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덤정치 시대, 우리의 정당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국회는 선거제 개편 논의로 한창입니다. 선거제를 어떻게 바꿀지도 문제지만, 국회가 결단해야 할 정치개혁 과제들도 산적해있습니다. 선거제 개편이 아닌 개혁이 되기 위해, 나아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매주 칼럼을 통해 논하고 평가해보고자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이니까요. <편집자말>
[조영호]
▲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정치개혁!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정치개혁을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매주 전달해드립니다. |
ⓒ 참여연대 |
"인간사회를 지배하는 법칙들 가운데 확실한 한 가지는 참여의 평등한 조건이 확장되는 만큼 참여를 조율하고 조직할 방법과 기술들 또한 같은 비율로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사람들은 문명화된 상태로 지낼 수 있다" - 알렉시스 드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 2권 중
정치에 관해서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당은 매우 특별하면서도 유일한 존재다. 현대 사회에서 정당의 역할은 다양한데, 몇 가지 나열하자면 먼저 유권자들과 정부를 연결하고, 선거에서 공직후보자를 추천하며 후보자들은 사회가 가진 문제점들과 모순들의 냄새를 맡으면서 그것의 해결을 위해 비전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표를 획득하기 위해서 생사를 건 쟁투를 벌인다.
다음으로 정당은 사회적 갈등의 대리전을 치름으로써 폭력과 피를 부르는 극단적 방식이 아닌 다소 평화에 가까운 방식으로 사회갈등을 관리한다. 마지막으로 정당은 정치 엘리트와 엘리트가 될 사람들을 교육하고, 그 저변을 관리해 장기적 승리와 재생산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한다. 요컨대 대규모 현대사회에서 정당은 생계에 바쁜 유권자들을 대표해 정치를 수행하는 유일한 조직이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유명 대기업만큼이나 인적 역량과 조직적 자산이 필수적이다.
매번 '쇄신하겠다' 외치지만 갈수록 퇴보하는 정당 정치의 현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유일하다'는 말은 그밖에 유력한 대안이 많지 않다는 말과 동일하다. 현재 한국의 정당들은 조직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는데, 문제는 지난 20여 년 동안 그 조직적 능력과 기반이 계속 나빠져 왔다는 것이다.
정당은 집권을 하게 되면 대통령에게 자발적으로 편승하고 휘둘리며, 야당이 되면 국민에게 호소해야 한다는 이유로 정당 스스로의 가치와 정체성을 포기하자고 한다. 스스로 가진 정신적 자산과 조직적 기반이 부족한 정당은 스스로 인물을 키우려 하기보다는, 늘 큰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인물 영입에 혈안이 돼 있고 기꺼이 정치 외부자에게 정당을 맡김으로써 그 단기적 생명을 연장한다.
상술한 토크빌의 지적처럼, 시민들의 요구와 참여, 그리고 불만이 높아지는 만큼 그것을 정치적으로 조율할 능력과 방법들이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만큼 정치는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토크빌은 그 부조화가 결국 문명을 위태롭게 하고 사회가 야만의 상태로 가게 됨을 경고한다. 토크빌이 말한 야만의 상태라는 것은 정치가 점점 잔인해 진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국도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보인다. 정당의 불안정과 낮은 제도화는 단순히 정치발전을 어렵게 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 사회가 과연 이렇게 가도 되는가 그리고 우리 사회에 미래는 있는가 라는 걱정과 우려마저 불러 일으킨다.
