤 것이 훌륭한 쉼인지 확신이 없다. 올바르게 쉬는 법이 있다면 그걸 따르고 싶어진다. 정확하게 쉬고 싶어진다.
‘잘’의 기준은 분명 시대를 따른다. 매일같이 새로운 이름의 기술이 등장하는 요즘, 일을 잘하는 방식은 분명 이전과 다를 것이다. 근면과 효율은 기술에 위탁하고 창조와 통찰을 궁리하며 기술과 슬기롭게 공존하는 것이 이 시대 일의 방식이라면, 쉼의 방식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쉼의 방식에도 혁신이 일어났을까?
국세청이 지난 5월 발표한 실생활과 밀접한 100개 업종의 사업자 데이터 분석 결과는 생활상의 변화를 보여준다.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최근 5년간 독채 펜션이나 풀빌라로 대표되는 펜션·게스트하우스에 종사하는 사업자가 115% 증가했다는 것이다. 프라이빗한 숙소의 선호가 2018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하는 동안, 전통적 숙박 업종인 여관과 모텔은 11.8% 감소했다. 숙박업 흥망의 선명한 대비가 ‘요즘 쉬는 풍경’의 윤곽을 그린다.
숙소 밖이 아닌 안에서, 일상과 다른 풍경을 제안하는 숙박 시설들이 인기다. 정갈한 고가구로 채워진 고즈넉한 북촌의 한옥 독채, 벽지부터 손잡이까지 스웨덴의 가구와 생활양식으로 채워진 서촌의 게스트하우스가 사적이고 감성적인 휴식을 제안한다. 해외 건축 잡지에 등장할 법한 남다른 외관, 유럽의 어느 아티스트 집 내부를 상상하게 하는 엄선된 가구 선택과 소품 배치로 완성된 숙소들은 마치 그곳에 머무르는 것만으로도 감각적인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창밖의 이국적 풍경 대신 창 안의 내 모습을 남다르게 만들어 주는 이런 숙소들을 소셜 미디어에선 ‘감성 숙소’라고 부른다. 소셜 데이터로도 감성 숙소의 언급량이 지난 5년 동안 4.5배 이상 증가했다. 유명 체인이나 인기 관광지가 아니어도 그만의 공간적 감성이 있다면 감성 숙소는 비용에 상관없이 만실이다. 새로운 숙소의 카테고리 탄생이 새로운 쉼의 장면을 완성한다.
데이터가 말해주는 이 시대의 잘 쉬는 법은 잘난 숙소에 묵는 것처럼 보인다. 값비싸고 근사한 숙소에서 지내는 것이 ‘유행하는 쉼의 방식’임엔 공감하지만, 그것이 과연 잘 쉬는 법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잘’에는 시대성은 있어도 정답은 없다. 특히 쉼에 있어서는 더 그렇다. 쉼은 일과 달리, 오로지 나와 관련한 순간의 뭉치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쉼의 방식을 위한 고민의 중심엔 시대가 아니라 행위의 본질이 와야 한다. 잘 먹는 것의 본질이 맛과 영양에 있듯, 잘 쉬는 것의 본질은 몸과 마음의 평안에 있음을 다시 생각한다.
영국 시인 앨리스 메이넬의 ‘삶의 리듬’이라는 산문의 첫 문장은 단숨에 나에게 온전한 쉼이 무엇인지 이해시킨다.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쉼은 결국 내 생활에 최소한의 운율을 들이고 리듬을 만드는 일이다. 다른 속도로 호흡하고, 같은 장소에서 다른 것을 바라보고, 밖이 아닌 나를 향하는 시선만으로도 운율이 생긴다. 그 운율이 우리에게 괜찮은 쉼의 시간을 선물한다. 긴장과 이완으로, 일과 쉼으로, 노동과 휴식으로 만들어 낸 생활의 리듬이 모이고 쌓이면 그게 내 삶을 시로 만든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거창한 숙소나 새로운 풍경이 아니어도 충분하다. 일상을 일구는 속도와 시선을 달리하는 것만으로도 쉼이 됨을, 그것이 충분히 잘 쉬는 것임을 잊고 싶지 않다. 그저 호흡의 속도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가 닿을 수 있는 평안한 쉼을 경험하는 여름을 보내고 싶다. 달큼한 과일 향이 밴 여름의 붉은 공기를 천천히 음미하는 순간들을 모아 이 여름에서만 태어날 수 있는 시를 짓고 싶다.
정유라 신한카드 빅데이터연구소 연구원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강인 응원한 음바페’ 1100만명 낚은 AI영상의 수준
- IAEA, 일본 손 들어줬다…“오염수 방류, 안전기준에 부합”
- 운전 연습하다 바다로 ‘풍덩’…60대 남녀 창문 탈출 [영상]
- 게임템 사려고… 호의 베푼 구치소 동기 살해범의 최후
- “이삿짐서 태블릿PC 쏙”…절도 딱 걸린 할머니 2인조
- 외국인도 “다신 안 와”… 붕어빵 4개 5천원, 명동 근황
- “우비 젖은 채 지하철에”…싸이 흠뻑쇼 관객 민폐 논란
- 옹벽 충돌 전기차 운전자 사망… 불끄는데 2시간45분
- 아기 출생신고 했더니 “사망신고 완료”…시청 황당 실수
- 이마에 반창고, 턱에 멍… “문프 얼굴에 무슨 일” 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