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참상' 되풀이하나…이스라엘 공습에 전쟁터된 서안지구

박형수 2023. 7. 4.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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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이 대(對) 테러 작전을 명분으로 20년 만에 최대 규모의 병력을 동원해 요르단강 서안 지구의 제닌 난민촌에 군사 작전을 벌였다. 이스라엘의 추가 공습 경고까지 이어지자 수천명이 피란에 나서는 등 제닌 난민촌은 전쟁을 방불하는 혼란에 빠졌다.

제닌 난민촌 주민들이 이스라엘군의 공격이 이어지자 대피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4일(현지시간) 카말 아부 알-루브 제닌 부지사는 AFP에 “지금까지 3000여 명이 제닌 난민촌을 빠져나갔다”며 “이들을 다른 대피소로 수용하기 위한 준비가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긴급구조대 적신월사 역시 “3000명이 삶의 터전을 떠났다”면서 “이스라엘의 (추가 공습) 경고에 따라 탈출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제닌 난민촌엔 1만80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거주 중이었다.

전날 이스라엘은 ‘테러 집단’인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소탕하겠다면서 대규모 공격을 감행했다. 대형 불도저로 민가와 자동차를 밀어내고 무인기(드론)로 공습했다. 지상군 병력 2000여 명도 투입돼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과 교전을 벌였다. 지난 2000년 제2의 ‘인티파다’(팔레스타인 주민의 봉기) 이후 제닌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 군사작전 중 최대 규모였다.

이 과정에서 10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다쳤다. 중상자가 20여명에 달해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이날 제닌 난민촌에 연이은 폭발로 땅이 흔들리고, 도로는 탄피와 깨진 유리로 뒤덮였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의 시야를 막으려 불태운 타이어 더미에서 피어오른 연기와 최루탄 가스가 뒤섞여 난민촌을 메웠다. 한 팔레스타인 구급차 운전사는 로이터통신에 “지금 전쟁과 같다. 하늘에서 공격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시위대가 이스라엘군의 시야를 막기 위해 타이어를 태워 검은 연기를 만들고 있다. AP=연합뉴스


병원에는 피투성이가 된 환자들과 울부짖는 가족들로 가득 찼다. 이곳에서 4년간 근무한 정형외과 의사 마흐무드 바슬리트 박사는 “내가 겪은 최악의 날”이라며 “오늘 하루만 35명의 부상자를 치료했고, 이중 10명은 긴급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이스라엘군이 구급차 진입까지 막고 있어, 수많은 부상자가 병원에 오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팔레스타인의 의료 행위를 방해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의 공격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크게 반발했다. 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이날 지도부 회의를 연 뒤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과 모든 접촉은 물론 치안 협력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모하메드 이슈타예 팔레스타인 총리도 “이스라엘군이 제닌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상대로 ‘전쟁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군사 행동이 무장 세력의 활동을 막기 위한 대테러 작전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며칠이 걸릴 수도 있다”며 장기화 가능성도 언급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습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회합하는 장소인 ‘합동 상황실’ 건물을 집중 타격했다. 이스라엘군은 현장에서 20여명의 무장단체 대원들을 체포했으며, 100여 점의 무기를 압수했다고 밝혔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 2일 예루살렘 총리실에서 열린 각료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제닌 난민촌은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들의 주요 은신처로, 지난해부터 이스라엘군의 수색이 잦았고 그 과정에서 유혈사태도 빈발했던 곳이다. 지난달 19일 제닌 난민촌에서 작전 중이던 이스라엘군 차량이 급조폭발물(IED) 공격을 받아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이스라엘 우파 연정 내 강경파들은 강력한 대응을 주문해왔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누구든 이스라엘인을 해치려는 자가 있어야 할 곳은 감옥 또는 무덤뿐”이라며 “끝까지 작전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이 강대강 대치를 예고함에 따라 무력 충돌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AP통신은 이번 공격이 2차 인티파다 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끝을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한편 이스라엘은 이번 대규모 군사작전 계획을 미리 미국에 알렸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안보권을 지지하며, 서안지구의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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