▲ 2022년 6월 1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더불어민주당 개표 종합상황실이 이재명 총괄선대위원장 등 당 지도부가 자리를 비워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 공동취재사진 |
2022년 선거관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정당들의 당원이 1000만 명을 육박한다고 한다. 정당의 권한과 몸집은 커지고 있지만, 정당들은 위기에 당면하여 이름을 바꾸거나 임기응변식 비대위를 등장시키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과 의원 등 5000여명에 이르는 국가의 최고위 선출직 공직자와 수만 명의 비선출직 공직자를 공급하고 있지만, 내부의 강령과 교육을 통해 정치엘리트의 질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
정당은 스스로 지역구와 하부조직들을 부실하게 만들고 당의 바깥에서 지지자들을 동원함으로써 하나의 이익집단이 됐다. 당원이 2000년대 초반에 비해 5배 이상이 증가했다고 하지만, '유령당원' '대납당원' '매집당원'이라는 용어가 말해주는 것처럼 상당수가 허수이고, 온라인을 통해서 결집된 당원들은 정당으로부터 통제 바깥에 있다. 즉 당원이면서도 당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 일부 팬덤당원 혹은 팬덤지지자들은 정치지도자에 대한 애정을 넘어 이견을 갖는 정치인과 당원을 적으로 몰고, 욕설과 함께 문자 폭탄을 퍼붓는 '훌리건'의 양상마저 보인다. '정치 훌리건'들은 소셜미디어 공간을 압도하고 당내 경선에서 위세를 과시한다. 문제는 정당 엘리트들이 이러한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들을 묵인하거나 추종하는 경향마저 보인다는 것이다.
정당의 기능 축소가 과연 정당개혁이었을까?
그렇다면 어쩌다가 이렇게 됐는가? 한국의 정당개혁은 민주화 이후 삼김의 퇴장과 함께 시작됐고, 당시 개혁을 주도했던 정치인들은 크게 세 가지 방향을 실천해 왔다. 먼저 이들은 삼김에 의해서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됐던 정당을 개방화했다. 다음은 '돈 먹는 하마'로 불리었던 지구당을 없애 버렸다. 마지막으로 거대한 조직이었던 정당을 간소화해 의원 중심 혹은 전문가 중심으로 재편했다.
결과적으로 정당은 의원들만의 조직, 좀 더 좁게 말하자면 특정파벌에 포획된 조직으로 변모했다. 지구당이 없고, 하부조직이 부실한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매개로 지방의원들과 시장들을 중앙정치의 수족 및 자신들의 하수인처럼 활용하기 시작했다.
지방정치는 지방을 떠나 중앙의 대리전이 됐고, 정당과 국회의원들은 스스로가 인공위성처럼 고립되어 공중에 붕 떠 있다. 권한은 큰 반면 조직적으로 부실해진 상태에서 정당 지도부를 장악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기에, 대통령은 물론 각 정파와 파벌들은 사활을 건 싸움을 한다. 무엇을 위한 싸움이고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는 이제 중요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당개혁을 위해서는 정당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줘야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팬덤정치도 그 자체가 문제라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세계에서 늘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프레이밍하고 수용하는가에 따라서 문제가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선거제를 비례제로 바꾸고, 대통령 중심제를 의원내각제로 바꾸면 정당이 살아날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가진다. 먼저 현실화되기가 무척 어렵다. 다음으로 선거제 변화와 의원내각제의 도입이 어떤 긍정적 혹은 부정적 효과를 일으킬 지 우리는 아직 잘 알지 못한다.
물론 선거제도 변화와 헌정구조 개편에 대한 논쟁과 공론을 지속해야 한다. 다만, 다소 현실적인 논의 또한 필요해 보인다. 따라서 어떻게 보자면 지난 20여 년간 실제로 실행했던 정당개혁을 역순으로 실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현재 정당의 부실화와 정치불안정은 지난 20여년 간의 정당개혁의 노력이 역설적으로 현실화된 것이기에, 그 해결방안 또한 그 속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 '돈먹는 하마'라고 하면서 없앴던 지구당을 부활시키고, 공천권을 매개로 수족처럼 부렸던 지방의원들과 단체장들이 지역정치에 매진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자유를 줘야 한다.
아울러 정당법은 지역당을 허용하지 않고 있으나, 현행 정당법을 중앙·전국 정당에 한해 적용함으로써 지역정당을 자유로운 정치적 결사의 영역에서 보장해야 한다. 이는 실제로 지난 20여년 간 정당들이 했던 일이기 때문에 반대로 하는 것도 가능하며, 선거제도나 헌정구조의 변화에 비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대안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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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조영호 서강대학교 교수가 작성했습니다. 이 기사는 슬로우뉴스와 참여연대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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