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쌀을 가축 사료로 파는 ‘땡처리’ 악순환
정부가 창고에 보관 중인 쌀 14만t을 연내에 특별처분한다. 가축 사료용으로 7만t, 술 제조 주정용으로 7만t이다. ‘특별’이라는 명칭이 거창하지만, 사실 과거 비싸게 사들인 남는 쌀을 ‘땡처리’하는 조치다. 보관 기한 3년이 지나면 기존 매입가의 10~20%에 되판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큰 폭의 하락세를 보인 산지 쌀값 안정을 위해 사상 최대 물량인 77만t을 사들였다. 쌀값은 안정됐지만, 공공비축에 따른 정부 재고량이 대폭 늘었다. 4월 기준 정부 재고량은 적정 재고량(80만t)의 배가 넘는 170만t이다. 보관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쌀을 보관할 공간이 부족해 길바닥에 쌓아놓는 상황이 되자 헐값에 처분하는 궁여지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정부는 그간 3년 이상 묵은쌀은 주정용으로 처리해왔다. 2016년부터는 “피땀 흘려 지은 쌀을 개·돼지에게 퍼준다”라는 농민단체의 반발에도, 관련법을 바꿔 가축 사료용으로 처분하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공공비축과 시장격리를 위해 정부가 매입한 양곡의 판매손실은 3조2865억원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 재판매할 때까지 재고 양곡의 관리비 총액은 1조1048억원이다.(국민의힘 홍문표 의원 자료) 합치면 총 4조3913억원으로 연평균 7319억원의 세금이 쓰인 셈이다. 만약 쌀 의무매입조항을 포함하는 더불어민주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됐다면 이보다 훨씬 많은 세금이 필요했을 것이다. 민주당은 농촌 표를 의식해 4월 폐기된 이 개정안과 유사한 법안을 또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쌀 소비량은 30년 전의 절반 수준인 56.7㎏으로 역대 최저다. 반면 쌀 생산량의 감소 속도는 그에 못 미친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76만4000t으로 국내 수요량보다 15만5000t이 초과 생산됐다.
쌀 소비는 줄고 있는데, 쌀을 과잉 생산해 재고가 넘쳐나고, 늘어난 재고를 줄이기 위해 헐값에 되팔아 재정을 축내는 일을 해마다 되풀이하는 것이 옳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농업 구조조정과 스마트 영농 등을 통해 농업 선진화를 추진해야 할 판에 선심성 돈 뿌리기를 반복하는 건 농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가 새롭게 시행하는 전략작물직불제(논에 벼 이외의 작물 재배 시 보조금 지급)는 바람직한 방향이다. 한국의 곡물자급률은 20% 정도로, 쌀(92.8%)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은 자급률이 세계 최하위권이다. 작물 다각화를 유도해 식량안보와 농업구조 다변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일관성이 필요하다. 지난 정부에서 ‘타 작물 재배 지원사업’이 한시적으로 이뤄지고 중단되자 쌀 재배면적이 다시 늘어난 오류를 반복해선 안 될 것이다.
손해용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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