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상징이었는데…빛바랜 CJ
최근 증권가와 각종 투자 사이트에서는 이런 말이 자주 회자된다. 이유는 명쾌하다. CJ 주식을 매수해 ‘재미’를 본 투자자가 흔치 않아서다. CJ CGV에 장기 투자한 투자자라면 한숨부터 내쉴 수밖에 없는 지경이다. 2015년 최고 12만8000원까지 올라갔던 주가는 반전 없이 쭉 미끄러지더니, 최근 1만원 선마저 깨졌다. 14년 만의 최저가다. 넷플릭스 등 OTT가 뜨며 극장 산업이 만만치 않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이 정도로 무너질 줄 몰랐던 투자자가 대다수다.
그간 사업을 나름대로 잘해왔다는 계열사 주가도 무너지기는 마찬가지다. K-엔터테인먼트와 K-푸드를 이끌었다는 CJ ENM, CJ제일제당 주가도 급락세다. 코로나19 이후 배달 문화가 꽃 피며 실적 호조를 보여온 CJ대한통운 역시 하락세를 피하지 못했다.
과거 CJ는 혁신적인 그룹의 대명사였다. 20여년 전 사장·부사장 등의 호칭을 없애고 ‘님’을 가장 먼저 사용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도 성과를 냈다. 1990년대 초반 식품 기업에 불과한 제일제당을 기반으로 엔터테인먼트, 홈쇼핑, 물류 등을 아우르는 생활문화그룹으로 키웠다.
이재현 회장은 ‘그레이트 CJ’나 ‘월드 베스트 CJ’ 등의 비전을 내세우며 성장을 독려했다. 지난해 컬처, 플랫폼, 웰니스, 서스테이너빌리티 등 4대 성장 엔진에 투자하겠다는 큰 그림도 밝혔다. 이 회장의 비전 제시는 다른 어떤 그룹보다도 기민하고 미래지향적이었다.
낮은 이익률…재무 구조 불안
꼼수 유증 전략에 투자자 외면
그러나 2023년 단면을 놓고 본다면 CJ그룹에 후한 점수를 내리기 어려운 처지인 것만도 분명하다. 우선 CJ그룹 재무건전성이 불안해 보인다. CJ그룹 순이익률은 2%대로 다른 그룹에 비해 턱없이 낮다.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는 점을 고려하면 식품 중심이라는 항변도 증권가에서 통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낮은 순이익률이 최근 몇 년 새 변함이 없다는 점이다. 설상가상 최근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주력사 영업이익도 하락세다. 경영난에 빠진 계열사에 투자하는 자금이 막대할 뿐 아니라, 신종자본증권을 주로 활용해온 방식이 역풍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자 신뢰를 잃었다는 점은 가장 뼈아픈 점 중 하나다. 최근 CJ CGV 유상증자 과정을 보면 CJ는 ‘혁신’이 아닌 ‘꼼수’의 이미지가 덧붙여질 법하다. 최근 기습적인 대규모 유상증자로 거센 후폭풍에 휘말린 CJ그룹이 관련 정관을 일부 개정하는 등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기존 발행 주식 수를 훌쩍 웃도는 증자를 추진하면서도 시장과 전혀 소통이 없었다는 점에서 CJ를 향한 비판이 거세다. CJ그룹은 2017년에도 비슷한 논란으로 입방아에 올랐기 때문에 이번 정관 개정도 우연이 아니라는 해석이다.
CJ가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식도 논란이다. 현금은 조금만 넣고 성장성이 낮은 자회사인 IT 서비스 업체 CJ올리브네트웍스 지분을 현물출자했기 때문이다. CJ 입장에서는 자회사였던 CJ올리브네트웍스가 손자회사로 바뀔 뿐 큰 현금 부담 없이 CJ CGV 재무 구조 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배력을 유지하는 효과를 내게 됐다. CJ CGV가 시너지 효과를 내기 어려운 IT 서비스 업체를, 그것도 높은 밸류를 부여해 인수한 것이 기업 경쟁력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비판이 팽배하다.
익명을 요구한 애널리스트는 “툭하면 쪼개고 붙이는 합병 분할, 기습 유상증자 등 소액주주를 고려하지 않는 그룹 의사 결정은 예전부터 달라진 게 없다”며 “올리브네트웍스 상장 등으로 경영권 승계를 끝내기 전까지 주가 부양에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시장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애널리스트는 “외형 성장에만 집착하는 M&A와 글로벌 전략이 미래 신사업 진출의 걸림돌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6호 (2023.07.05~2023.07.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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