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마음 읽기] 빠르게! 엉성하고 빠르게!

2023. 7. 5.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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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강명 소설가

1990년대 말에 빌 게이츠가 어떤 컴퓨터 박람회에서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를 이렇게 비꼬았다고 시작하는 유머가 있다. “만약 GM이 정보통신(IT) 기업들처럼 혁신을 해왔다면 지금쯤 한 대 가격은 25달러이고 1갤런으로 1000마일을 갈 수 있는 승용차가 나왔을 겁니다.” 며칠 뒤 GM이 보도자료를 내서 이렇게 응수했단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만든 자동차라면 하루 두 번씩 도로에서 갑자기 멈추는데 그때마다 시동을 껐다 켜야 다시 굴러가겠죠. 이유는 아무도 모르고요.”

실제로 게이츠가 저런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1997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컴덱스 쇼에서 자동차·시리얼과 비교하며 PC산업의 특성을 강조한 적은 있다. 게이츠는 그때 GM을 비판하지 않았으며, GM도 게이츠의 연설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리고 게이츠가 그런 연설을 하기 전부터 이미 저 이야기의 원형이 사람들 사이에 돌아다니고 있었다고 한다.

「 IT든 유튜브든 출판·언론이든
엉성해도 빠른 이에게 큰 보상
꼼꼼하게 살피는 건 옛날 얘기?
완성도는 버려야 할 시대인가

김지윤 기자

도시전설이 흔히 그렇듯, 사실이 담겨 있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거기에 끌리는 이유는 분석해볼 수 있는 이야기다. IT산업은 반세기 동안 어마어마하게 성장했고, IT 기업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혁신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의 혁신은 좀 이상하다. 덜컹거리는 제품을 내놓고 자화자찬한다. 문제가 생기면 버그 수정 패치를 내려받으라고 한다. 나로 말하자면 1994년에 윈도 3.1을 쓰며 블루스크린 현상을 처음 겪은 이후로 29년간 IT업계에 늘 불만이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엉성한 물건을 내놓을 수 있는 거야? 그런데 21세기에 대세가 된 것은 나 같은 사람들의 불만이 아니라 IT업계가 일하는 방식이었다.

최근에 한 유명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네 앱의 신기능 중 상당수는 ‘껍데기’라는 것이었다. 사용자들은 그 기능이 자동으로 실행되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로는 회사 직원들이 일일이 수작업으로 처리한다는 것. 그들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구상을 코드로 구현하고, 소비자들이 그 기능을 좋아하는지 검증하는 식으로 일하지 않았다.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핀 뒤 괜찮다 싶은 것만 개발했다. 그렇게 시간과 비용을 절감했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이야기였는데, 애플도 아이폰을 처음 공개할 때 사람들 눈을 속였다. 그때까지 아이폰은 미완성이었고, 스티브 잡스의 연설대 안에는 기능을 하나씩 넣은 시제품이 여러 대 있었다. 잡스는 그 시제품들을 번갈아들고 시연했고, 무대 뒤에서는 애플 직원들이 자기가 책임진 부분이 잘못될까 두려워 술을 마셨다.

지금은 테슬라가 완성되지 않은 기술을 양산차에 적용해 사용자를 대상으로 필드 테스트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IT기업의 정체성을 지닌 테슬라는 2017년 시가총액으로 GM을 앞지르고 미국 1위의 자동차회사가 됐다. 2020년에는 테슬라의 기업가치가 전에 ‘빅5’라고 불렸던 세계 자동차회사 5곳의 시총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커졌다. ‘빨리빨리’ 문화에 어지간히 익숙한 사람도 이런 속도 앞에서는 현기증이 인다.

과감하고 빠르지만 엉성한 만듦새와 신중하고 느리지만 치밀한 태도. 우리 시대는 전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 같다. 그 보상마저 과감하고 빠르게 주는 모양새다. 요즘은 TV 방송국도 ‘유튜브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나는 PD들에게 품질은 조악한데도 조회 수는 높은 개인 유튜버들의 영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몇 번 물었다. PD들은 빨리 만들어 올리는 게 유튜브 시대 성공의 비결인 것 같은데 자신들이 완성도를 버리지 못한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언론이나 출판 부문도 비슷하다. 주목받는다는 뉴미디어 스타트업의 글을 읽다가 기사의 기본을 갖추지 못했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은 적이 있다. 팬덤 기반 신생 출판사와 작업하다 엉터리 교정을 접하고 기함한 적도 있다. 기자들·편집자들이 도제식으로 배웠던 규칙들이 사라지고 끊긴다. “그 규칙들이 성공에 무슨 도움이 됩니까” 하고 젊은 기자나 편집자가 정색하고 따지면 사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소설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편집자 세 사람과 돌아가며 꼼꼼히 교정을 봤는데 발행인, 발행일자, 인쇄일자 등을 표시하는 판권면에 오타가 있음을 인쇄 직후 알게 됐다. 평범한 독자는 눈여겨보지 않아도 출판 관계자들은 살펴보는 페이지다. 출판사에서는 그 페이지를 다시 찍기로 했고 그 바람에 책 발간이 일주일가량 미뤄졌다. 출판사의 결정이 나는 고마웠다. 하지만 그런 정성이 판매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자기분열적 존재가 되고, 어쩌면 그게 2020년대 삶의 기본양태인지도 모르겠다.

장강명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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