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사우디 유러피언 수퍼리그’

박린 2023. 7. 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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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알 에티파크와 감독 계약을 맺은 스티븐 제라드(오른쪽). AFP=연합뉴스


이 정도면 ‘사우디아라비아 유러피언 수퍼리그’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지난해 유럽 빅클럽 12개 팀이 ‘유러피언 수퍼리그’를 출범하려다가 무산됐는데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축구가 ‘현실판’으로 만들고 있다. 사우디 프로페셔널 리그가 ‘오일 머니’를 앞세워 ‘스타 선수’에 이어 ‘스타 감독’까지 쓸어 담고 있다.

‘리버풀의 심장’이라 불린 스티븐 제라드(43·잉글랜드)는 4일 사우디 알 에티파크 감독에 선임됐다. 2021년 스코틀랜드 레인저스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던 제라드 감독은 지난해 잉글랜드 애스턴 빌라에서 경질됐다. 지난달 알 에티파크의 첫 제의를 받고 거절했지만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제라드의 연봉은 약 280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브로조비치(오른쪽)는 이틸리아 인터밀란을 떠나 사우디 알 나스르로 이적했다. AFP=연합뉴스


유럽에서 뛰던 2명의 선수도 이날 사우디 진출을 결정했다. 이탈리아 인터밀란의 미드필더 마르셀로 브로조비치(31·크로아티아)가 3년간 연봉 1000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알 나스르에 입단했다. 스코틀랜드 셀틱의 공격수 조타(24·포르투갈)도 이적료 412억원에 알 이티하드 유니폼을 입었다.

알 나스르가 지난해 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8·포르투갈)를 영입한 게 신호탄이었다. 처음엔 호날두와 카림 벤제마(36·알 이티하드)처럼 황혼기에 접어든 30대 중·후반의 월드클래스 선수를 데려오다 최근엔 기류가 바뀌었다. 기량이 정점에 올라 앞길이 창창한 20대~30대 초반 선수까지 영입하고 있다.

황희찬 동료였던 잉글랜드 울버햄프턴 미드필더 네베스는 최근 사우디 알 힐랄로 이적했다. 사진 알 힐랄 인스타그램


사우디 알 아흘리에 입단한 멘디(가운데). 사진 알 아흘리 인스타그

잉글랜드 울버햄프턴의 26세 미드필더 후벵 네베스(포르투갈)는 지난달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인 784억원에 알 힐랄로 이적했다. 2021년 잉글랜드 첼시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골키퍼 에두아르 멘디(31·세네갈)도 연봉 최대 200억원에 알 아흘리 골키퍼 장갑을 꼈다. 알 힐랄은 첼시 수비수 칼리두 쿨리발리(32)를 영입하면서 쿨리발리의 모국 세네갈에 소아과 병원을 세워주기로 약속했다.

신재민 기자


알 힐랄은 잉글랜드 맨체스터 시티의 3관왕을 이끈 미드필더 베르나르두 실바(28·포르투갈)까지 노리고 있다. 31세의 프랑스 파리생제르맹 공격수 네이마르(브라질)도 사우디 이적설이 나온다. 리버풀 출신의 축구 전문가 제이미 캐러거(45·잉글랜드)는 “사우디 리그가 30대 선수를 영입하는 건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실바가 이적한다면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도 있다”며 “사우디는 골프와 복싱에 이어 축구까지 장악하려고 한다. ‘스포츠 워싱(스포츠로 인권탄압국 이미지 세탁 시도)’을 멈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스터 에브리싱이라 불리는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 AP=연합뉴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다녀온 류청 히든K 편집장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즐겨 쓰는 말이 ‘‘sky is the limit(한계는 없다)’다. 변화를 추구할 때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누구도 성공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다. 사우디는 석유 중심의 산업 구조를 다각화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다. 사우디는 40대 이하 인구가 약 69%일 정도로 젊은 나라다. 빈 살만 왕세자는 예전 같은 방식으로는 나라도, 정권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야세르 알 미세할 사우디축구협회장은 ‘사우디 축구 발전과 사우디의 비전은 일치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017년 이후의 사우디와 그 전의 사우디는 전혀 다르다’고 했다”고 전했다.

‘미스터 에브리싱’이라 불리는 빈 살만이 ‘비전 2030’을 발표한 건 2016년이다. 자산 규모가 784조원에 달하는 사우디 국부펀드(PIF)는 알 힐랄, 알 이티하드, 알 아흘리, 알 나스르의 지분을 각각 75% 보유하면서 구단에 직접 돈을 대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알 이티하드로부터 연간 427억원의 연봉 제의를 받은 잉글랜드 토트넘 공격수 손흥민(31)은 “돈보다 축구 자부심이 중요하다”며 거절했다. 손흥민은 리오넬 메시(미국 인터 마이애미), 루카 모드리치(레알 마드리드) 등과 함께 사우디의 유혹을 뿌리친 ‘낭만 선수’라며 유럽에서 찬사를 받고 있다.

☞사우디 축구리그=1976년 사우디 프리미어 리그로 창설됐다. 8월 말부터 이듬해 5월까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정규 리그를 치른다. 2022~23시즌엔 1부 리그 16개 팀이 경쟁을 벌였는데 2023~24시즌엔 18개 팀으로 늘어난다. 대부분의 팀 이름 앞에 붙는 ‘알(AL)’은 영어의 ‘the’에 해당하는 정관사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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