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더레코드]박훈정 감독은 왜, 뜨거운 김선호를 품었나

이이슬 2023. 7. 4.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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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훈정 감독 인터뷰
영화 '귀공자' 지난달 21일 개봉
액션 아닌 폭력에 방점 둔 누아르

박훈정 감독(49)은 영화 '귀공자'를 내놓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 주연배우 김선호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지면서다. '슬픈 열대'에서 '더 차일드'로, 또 '귀공자'로 제목도 여러 번 바꿨다. 요즘 관객은 윤리적으로 지탄받거나 작은 의혹마저 품은 배우를 구분한다. 그간 몇몇 작품을 보이콧하면서 행동으로 보여줬다. 주연으로서 도덕적 잣대가 관객의 중요한 가치 기준이 된 시대다. 이는 흥행으로 직결되기에 꽤 중요하다. 제작자이자 영화감독으로서 이를 모르지 않을 터.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구상한 귀공자 역을 김선호만큼 잘 그려낼 만한 배우가 없었다"며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선호 논란, 매일 롤러코스터 탔지만…”

박훈정 감독[사진제공=스튜디오앤뉴]

2021년 10월 김선호의 전 여자친구는 한 온라인 게시판에 전 남자친구였던 김선호가 임신중절수술을 종용하는 등 각종 인성 문제가 있다고 폭로해 논란이 됐다.

이후 제작사 외유내강은 영화 '2시의 데이트'(감독 이상근)의 캐스팅을 안보현으로 변경했으며, JK필름도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가제) 캐스팅을 이현우로 대체해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박 감독은 김선호의 캐스팅을 변경하지 않았다. 덕분에 김선호는 생애 첫 스크린 데뷔작이자 주연작인 '귀공자'에 무사히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박 감독은 "당시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제작자로서 판단보다 연출자로서 판단이 우선시 됐다. '귀공자 역에 김선호가 딱이야'라는 생각이 컸다"고 떠올렸다.

그는 "당시 사안들이 정확한지 아닌지, 시시비비(是是非非)가 가려지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변했기에 그 부분에 관해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 않았다"고 거듭 설명했다.

박훈정 감독의 말을 종합하면 김선호의 캐스팅을 대체할 배우, 즉 대안이 없었다. 좋은 배우는 많지만, 연출자로서 그려놓은 주연배역에 적역이었기에 밀어붙였다는 뜻이다. 사실상 이는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대중이 어떻게 볼지 방치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관객 반응을 우려하지 않았는지 물었다.

박 감독은 "그런 고민도 분명했다"고 답했다. 이어 "상업영화 하는 사람이기에 그것도 분명 고려 대상이었다"고 수긍했다.

박훈정 감독과 김선호[사진제공=스튜디오앤뉴]

그러면서도 "당시 제게 들려오는 정보나 뉴스를 통해 뭐가 사실이고 진실인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갔다.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봤다. 다른 작품처럼 당장에 배우를 바꾸고 그럴 수 있는 건 아니구나, 더 기다려야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또 "상업영화이기에 흥행에 대한 고민이 첫째다. 흥행에 있어서 중요한 건 영화 자체라고 생각한다. 영화가 가진 힘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책임은 만든 사람이 지는 거라고 봤다. 투자사와도 그런 이야기를 나눴고, 기다려줬다"고 말을 이었다.

멜로 얼굴에서 발견한 '귀공자'

원론적인 질문을 던졌다. 김선호는 그간 드라마 '스타트업'(2020) '갯마을 차차차'(2021) 등 멜로 드라마에서 익숙한 얼굴을 드러내 왔다. 액션 누아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런 그를 영화로 끌어온 건 박훈정 감독이었다. 왜 '귀공자'로 김선호를 선택했을까. 배우에게서 뭘 발견했는지, 왜 확신했는지 물었다.

그는 "의외로 '스타트업' '갯마을 차차차' 연기를 보고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고 느꼈다"고 말을 꺼냈다. 이어 "이러한 좋은 얼굴을 사람들이 못 봤구나, 내가 제일 먼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귀공자'를 굉장히 잘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가장 만족하는 장면으로 얼굴에 피칠갑을 한 귀공자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장면을 꼽았다. 박 감독은 "난폭한 미치광이인데 순해 보이는 얼굴, 그 얼굴로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보내는 느낌이 좋았다. 무시무시한 장면인데 마치 러닝머신을 뛰고 내려와서 물 마시고 땀 닦는 얼굴처럼 다가와서 만족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아, 딱 이 얼굴이다' 싶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만든 영화 '신세계'(2012) '마녀' 1·2(2018~2022)에서 그려지는 폭력 세계는 엄청나다. 내적 욕망의 발현인지 묻자 그는 "어릴 적부터 남자들이 많은 단체 생활을 많이 했다. 영화에서 표현하는 폭력에 대해 흥미롭게 생각한다. 역사를 좋아하는데 인류의 역사는 폭력의 역사다. 폭력은 모든 갈등 해결 방법 중 가장 원초적인 방법이기도 하다"고 말을 꺼냈다.

박훈정 감독[사진제공=스튜디오앤뉴]

이어 "수트를 입고 우아한 인간들이 결국은 폭력으로 뭔가를 해결해가는 모습이 위선적으로 다가왔다. 타인을 조종해서 폭력을 지시하고 말로서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모든 나라가 보유한 경찰, 군대도 일종의 폭력 집단이지 않나. 결국 갈등 해결은 힘의 논리로 점철되곤 한다. 어떤 이야기든 갈등의 끝에는 폭력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의미에서 내 영화에서 그려지는 액션 장면을 관객들이 액션보다 폭력으로 보길 바란다. 액션 수위가 높고 파괴적인데, 액션이라는 전제가 아닌 폭력이라는 생각으로 연출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박훈정은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내가 볼 때 재밌는 영화를 만든다. 또 내가 안 볼 영화는 남들한테도 봐달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이슬 기자 ssmoly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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