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탐욕인플레이션’ 논란...“기업 이윤 과도한지 분석해야”

김경희 2023. 7. 4.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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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ㆍ유럽연합(EU) 등 주요국에서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ㆍ기업 탐욕에 의한 물가 상승)’ 논란이 재점화하고 있다. 그간 세계 주요 중앙은행은 물가를 잡기 위해 과감한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해왔다. 그럼에도 효과가 미미한 이유는 기업의 과도한 이윤 추구 때문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고물가 위기가 닥치면서 기업도 각종 생산 비용이 늘었는데,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는 식으로 소비자에게 부담을 떠넘겼다고 보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기업의 이윤 추구가 물가를 다시 끌어올리는 ‘이윤-물가 나선효과’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최근 1년간 유럽의 인플레이션에 기업 이윤이 기여한 정도가 거의 절반에 달했다. 2022년 1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나타난 인플레이션의 45%는 기업의 이윤 추구 때문에 발생했다는 뜻이다. 이어 에너지ㆍ원자재 등 수입 물가 상승이 40% 영향을 미쳤고,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 중앙은행(ECB) 총재도 지난 5월 “일부 기업들이 인플레이션으로 발생한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상황에서 자신들의 비용이 늘어난 것 이상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해 수익을 끌어올렸다”고 비판했다.

차준홍 기자

미국에서도 탐욕 인플레이션에 관한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한국은행에서 열린 BOK국제컨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맡은 나라야나 코첼라코타 미 로체스터대 교수(전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수요 폭증탓이 아니라,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비용 상승 및 기업 간 경쟁 완화에 따른 이윤율 상승에 기인한다"며 "미국 내 기업 이윤이 코로나 위기 이전과 비교해 20% 이상 상승했고, 이로 인해 높은 가격이 유지됐다"고 지적했다. 미 상무부 경제분석국에 따르면 2020~2022년 제품 가격 중 기업 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의 평균이 34%로 급증했다. 1970년대 평균(10.9%)의 3배 수준이다. 같은 기간 인건비(64.9%→50.8%)와 노동 외 비용(23.7%→14.7%) 등 다른 비용은 줄었다.

정치권이나 경제학계 일각의 주장으로 치부되던 그리드플레이션이 '뜨거운 감자'가 된 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근원물가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0.6%로 정점을 찍은 후 6월에 5.5%로 2개월 연속 하락했다. 하지만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나타내는 근원물가(가격 변동성이 큰 에너지ㆍ식료품 제외)는 지난해 10월부터 9개월 연속 5%대를 유지하고 있다. 6월에는 5.4%로 전월(5.3%)보다 소폭 상승했다. 미 Fed가 주목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가격지수도 지난 5월 4.6%로 전월보다 0.3% 올랐다. 휘발유 등 에너지 물가가 급락했는데도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하다는 의미다.

그리드플레이션을 부정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크다. 기업의 이윤 증가가 물가를 부추겼다는 근거가 미약하다는 게 주된 근거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 중앙은행 총재는 “식품 공급업체나 소매업체가 폭리를 취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미국 미시간대 경제학자 저스틴 울퍼스도 “인플레이션의 원인을 탐욕 탓으로 돌리는 건 마치 비행기 추락 원인을 중력 탓으로 돌리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다만 한국도 해외에서 진행되는 연구를 참고할 필요는 있다.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7%를 기록하는 등 주요국에 비해 빠르게 안정되고 있지만 근원물가가 4% 안팎의 높은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어서다. 최근엔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라면값 인상 자제를 요청하면서 그리드플레이션 논란이 커지기도 했다. 유혜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정부가 기업의 가격 정책에 개입하기 전에 실제 물가 상승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불황 직후엔 기업 이윤이 증가하는 경향이 나타나는데 과거에 비해 과도한 수준인지, 부문별로 경쟁의 정도가 약화된 영향인지 등에 대한 연구가 국내에서도 시작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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