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골드

김초혜 2023. 7. 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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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금속이 천천히 식으며 드러나는 자태. 단단하고 유연한 금속에 매료된 다섯 명의 여성 공예가들.

YUN YEO DONG

고요 속에 느껴지는 금속의 율동감은 윤여동의 망치질로 탄생했다. 버킷 위의 울퉁불퉁한 표면은 금속이 하나의 작품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상상하게 만든다. 챕터원과 협업으로 만든 와인 버킷 위에는 일곱 개의 스탬프 자국이 찍혀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인물인 가니메드를 상징하는 포도와 코르크 마개, 작품이 만들어진 연도를 의미하는 숫자 ‘23’ 등 작가가 담고 싶은 이야기와 상징을 작품 위에 옮겼다. 아치 형태로 만든 손잡이는 세 개의 조각을 연결해 공예적 즐거움을 더했다.

STUDIO FOH

금속으로 정물화 같은 풍경을 그리는 스튜디오 포는 자연이 그려내는 우아한 곡선과 생명력에 주목한다. 풋사과 위에 살포시 맺히는 빛, 신선한 과즙을 알알이 머금은 무화과는 시간이 갈수록 농밀해진다. 작가는 변색되는 금속의 특성에 주목해 시간에 따라 깊어지는 태초의 색을 고른다. 작품의 빛깔이 다른 금속 오브제와 달리 점점 깊어지는 이유다. 안쪽부터 바깥까지 꽉 채워 묵직한 물성을 살린 ‘솔리드’ 시리즈는 100년 후에도 세상에 남아 있을 모습을 상상하며 빚었다.

RYU YEUN HEE

똑같은 디자인의 주전자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류연희는 주전자의 다채로운 형태를 실험하며 새로운 작품 두 점을 공개했다. 누군가는 금속의 시커먼 색을 미완성이라 할지 모르나 류연희에게는 이 역시 표현의 도구다. 작가는 아름지기에서 제안한 고려라는 주제를 가지고 주전자를 빚었고, 고려의 자기가 품은 온기부터 영감을 받았다. 길쭉한 주전자 위의 거친 느낌은 정제되지 않은 금속의 솔직한 모습이며, 둥근 주전자는 은의 반짝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JEONG DA JEONG

하늘로 솟구치는 봉우리와 유연한 뿌리, 만개하기 직전의 꽃망울과 피어나는 씨앗. 연약해 보이는 꽃의 강인한 생명력을 차갑고 날카로운 금속으로 포착했다. 정다정이 몰두한 발화의 순간에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힘 있게 나아가기 직전의 찰나가 담겨 있다. 본래 쓰임이 있는 기물을 만들어온 작가는 쓸모를 내려놓고 자신 안에 있는 감정에 몰두해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스스로 가능성을 탐구한 끝에 나온 작품이 ‘드림, 시들링(Dream, Seedling)’이다. 얇고 가벼운 금속은 극명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미래를 향한 무한한 긍정으로 우리를 이끈다.

LEE YOON JEONG

이윤정은 일상의 변두리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사물에 관심이 많다. 그의 대표작인 ‘하드웨어 시리즈’인 못도 그렇다. 필요하지만, 아름다운 사물로 인식되지 못하는 못은 얼마나 달리 보일 수 있을까? 조형미가 느껴지는 이윤정의 못은 기존에 규정된 쓰임과 역할을 전복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벽에 핀 곰팡이’라 부르는데, 신작 ‘마이코타(Mycota)’에서는 균에 주목해 나무와 금속이 하나의 작품으로 만난다. 구부리고 펼치며 형태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나무 구슬은 피어오르는 황금빛 황동 촛대를 향해 뻗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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