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벌레 600마리 날개로 장식한 말다래, 신라공주의 승마 패션
영롱한 초록빛 비단벌레 날개가 반짝였다. 날개 가장자리에 금동 테두리를 붙였다. 이렇게 만든 비단벌레 장식품 네 점을 십(十) 자로 놓고 가운데에 납작한 원형의 금장식품을 엮었는데, 그 모양이 반짝이는 꽃잎 같았다. 경북 경주시 황오동 쪽샘 유적지구 44호 무덤에서 발굴된 대나무 말다래(말을 탄 사람에게 흙이 튀지 않도록 안장 양쪽에 달아 늘어뜨린 판자) 모습이다. 비단벌레 600마리의 날개로 장식한 말다래가 한반도에서 출토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이 44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연구 결과를 4일 공개했다. 경주 쪽샘지구는 4~6세기에 조성된 신라 왕족·귀족의 집단 묘역이다. 최근 발굴 조사가 끝난 44호 무덤은 지름 약 30m의 중형급 봉분이다. 2014년 시작한 발굴 작업은 마무리까지 10년이 걸렸다. 무덤 주인은 1500년 전 신라 왕족 여성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출토된 금동관과 금동 신발 크기, 허리띠 위치 등을 고려할 때 키 130㎝ 내외, 나이 10세 전후의 신라 공주였을 거라고 설명했다.
최종 집계된 44호 무덤 출토 유물 수는 780점. 청동 항아리·솥·주전자, 금귀걸이, 금동관, 금동 신발, 금·은 팔찌, 은 허리띠, 금·은구슬을 엮은 가슴걸이, 금드리개 등이다. 그중에서도 초록빛 비단벌레 날개와 금드리개 수백 점을 이어 붙인 가로 60㎝, 세로 45㎝ 크기의 말다래가 압권이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은 “비단벌레 날개를 이용한 유물은 황남대총, 금관총 등 신라 고분 중에서도 최고 등급 무덤에서만 확인된다”며 “비단벌레 날개로 장식한 말다래가 출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만듦새도 범상치 않다. 비단벌레 날개에 금동 테두리를 붙일 때 못이 아닌 실을 썼다. 심현철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특별연구원은 “간단히 못으로 고정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실로 비단벌레 날개와 금동 테두리를 하나하나 엮어 더 정교하게 만들었다”며 “재현품을 만들 때 여러 명이 동시에 작업해서 꼬박 두 달이 걸렸을 만큼 만듦새가 정교하고 가치가 높은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금동관 내부에서는 마직물·견직물 등이 발견됐다. 특히 붉은색·보라색·노란색 등 3가지 실을 엮어 격자무늬를 만든 최고급 직물 ‘삼색경금(三色經錦)’도 확인됐다. 정인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삼색경금이 문헌이 아닌 실물 자료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분석을 통해 붉은색은 꼭두서니, 보라색은 자초를 이용해 염색한 것까지 확인됐다”고 말했다. 삼국시대 염색 직물의 안료가 밝혀진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삼색경금은 공주의 머리띠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덤 주인의 머리카락도 추가로 확인됐다. 정 학예연구사는 “유물 발굴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사례가 거의 없다”며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인간의 모발로 판명됐고, 직물이 모발 위에 덮여 있던 형태와 모발을 땋았던 흔적까지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모발은 대부분 매장 후 30년이 지나면 분해되지만, 산소가 차단된 상태에서는 부식된 상태로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발굴단 설명이다.
경주=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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