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야유회 따라 갈래요" 그런 일 저도 겪었습니다 [마흔이 서글퍼지지 않도록]

남희한 2023. 7. 4.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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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때마다 짐 가방에 들어 앉아 "나도 갈래요" 외치는 아이들... 다둥이 육아의 기쁨과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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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한 기자]

 6월 27일자 MBC 자체 유튜브 콘텐츠 '뉴스 꾹'에 소개돼 화제가 된 11살 딸아이-아빠 회사 전무 통화 내용 (출처: MBC 엠빅뉴스)
ⓒ MBC 엠빅뉴스
 
얼마 전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아빠 회사 야유회에 극적으로 함께 가게 된 열한살 딸아이 뉴스를 보셨는지. 아빠 회사 상사인 전무의 휴대폰 번호를 종이에 따로 써서 외워뒀다가는 전화를 걸어, "혹시 OOO(아빠 이름) 아세요? 제가 OOO 딸인데요"며 대화를 시도하는 깜찍한 행동이 뉴스로도 전해지면서 전국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아이다운 순수함에 예의바른 말투와 엉뚱함이 더해져 많은 이들이 미소 지었다. 
아빠 회사 전무와 통화하면서 아이가 하는 말은 "아빠가 오빠만 데려간다며 계속 저를 놀렸어요. 오빠도 못 가게 해주고 아빠도 못 가게 해주세요"였다. '저도 데려가 달라'는 말이 아니라 '아빠랑 오빠도 (야유회) 못 가게 해 달라'는 요구인 것을 보면서 그 순수함에 나 역시 빵 터졌다. 아이는 아이구나하고 생각할 즈음, 회사 전무의 'OO이도 같이 가면 되겠네'란 말에 언제 그랬냐는 듯 '히힛!'하고 웃으며 해맑아지는 아이의 반응에 어느새 아빠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6월 27일자 MBC 자체 유튜브 콘텐츠 '뉴스 꾹'에 소개돼 화제가 된 통화 내용(출처: MBC뉴스 유튜브 화면갈무리)
ⓒ MBC뉴스
 
여러 차례 영상을 돌려 보다보니 화제의 주인공 가족이 우리 집처럼 4남매를 둔 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내 마음에선 '역시'라는 공감이 솟아났다. 친구와도 같을 그 아빠의 모습, 다둥이를 둔 아빠로 겪을 고충들이 눈 앞에 그려졌다. 이 '대박 사건' 외에도, 소소한 사건들로 매일 당황스럽고 또 즐거울 모습 또한 상상됐다.

다른 아이를 보며 미소 짓고 있던 얼굴이 자연스레 내 아이들에게로 향했다. 자식 가진 부모라면 모두가 겪어 보았을 소소한 즐거움이 하나 둘 생각나면서, 입가가 나도 모르게 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도 데려가요" 출장가방 들어가 '안전벨트'까지

코로나 전, 가끔 해외 출장이 잡힐 때면 아이들의 오해와 장난으로 인해 짐 싸는 시간이 두 배는 길어지곤 했다. 그날도 캐리어가 나오면 어딘가 간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아빠! 우리 어디 가요?"
"아니... 아빠 회사 일로 출장 가~"

"출장이 어디에요?"
"으응... 그게... 다른 데로 일하러 가는 거야~"

"아빠는 일하러 출장가요?"
"응, 금방 다녀올게~"

"우리도 데리고 가야지요."
"으응... 아빠 놀러가는 게 아니고 출장.... 얘... 얘들아?"
 
▲ 캐리어 속 아이들 엄마 품에 있는 막내를 제외하고 모두가 항의 중이다.
ⓒ 남희한
 
갑자기 비어 있는 출장 가방 안에 차례차례 들어가기 시작한 아이들. 그 모습에 당황스러우면서도 웃음 한 가득 머금고 사진을 찍었던 나.

"출장, 우리도 데리고 가요!"

