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중환자실’서 근무… 차 안에 인큐베이터까지 있어요”

전종보 기자 2023. 7. 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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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 언성히어로] ⑧ 서울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 이주희 응급구조사

스포츠 뉴스 기사를 읽다보면 ‘언성히어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경기에서 돋보이진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내며 팀에 보탬이 되는 선수들을 이렇게 부릅니다. 언성히어로(unsung hero)는 우리말로 ‘보이지 않는 영웅’을 뜻합니다. 사회 곳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언성히어로들이 많습니다. 병원도 마찬가집니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무사히 진료 받을 수 있도록, 의사들이 환자를 잘 진료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 병원 언성히어로’가 그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편집자주)

SMICU 이주희 응급구조사/ 서울대병원 제공
이른 아침 서울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 당직폰이 울린다.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위급한 환자의 전원(轉院)을 요청하는 전화다. 당직 중이던 전문의가 전화를 걸어온 주치의로부터 환자 정보·상태와 함께 전원 사유를 듣는다. 출동 기준에 부합하다고 판단되면 곧바로 모바일 상황실에 출동 알림을 전한다. 준비 시간은 길어야 10분. 전문의와 간호사, 응급구조사가 필요한 장비와 약물을 챙겨 특수구급차에 탑승한다. 요청 병원에 도착하면 환자를 인계받고, 환자가 현재 상태 그대로 수용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전하게 이송한다. 여기까지가 이들의 임무다. 그렇게 환자 1명이 또 생사의 고비를 넘긴다.

◇SMICU, 2016년부터 본격 운영… 6500여명 이송
서울중증환자공공이송센터(이하 SMICU)는 서울시가 공공보건의료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위탁·운영하는 중증 환자 전문 이송팀이다. 2015년 시범 사업을 거쳐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업무를 시작했으며, 현재까지 중증 환자 약 6500명을 이송했다. 초반에는 서울 시내 병원에 한해 운영됐으나, 인천, 수원, 구리 등에서도 출동 요청이 늘면서 현재 서울 근교까지 범위가 확대됐다. 대신 출동 요청 병원과 환자 수용 병원 중 한 곳은 반드시 서울 소재 병원이어야 한다.

SMICU 출동 인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와 간호사, 그리고 이주희 응급구조사와 같은 1급 응급구조사로 구성됐다. 특수 인력들이 포함된 데는 그 만한 이유가 있다. 이들이 이송하는 환자들은 ▲심정지 후 소생치료가 필요한 환자 ▲급성 심근경색·뇌졸중 환자 ▲중증 외상 환자 등과 같이 한시가 급한 중증 환자들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도로 위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환자를 이송하다보면 차량 내에서 전문의의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한 상황이 적지 않다. 이주희 구조사는 “응급구조사는 운전팀과 처치팀 업무를 모두 수행한다”며 “처치팀의 경우 이송 중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에 대비해 반드시 전문의 1명이 함께 출동한다”고 말했다.

◇안전한 이송 위해 확인 또 확인… 도로 상황 공유는 필수
이송 과정은 크게 ‘이송 요청-병원 출동-환자 이송-병원 인계-귀소’ 순으로 진행된다. 모든 절차가 매끄럽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응급구조사가 직접 이송 전·중·후로 수많은 사항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한다. 확인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환자에게 필요한 약물·장비가 적용되지 못하거나, 수용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출동 전 요청 병원으로부터 ▲환자 연령·성별 ▲병력 ▲활력 징후(혈압·맥박·호흡 등) ▲의식 수준 ▲약물 투여 내역 ▲적용 중인 장비 ▲전원 사유 등을 듣고, 이송 중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 장비와 약물을 파악한다. 병원에서 환자에게 사용되던 약물·장비를 구급차에서도 그대로 적용하기 위함이다. 수용 병원 도착 후에도 환자가 같은 상태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약물과 장비를 적용시키고, 의료진에게 이전 병원에서 시행된 처치 내역을 전달한다.

이렇게 환자를 이송하는 건수가 하루 평균 2~3건, 많게는 7~8건에 달한다. 중증 환자를 이송하다보면 차량 내에서 전문의에 의해 즉각적인 응급 처치가 이뤄지기도 한다. SMICU 구급차 내에는 응급 상황에 대비해 인큐베이터, 벤틸레이터(인공호흡기), 목표체온유지장치 등과 같이 중환자실에서 볼 법한 특수 장비들도 준비돼 있다. SMICU 구급차를 ‘달리는 중환자실’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차량 자체도 일반 구급차에 비해 1.5배가량 크다.

