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리 빼앗는 마법의 문장 "그래도 군대보다 낫지 않냐"
[하은성]
▲ 4월 30일 서울지방병무청 앞에서 열린 제1회 사회복무요원 노동자의 날 기자회견 |
ⓒ 사회복무노조 |
사회복무요원 제도는 병역의무의 한 형태입니다. 병역판정 검사 결과 보충역(4급)으로 병역처분 된 사람을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 사회복지시설에서 사회서비스 업무나 행정 업무 등을 하도록 만든 제도가 사회복무제입니다.
사회복무요원들은 국가기관, 지자체, 공공단체와 사회복지시설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합니다. 사회복무요원은 복무기관이 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복무기관이 지시하는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러나 사회복무요원은 '병역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노동법의 보호에서 배제됩니다.
국가가 사회 서비스 영역에 병역 자원을 사용하는 것은 사회 서비스 수요를 충족할 노동자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사회 서비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사회 서비스 분야 노동 조건을 개선하는 정책보다 병역 의무가 있지만 현역 복무로 부적합한 청년 자원을 활용하는 정책을 수립하고, 사회복무 제도를 만들어냈습니다(2007년 2월 '비전 2030, 인적자원 활용 '2+5'전략' 보고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사회복무요원은 복무기관에서 부당 대우를 받아도 쉬이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복무기관 재지정(사업장 이동)을 위해서는 사실상 복무기관장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무기관장이 사회복무요원을 근무명령 불이행 등 근무 태만으로 지방병무청장에게 통보할 경우 사회복무요원의 복무기간은 무급으로 연장됩니다.
이렇게 강력한 통제 권한을 가진 복무기관장을 견제하거나 사회복무요원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민간인인 복무기관장을 국가가 통제할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무기관에서 부당 대우와 괴롭힘으로부터 사회복무요원을 보호할 제도도 부족합니다.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사회복무요원은 어떤 노동자보다 더 취약한 위치에서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은 없습니다.
이처럼 불평등한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동력은 '현역 군인의 열악한 처우'입니다. 현역 중심의 사회 분위기는 권리의 무게를 저울에 달아 사회복무요원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사회적 죽음에 책임을 묻는다
문제를 문제라고 부르지 못하는 사회복무요원은 제한된 병가와 낮은 급여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사회복무요원 35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 10명 중 4명(45.1%)이 일상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정신적·신체적 고통을 겪고, 그 4명 중 3명(76.6%)이 사회복무로 인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실태조사에 참여한 350명 중 절반가량(46%)이 4급 판정 사유와 배치되는 노동에 투입되었고, 그 결과 44.3%가 사회복무로 인해 기존 질병이 악화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사회복무요원 10명 중 6명(64%)이 복무 중 괴롭힘에 노출되었고, 괴롭힘을 경험한 사회복무요원은 4명 중 1명(28%)이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 수치는 직장인 설문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더 심각합니다. 괴롭힘에 노출된 사회복무요원이 직장인 평균의 2배가 넘었습니다. 세부적으로 보면 '폭행·폭언' 경험은 44.0%로 직장인 평균(14.4%)의 3.1배에 달했고, '부당 지시'는 48.9%로 직장인 평균(16.9%)의 2.9배, '따돌림·차별'은 31.1%로 직장인 평균(11.1%)보다 2.8배 높았습니다.
특히 괴롭힘을 경험했다는 응답자들을 상대로 심각성을 물어본 결과 사회복무요원과 직장인 모두 경험자의 절반이 심각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직장 내 괴롭힘 경험자를 상대로 '괴롭힘으로 인해 본인이 자해 등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사회복무요원은 28%가 '있다'라고 응답해 직장인 평균(10.6%)의 3배에 육박했습니다.
이를 설문 대상자 전체로 환산하면 사회복무요원의 18%가 '극단적 선택을 고민'할 정도의 괴롭힘을 경험해 직장인 평균(3.2%)의 5.6배에 달했습니다.
실제로 2020년 국정감사 통계에 따르면 해마다 평균 10명 넘는 사회복무요원이 자살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무청은 2013년까지 자살의 원인도 파악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복무요원의 자살에 대하여 방관적 태도를 보였습니다.
사회복무요원의 죽음은 사회적 문제입니다. 국가에 의해 병역의무를 이행하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개인의 질병 문제로 돌리는 것은 비겁합니다.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는 차별적 시선을 넘어
남성 중심적인 한국 사회에서 사회복무요원은 '정상적인 몸'을 갖지 못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부조리와 부당함은 "그래도 현역보다는 낫지 않냐"라는 말에 후순위로 미뤄지거나 조리돌림의 대상이 됩니다.
하루 한 끼, 그것도 출근일에만 지급되는 중식비, 부당한 일을 겪어도 제대로 하소연할 곳 없는 어중간한 신분, 권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더욱 괴롭히는 것은 '정상적인 몸'이 아니라는 사회의 차별적 시선이었습니다.
그동안 사회복무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는 '병역의무 이행'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되어 왔고, 처우 개선은 '현역병과의 형평성'이라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나 신체적·정신적 질환으로 인해 현역 복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것이 또 다른 차별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복무는 '병역의무의 이행'이 되어야 하며 현역으로 가지 못한 사람을 '벌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제도 개선이라는 목적지로 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과정도 다양하게 존재할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합의하는 일입니다.
제도 도입 30년을 앞둔 지금, 우리는 사회복무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면 위로 떠오른 사회복무요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이 또한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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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하은성은 노무사로 사회복무노조 사무처장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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