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중국 ‘헤이하이쯔’와 한국 ‘그림자 아이’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정기 감사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어두운 민낯이 폭로되고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의료기관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미신고 영유아 2236명을 파악하고, 이 중 1%인 23명에 대한 표본조사를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2구 등 사망 또는 유기 사례가 속출하면서 충격과 파장이 커지고 있다.
투명인간 같은 ‘그림자 아이’ 사건에 따른 법적 다툼에 몰두하기 이전에 ‘세상의 빛을 본 아이가 왜 사회 시스템에 포착되지 못한 상태로 방치돼 죽음에 이르렀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집중 조명된 영아살해죄는 형법상 살인죄나 아동학대와는 맥락이 다르다. 산모의 정신적 불안 등 여러 상황을 폭넓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형법 제251조에 따르면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해, 또는 양육할 수 없다고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해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가 범죄의 구성요건이니 이를 참고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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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내 호적 없는 아동 비판 여론
한국 출생신고 없는 아이 심각
‘보호출산제’ 도입 등 서둘러야
」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영아살해 및 살해미수 관련 사건들의 1심 판결 24건 중 90% 이상은 미혼 상태의 범행이거나 경제적 이유가 범행인 경우였다. 이런 사건의 절반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더욱 기막힌 것은 대다수 가해자는 병원에서 출산하지 않았기에 결국 은폐 목적으로 제도권에서 이탈했고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범죄에 노출됐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병원 밖 출산은 추정만 가능할 뿐 정확한 통계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 더 암담하다.
1998년 여름 중국 창장 대홍수 때에 사망자 중 수천 명이 헤이하이쯔(黑孩子)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후커우(호적)에 올리지 않은 ‘투명인간’인 헤이하이쯔에 대한 인권 침해가 부각되며 국내외에서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중국에서는 개혁·개방 이후 인구 억제를 위해 시행한 산아제한 정책과 남아선호 인식 때문에 헤이하이쯔를 양산했다.
그런 중국조차 최근에는 출산장려 정책을 도입하고 미혼 부모가 낳은 자녀도 출생신고하면 각종 사회보장제도에 편입하는 등 문제를 바로잡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확인된 그림자 아이는 취약한 사회적 보호 체계와 미약한 인권 인식 등 과거 중국의 헤이하이쯔와 다를 것이 없으니 부끄럽다.
늦었지만 정부와 국회의 신속한 대처가 필요하다. 사전 예방, 꼼꼼한 정책 시행, 사후 모니터링 및 처벌이라는 3박자가 빈틈없이 움직여야 한다. 우선, 마음 놓고 아이를 안전하게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출생통보제를 내용으로 한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이 통과된 것은 다행이다.
개정안을 통해 이제는 의료기관이 아기의 출생 사실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전달하고 심평원이 지자체에 출생을 알리게 된다. 이를 통해 부모가 출생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 지자체가 직권으로 출생 신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아동의 99.8%(2021년 기준)가 의료기관에서 태어나니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아동보호 사각지대를 더 좁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는 조속히 다음 단계로 나가야 한다. 출산통보제에서 나아가 부모가 익명이더라도 병원에서 출산만 하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울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줘야 한다. 보호출산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단순히 익명으로 아이를 낳도록 보장한다는 것만으로 끔찍한 사건을 예방할 수 있다고 본다면 큰 오산이다. 임신부터 출산·양육에 이르기까지 미혼 부모에 대한 촘촘한 지원이 무엇보다 전제돼야 한다. 사회적 인식 개선 및 사회 구성원 모두의 따뜻한 배려는 기본이다.
출산과 양육은 결국 공동체가 중심이 돼야 한다. 아동은 ‘산모와의 관계’가 아닌 ‘아동 그 자체’의 관점으로 보호돼야 한다. 따라서 임신 초기부터 출산 이후 성인으로 자랄 때까지 아동 건강 정보의 연속성 확보 및 지원이 필요하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이유로 아동 건강 정보가 차단돼서는 안 된다.
세계 꼴찌라는 출산율 오명도 모자라 그림자 아이 비극을 남의 집 불구경해서는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 정치권도 여야를 떠나 신속히 후속 대책을 추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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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진 서원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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