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 따는 벌이 아니고, 꿀 빠는 파리
[용인시민신문 홍은정]
▲ 사철나무와 파리 |
ⓒ 용인시민신문 |
봄부터 여름에 걸쳐 피는 민들레, 씀바귀, 강아지풀까지, 피고 지는 모든 꽃을 살핀다면 그 양이 어마 어마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꽃이 피고 지는 줄 모르고 오늘도 바쁘게 보내고 있다.
사철나무 꽃이 무성하다. 어쩌면 필자 눈에만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연한 노란색 꽃잎이 꽃잎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 꽃이 꽃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렵다. 사철나무는 꽃보다 열매가 빨갛게 달려 그 존재감이 확실하다.
사철나무 꽃에 파리가 날아들었다. 한 마리인가 했더니 여기저기에서 파리가 꿀을 빨고 있었다. 자세히 보면 사철나무는 꿀이 나오는 부분이 꽃잎으로 가려지지 않고 드러나 반짝반짝 빛난다. 오히려 나비의 대롱입으로 빨기 어려워 보인다. 나비가 아니어도 다른 곤충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으니 운 좋은 파리가 사철나무를 점령했다.
추운 봄에 피는 복수초, 특이한 냄새를 내는 천남성, 아모르포팔루스 티타눔이나 리플리시아도 파리가 수분을 매개한다. 보통 날개가 두 쌍인 곤충과 달리 파리는 날개가 한 쌍이며 퇴화한 한 쌍의 날개가 균형을 맞추는 곤봉 모양을 하고 있다. 벌인지 파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때 날개가 한 쌍인지 두 쌍인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필자가 어렸을 때 파리는 말리는 오징어나 생선에 달라붙거나 두엄에 앉아있었다. 그 옆으로 구더기들이 꿈틀거리는 것도 일상으로 보고 자랐다. 집안에 들어온 파리는 무조건 파리채로 잡았다. 한자리에서 열 마리도 거뜬히 잡을 수 있었다. 그만큼 파리는 흔했다.
우리집 파리 킬러는 할머니었다. 할머니 손에는 언제나 파리채가 들려있었다. 집에 파리채가 서너 개 있었는데, 어떤 것은 낡아서 힘이 들어가지 않고 축 처진 것도 있었다.
이제 파리채는 추억의 물건이 됐다. 건전지용이면서 테니스라켓 모양인 모기채가 더 익숙하다. 물론 그것으로 모기며 파리며 각다귀를 다 잡는다. 파리는 파리채, 모기는 모기향이라는 암묵적인 공식은 이제 통용되지 않는 것 같다.
파리는 자기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즘은 소 키우는 시댁 큰집에 가면 큰 파리를 볼 수 있다. 많은 것이 금파리이거나 집파리이겠지만 가끔 쇠파리도 있다. 물리면 비명소리가 날 정도로 아프다는데 쇠파리에게 물린 경험이 없는 건 다행이다.
아이들은 가끔 보는 파리에 놀라거나 어쩔 줄 몰라 한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면서 파리를 접할 일이 거의 없는 것이다.
음식물쓰레기나 과일에 붙어오는 초파리가 더 흔하게 보이지만, 파리채 향수를 불러오는 크기는 아니다. 오히려 숲에 가면 여러 종류의 파리를 본다. 반짝이는 초록색의 작은 파리인데, 뭔가 다른 느낌이 드는 장다리파리는 다리가 길어서 공중부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러 종류의 기생파리, 굴파리, 실파리 그리고 넓게 보면 벌처럼 생겼지만 파리 종류인 꽃등에 등 파리 종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파리에 대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주변에 오물이 사라지면서 지금은 파리를 해충이라고 생각하기보다 곤충 중 하나로 인식하는 것 같다. 꽃을 수정시키고 꿀을 빠는 파리는 우리에게 해로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든 사람을 기준으로 나쁜 것과 좋은 것을 나눈다.
인간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지만 지구적으로 봤을 때, 파리와 모기가 사라진다면 생태계는 무너질 것이다. 수많은 파리와 모기들이 각자 자리에서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생태계는 잘 유지되는 것이다.
지구, 생태계, 친환경, 기후변화와 같이 사람들 생각이 사람에서 자연으로 옮겨가고 있다. 생각의 방향을 바꿀 때다. 파리가 똥파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꿀파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홍은정(협동조합 숲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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