차량을 운전하는 이들은 모두 응급구조사다. 필요에 따라서는 운전하던 응급구조사도 차량을 세우고 응급처치에 투입될 수 있다. 운전팀에서는 안전하면서도 신속하게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항상 집회 일정이나 도로 상황 등을 파악·공유하고, 그렇게 숙지해둔 최적의 경로를 1순위로 이용한다. 빠른 길이라고해도 환자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이용하지 않는다. 이주희 구조사는 “운전팀도 마찬가지로 아침마다 회의를 하며 이송 경로를 공유한다”며 “예를 들어 A병원의 경우 들어가는 길이 2개인데 한 쪽 길은 방지 턱이 많기 때문에, 외상 환자를 이송할 때는 가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SMICU 특수구급차는 흔히 생각하는 구급차와 달리 차량 안에 여러 특수 장비가 들어서 있으며, 공간 또한 컨테이너를 연상시킬 만큼 널찍하다. 가운데 누운 환자를 중심으로 왼쪽에 전문의 1명이 탑승하며, 오른쪽에는 간호사·응급구조사가 착석한다. 이주희 응급구조사도 오른쪽 자리에 앉아 이송·처치 업무를 수행한다./서울대병원 제공
◇담당 교수 권유로 시작… “첫 코로나 환자 이송, 잊을 수 없어”
이주희 구조사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2005년 사설 이송단에서 처음 일을 시작했다. 이후 스포츠 경기 응급처치팀, 병원 응급실 등 다양한 곳에서 경험을 쌓았고, 2017년 SMICU에 합류해 현재까지 1000명 이상 환자를 이송했다. 처음 입사할 당시엔 응급구조사가 아닌 연구원이 되기 위해 서울대병원에 지원했다. 그러나 면접을 본 담당 교수의 권유로 SMICU에서 일하게 됐다. 이 구조사는 “‘연구할 스타일은 아니고 활동적인 것 같은데, SMICU를 제안하면 들어올 생각이 있냐’고 해서 ‘감사하다’고 했다”며 “고민은 없었다. 이송단 경험도 있고 실제 성격 자체도 활동적이었기 때문에 SMICU에서 일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구조사로 활동해왔지만 그 또한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고 공부할 것도 많았다. 당시만 해도 SMICU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았던 데다, 이송해야 하는 환자들의 질환, 연령 또한 일반 병원보다 훨씬 다양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중증 환자를 전문적으로 이송한다는 점, 그동안 접하지 못했던 장비들을 다룬다는 점 등이 SMICU 응급구조사만의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이주희 구조사는 “요청 병원에서 역량이 안 될 경우 SMICU 의료진과 응급구조사가 직접 해당 병원에서 우리 장비를 활용해 응급처치를 시행한 후 이송하기도 한다”며 “그럴 때면 ‘우리가 이 환자를 살렸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갖고 더 최선을 다하게 된다”고 말했다.

6년 가까이 일하면서 잊지 못할 순간들도 있다. 가장 최근 기억은 2020년 3월 3일, 코로나19 환자를 처음 이송하던 날이다. 그는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처음 이송을 나갔다. 호흡보호구를 처음 써봤는데 숨이 턱 막히더라”며 “당시만 해도 감염이나 치사율 등에 대한 우려가 많아서 두려웠던 게 사실이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엔 나가서 안전하게 환자를 이송했고, 이후 관련 프로토콜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했다.

◇안전 이송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 교육 확대됐으면
SMICU에서 이송하는 환자들은 사실상 전원 밖에 선택지가 없다. 의료진도 이 같은 사실을 알기에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전원을 요청한다. 그래야 환자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구급차로도 이송이 가능하지만 SMICU에 이송을 요청하는 이유는 병원과 같은 환경에서 환자를 안전하게 이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주희 구조사는 “SMICU는 장비와 약물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송 가능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바로 처치가 가능하다”며 “그만큼 생존률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바람은 모든 응급의료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표준적·체계적 교육을 통해 국내에서도 높은 수준의 환자 이송 체계가 확립되는 것이다. 이주희 구조사는 “환자 이송에 대한 매뉴얼들이 생기고 많이 교육됐으면 한다”며 “응급구조사도 감시자 역할을 넘어, 안전하게 환자 상태를 파악하고 처치 후 인계까지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SMICU 이주희 응급구조사/서울대병원 제공
<4담: 네 가지 담지 못한 이야기>
1. 이주희 응급구조사는 직업 특성상 1분 1초가 급한 환자들을 자주 마주한다. 그가 생각하는 제일 치명적인 질환은 ‘대동맥파열’과 ‘뇌출혈’이라고 한다. 순식간에 위험한 상황에 빠지는 데다, 응급 수술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송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환자를 최대한 빨리 이송하는 것이다.

2. 구급차를 운전하는 구조사들도 내비게이션을 볼까? 볼 수는 있다. 그러나 1순위는 아니다.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다보면 변수가 발생할 수 있고, 도로 상태가 환자를 이송할 수 있을 만큼 좋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송팀끼리 공유하고 미리 숙지해둔 길을 우선적으로 이용한다고 한다.

3. 이주희 응급구조사는 의외로 길치다. 주로 뒤에서 처치팀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어디를 지나는지 볼 일이 없고, 봐도 잘 모른다고 한다. 그래도 병원 근처 길은 빠삭하게 꿰고 있어, 사람들에게 특정 장소를 물을 땐 근처에 어떤 병원이 있는지 묻는다.

4. 구급차를 타는 구조사나 의사, 간호사도 멀미를 할까? 이주희 구조사에게 물으니 “그렇다. 많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멀미를 많이 해 멀미약을 들고 다니거나, 이송 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오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그는 “환자를 병원에 인계할 때까진 정신력으로 버티다가, 이송을 마치고 긴장이 풀리면 멀미를 심하게 하더라”며 “멀미가 있는 사람들은 정말 의지와 끈기로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주희 구조사는 차량 안에서 이송 일지를 쓸 만큼 멀미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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