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지운 정부의 여성노동정책
[신경아]
▲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내 여성가족부. |
ⓒ 권우성 |
2021년 7월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에서 유승민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1호 공약으로 들고나선 이래 한국 사회는 '여성가족부 폐지'와 '존치' '확대 개편'을 둘러싼 긴 논쟁에 휩쓸려 왔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여성가족부장관을 임명하면서도 부서의 폐지를 선언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을 연출했고, 김현숙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여가부장관으로서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조직을 스스로 해체해야 하는 기이한 운명에 놓였다. 정권의 실세를 자처하는 정치인의 전화 한 통화에 수년간 지속돼 온 여가부 사업이 취소되고, 전국의 여성단체는 불법적 횡령을 일삼는 사이비 집단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가 정책에서 '여성'을 지웠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의도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정부 조직에서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정책의 목표와 과제에서 '여성'을 주체로 호명하고 수혜자로 불러낼 정책을 축소했거나 삭제했다는 것, 정책의 기획과 집행·평가의 전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파트너로서 여성단체와의 협력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또한 '성평등'을 삭제했다는 것은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전 부처 정책의 비전과 목표에서 성평등 이념을 철회했다는 것, 그럼으로서 성평등 사회 실현이라는 민주주의적 지향점을 상실했다는 것. 그리고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되돌림으로써 젠더와 성(섹슈얼리티)에 관한 정체성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소수자 집단을 배제한 채 이분법적인 성별 대립 구도를 강화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정책의 퇴행은 2023년 여성가족부 업무추진계획이나 예산, 제3차 양성평등 정책 기본계획(2023-2027)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업무계획은 추진 방향으로 '동행, 미래, 혁신'을 제시하고, 3대 목표로 '약자에게 더 따뜻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 '저출산·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미래인재 양성', '촘촘하고 든든한 지원을 위한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6대 핵심과제로 '다양한 가족을 촘촘하게 지원' '5대 폭력 등 범죄 피해자 보호·지원 확대'를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제목만 보면 어떤 부처의 계획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추진 방향은 어떤 구체적인 가치나 지향을 담고 있지 않으며, 3대 목표는 여성가족부라기보다 보건복지부의 목표에 가깝다. 핵심과제에서도 여성가족부의 정체성이나 고유의 책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과제명의 어디에도 '여성'도 '성평등'도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5대 폭력' 과제에서는 '여성 폭력' 대신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여성'을 지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이러한 비판은 여성운동과 여성 정책 공동체의 주체로서 '여성' 집단을 더 이상 국가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성평등 민주주의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공적 담론의 영역에서 소거시키고 여성의 집단적 존재를 드러나지 않게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여성의 사회적 인정, 경제적 분배와 재분배,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를 따져 묻는 젠더 정치를 공적 맥락에서 밀어내고, 여성을 취약계층으로 보고 잔여적 복지의 대상으로 축소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평등' 가치가 여성 정책의 비전으로 등장하기 이전 요보호여성 정책으로의 회귀와 같다.
2023년도 최종 확정된 여성가족부 예산은 1조5678억 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5.8% 증가했다. 여가부의 예산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안보다 국회 여가위 예결산소위를 거치면서 증액된 것이다. 정부안에서는 주요 사업의 예산이 전년 대비 감소됐고 특히 성평등 정책 의제 개발, 성인지 예산 제도 운영, 온라인상 악플이나 혐오 표현을 개선하기 위한 양성평등 인식 개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국제회의를 위한 예산이 감축되거나 삭제돼 있었다. 그 결과 "이런 예산서는 본 적이 없다", "부처에서 나서서 예산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이례적"(이보라, <한겨레21>, 법 만드는 법, 1440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윤석열 정부의 이러한 퇴행은 젠더 관계의 불평등성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를 차단하고 개별 사안에 대한 일시적인 처방으로 정책을 제한한다. 성별 임금 격차는 노동시장과 조직 내 성차별과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는 여성의 직업훈련 확대 같은 처방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축소된다.
▲ 2023년 5월 10일 ’윤석열 정권 1년 여성시국선언 - 여성 인권 후퇴 1년, 우리는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가 용산구 대통령실잎에서 여성가족부폐지저지공동행동 주최로 열렸다. |
ⓒ 권우성 |
그렇다면 여성 노동 정책은 어떻게 달라질까? 아직 이렇다 할 만한 정책적 개선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 노동자의 환경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대표적인 것이 '주 69시간 노동'이다. 노동시간은 노동시장에서 성별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가족 내 성평등과 남성의 양육 참여에 대한 요구가 적지 않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 가족에서 돌봄의 책임은 우선 여성에게 주어진다.
가족의 돌봄과 임금 노동을 병행해 가야 하는 여성들에게 '시간'은 가장 부족한 자원이다. 노동시간이 길어지면 돌봄 시간을 줄여야 하며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도 줄어든다. 돌봄 시간을 줄이지 못할 때는 결국 자기돌봄, 즉 잠자는 시간이나 쉬는 시간처럼 자신을 위한 시간을 줄여야 한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에서 워킹맘의 삶의 만족도가 전업맘보다 낮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3월 윤석열 정부의 저출산 고령사회 대책 중 대표 상품으로 발표된 '육아기 재택근무 확대'도 매우 걱정스러운 정책이다. 팬데믹 시기 재택근무 경험에 자신감을 얻었는지 어린 자녀를 키우는 노동자들에게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조성해 가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누가 이 제도를 사용할 것인지 생각해 보면 대부분 여성일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그다음, 이 제도를 사용하는 여성들이 조직 안에서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상상해 보면 그 대답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출근과 대면 업무를 당연시하는 조직에서 재택근무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특혜'의 당사자이거나 반대로 조직의 '주변인'으로 비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되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지 않을 것이다. 서구사회의 경우 양육을 위해 파트타임이나 재택근무를 사용한 여성들은 직종이나 지위에 관계없이 구조조정에서 우선순위가 되어 왔다는 보고들이 적지 않다. 이 제도가 일하는 부모들에게 노동의 지속성보다는 고용의 불안정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여성 노동자는 이중의 의미에서 힘든 상황에 처할 것이다. '여성'을 지운 정부의 몰성적(gender-blind) 정책과 여성운동의 배제 그리고 '노동'을 억압하는 정치가 초래할 노동자의 고통.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견디고 싸워갈 것인가?
결국 '연대'의 필요성이 더욱 커지는 시기인 만큼 여성과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경계와 사회적 고정관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사실 노동의 영역은 성별 경계가 매우 뚜렷하고 성차별이 견고하게 유지되어온 곳이다. 우리 대부분의 일터가 그렇고 노동운동 역시 성차별적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일터와 가족, 이웃, 공동체와 노동조합에서 성차별과 여성 혐오, 성별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제도와 관계, 문화와 의식을 살피고 해소해 가려는 실천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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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신경아씨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로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입니다. 이 글은 지난 5월 8일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윤석열 정부 1년, 정책 평가 토론회, 한국여성단체연합)에서 발표한 원고 <'여성'을 지운 정부, 정책도 잃다>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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