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 보다 대중성"…흥행 부진 3년 깬 '닥터 차정숙' 마법
“내부적으로는 '너무 주말연속극 같지 않냐'는 (회의적인) 반응도 있었죠.” 지난달 초 종영한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의 기획 초반의 얘기다. 20년 차 주부이자 경력단절 여성이었던 차정숙(엄정화)이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닥터 차정숙'은 웃음과 눈물이 공존하는 힐링 드라마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첫 회 4.9%에서 출발해 마지막 회엔 18.5%로, 시청률(닐슨, 전국)이 4배 가량 뛰며 흥행에 성공했지만 실제 드라마 방영까진 적잖은 우려가 있었다고 한다.
4일 서울 광화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SLL 상반기 결산 기자간담회에서 박준서 제작총괄은 '닥터 차정숙'의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주말연속극이 (항상) 안 좋고, 작품성이 떨어지나?'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았다”며 “주말연속극에서 다루던 가족 이야기를 SLL만의 방식으로 만드는 게 중요했고, 대중적으로 즐거워할 수 있는 방향으로 끌고 간 것이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분의 우려와 더불어 약체로 평가받았던 '닥터 차정숙'은 상반기 지상파, 비지상파 통틀어 가장 주목할만한 드라마였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3년 간의 흥행 부진…“대중성에 무게 뒀더니 좋은 결과”
SLL은 드라마·영화부터 예능·디지털까지 다양한 분야의 영상물을 기획·개발하고 제작·유통하는 콘텐트 스튜디오다. 15개의 레이블을 산하에 두고 있고, 300여 개의 콘텐트를 제작한 국내에서 가장 큰 창작 집단이다.
전신인 'JTBC스튜디오' 당시 '부부의 세계'(2020), 'SKY캐슬'(2018), '이태원 클라쓰'(2020) 등을 제작하며 간간이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약 3년 동안 전반적인 흥행 부진을 겪었다. 지난해 'SLL'로 사명을 바꾼 뒤 '재벌집 막내아들'을 제작했는데, 이 드라마는 '부부의 세계'(28.4%)에 이어 역대 JTBC 드라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시청률(26.9%)을 기록하며 흥행 신호탄을 쐈다.
박준서 총괄은 앞선 흥행 부진 시기에 대해 “(당시엔) 작품성은 좋지만 우울하고 어두운 이미지의 드라마가 많았다”며 “좋은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지만, 어렵게 작품성 있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SLL로 새롭게 출발하면서 이러한 방향성을 확 바꿨다. 그는 “작품 기획을 할 때 작품성보다 대중성에 좀 더 무게를 두는 형태로 의사 결정에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닥터 차정숙'을 비롯해 '대행사', '나쁜 엄마', '사랑의 이해' 등 웰메이드 드라마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이유다.
“신인 발굴 집중”…하반기 15개 이상 작품 공개
SLL이 상반기 제작한 드라마 6편 중 4편('사랑의 이해', '대행사', '닥터 차정숙', '나쁜 엄마')은 미니시리즈를 처음 집필한 신인 작가들의 데뷔작이다. 박성은 제1본부장은 “최고의 작가, 감독, 배우를 모아 놔도 100% 성공(흥행)을 확신할 수 없는 것이 이 업계”라면서 “과거에는 그나마 플랫폼이 제한적이었지만 지금은 워낙 많은 플랫폼 내에서 수많은 콘텐트들이 경쟁하는 엄혹한 상황”이라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그런데도 재밌는 사실은 신인들이 모여 작품을 만들더라도 얼마든지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쟁이 치열한 업계에서 신인들과 작업하기 위해선 용기와 신념도 필요했다. 박준서 총괄은 “2~3년간 콘텐트 시장이 버블기(호황기)를 맞이하고, 글로벌 요소까지 들어오면서 창작자 계약 관계 등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이 굉장히 복잡해졌다”면서 “S급 작가, 감독, 기성 창작자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한데, 저희는 과감하게 신인을 발굴해 본질적으로 좋은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구나 김은숙, 박지은 등 (스타)작가와 하고 싶겠지만, 새로운 신인 창작자를 발굴하는 역량을 키워야 오리지널리티(독창성)를 갖고 갈 수 있기 때문에 신진과 기성을 병행해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상반기 신인 작가들과 함께했던 SLL은 하반기엔 뛰어난 기성 작가들의 작품을 제작하며 이러한 균형점을 잡아간다. JTBC 드라마 '이 연애는 불가항력', '힘쎈여자 강남순', '웰컴 투 삼달리', '힙하게'와 ENA 드라마 '악인전기' 등이다. 넷플릭스 'D.P. 시즌2', '발레리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와 티빙 '이재, 곧 죽습니다' 등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플랫폼과의 협업도 이어 나간다.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 예능에서도 기대작이 많다. SLL 산하 레이블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콘크리트 유토피아’,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앤솔로지 스튜디오의 ‘거미집’, 비에이 엔터테인먼트의 ‘1947보스톤’, 퍼펙트스톰필름의 ‘하이재킹’ 등이 개봉 준비 중이다. 스튜디오 슬램은 예능 프로그램 ‘싱어게인3’, '크라임씬 리턴즈'를 제작할 계획이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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