첫째의 장난과 애교 섞인 요구에 안 된다고 단호히 말할 수 없었던 것은, 장난인 줄 알면서도 정말로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출장 전날 잠들기 전까지, 아이들은 내게 '우리도 가고 싶다', '아빠 조심해요', '잘 다녀오세요', '도착하면 전화해요'라며 조잘조잘 당부와 걱정을 한가득 내놓았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1주일 정도 떨어져 있다 만날 때면 애틋함이 남달랐다. 분명 떨어져서도 화상통화를 하고 가끔 카톡 메시지도 주고받았지만, 만나서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였다. 이야기를 나누며 내가 천천히 비워낸 캐리어에 다시 하나둘 들어가더니, 다음에는 꼭 같이 가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아이들 모습. 그걸 보고 있자면 여행의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햇살도 간식, 먼지는 나비... 상상 초월 순수함

아이들의 행동과 말에 미소 짓게 되는 건 특유의 그 순수함 덕분이다. 연못에 삐쭉 솟아 오른 돌을 보고 돌이 가벼워서 물에 떠 있는 거라며 허세를 부리기도 하고, 흩날리는 먼지에 어른들이 눈살 찌푸릴 때면, 저건 '작은 나비'라며 손을 옴짝거려 찌푸렸던 미간을 펴게 만들기도 한다.

"햇딸 바다 간식 머거요."(햇살 받아 간식 먹어요.)

첫째가 두 살 때 차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눈을 찡긋 눈부셔 하면서도 손을 모아 햇살을 받으며 순식간에 동시를 지었을 땐, 어른인 내가 얼마나 별 것 아닌 걱정과 불만을 늘어놓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다.

물론, 가끔은 너무 순수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이 순수함은 아이로선 당연하면서도 타인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무기가 되기도 하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치아 건강이 걱정되는 엄마의 잔소리에 이를 닦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아이의 '이유 있는 항변'이 그것이다.

"(치아) 안쪽이 안 닦였잖아!"
"보여야 닦지!"
"................."
 
▲ 아이의 이유있는 항변 순수함은 강하다.
ⓒ 남희한
 
당시 막 스스로 '치카치카'를 시작한 둘째의 이 말에 아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닦기의 중요함을 온몸으로 강조하려던 아내의 연기에도 제동이 걸렸다. 펴지는 미간, 올라가는 입 꼬리, 결국 새어나오는 한숨 섞인 웃음.

진심어린 억울함을 호소하고 아직도 심각한 표정으로 엄마의 말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는, 그렇게 엄마와의 신경전에서 승리했다.

공기 밥이라며 정말 '공기'만 들어 있는 빈 밥그릇을 주며 많이 먹으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장사 놀이를 하면서 뭐든지 주문하라고 해놓고서는 자기가 원하는 주스 주문이 들어 올 때까지 주문을 '강요'하기도 한다.

정말이지 순수함은 뭔가 거스를 수 없는 강함을 가진다.  그 순수함 덕에 어른들은 조금 부드러워지고 긍정적으로 변하곤 한다.  
  
야유회 에피소드에서 처음과 끝을 관통하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했던 두 개의 키워드를 꼽자면 순수함과 따뜻함이 아닐까 싶다. 11살 아이의 전화를 기분 좋게 받아 준 어른의 따뜻함, 고민을 해결해 준 어른의 지혜에 곧바로 기분이 좋아진 아이의 순수함, 그리고 그런 아이일 수 있도록 평소 노력했을 아빠의 순수함과 따뜻함. 우리는 이런 순수한 따뜻함에 얼어 있던 마음이 녹아내리고는 하지 않는지.

나는 아빠로서 혹은 어른으로서 과연 따뜻함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인가. 단호히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듯해서 쓴 웃음이 난다. 그래도 좋은 아빠가 되고자 노력한 것 같은데, 그 노력이 따뜻함의 전달이 아니라 세상에 널린 허들과 그에 대한 무서움만을 아이들에게 자꾸만 강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따뜻함이 순수함에서 발현될 수 있다면, 아이들의 순수함을 가능한 지켜주고 싶다. 아이들의 순수함에 동화되어 나도 일말의 순수함이라도 되찾고 싶다. 그런 욕심에 아이들을 바라보니... 응? 얘들아? 언제 이렇게 컸니? 아이들이 한창 예쁜 와중인 이 순간, 더 지나가기 전에 지금 이 시간을 충분히 즐겨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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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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