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다가선 암을 통해 삶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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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기자]
▲ 결정암 수술 동의서 |
ⓒ 이정민 |
평소 아프지도 않고 증상도 없지만 혹시 모를까 하는 두려움에 생애 처음 대장 내시경을 받았습니다. 보통 위내시경은 흔쾌히 받지만 대장은 그 과정이 너무 까다로워 좀처럼 쉽게 받을 수 없는 까닭이죠.
그때가 40대 중반을 넘어가는 시기라 걱정이 많이 됐습니다. 평소 스트레스를 혼술로 풀었기에 더더욱 긴장이 앞섰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처음 검진에서 선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은 확실치 않았지만 다발성 종양이 발견돼 대학병원으로 가야했지요. '결장암' 소식이었습니다.
동네 병원을 나와 거리를 걷는데 하늘이 노랗고 마치 모든 사물이 정지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내가 암이라니, 도대체 전생에 현생에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지었다고..." 대낮이었음에도, 분명 태양이 쨍쨍 내리쬐는 한낮의 오후였음에도 마치 개기일식이라도 펼쳐지듯 온통 새까만 어둠이 저를 덮치는 기분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정말 드라마처럼, 영화 한 장면처럼 삶이 새드무비(sad movie)만 계속되는 항해와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고통의 바다에서 어떻게든 발버둥치려 빠져나오려 했지만, 도저히 혼자서는 나올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지요.
▲ 병원생활 내내 짧은 시를 쓰면서 위로했던 나날들 한 달 만에 먹었던 첫 죽은 삶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음을... |
ⓒ 이정민 |
갑자기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관계를 끊고, 삶마저 부정당한 느낌으로 그렇게 홀로 대학병원 한켠에서 고독의 우상과 마주했습니다. 죽음을 목도한 채 모든 것을 놓아버릴 뻔한 그 순간은 마치 옛날 노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 차가운 동굴 안에서 수행정진하는 그 모습을 떠올리게 했죠.
처음 한 달 동안은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버텼습니다. 일주일동안 금식을 하고 대장을 비워내고 또 금식을 하고 대장을 비워내고 지난 사십몇년 동안 묵혔던 모든 악행들이 게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혈관이 찢어지도록 주사를 맞고 또 주사를 맞으면서 몸속의 독을 정화해나갔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믿음으로 고통을 이겨내고 드디어 냉동고 같은 수술대 위에서 대장 30cm를 잘라냈고, 그제서야 모든 두려움이 끝난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일곱 번의 항암치료 과정은, 그 동안의 아픔과 고통의 100배 이상에 비할 수 있는 처절한 고행이었습니다.
멀쩡했던 살들이 새까맣게 썩어 들어가고 머리가 다 빠지고 행색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살갗은 뒤틀어지고 피부는 타들어가고 도저히 온전한 사람의 형태라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악독한 고문은 6개월이 넘게 계속 이어졌습니다.
드디어 대장 절개 수술과 항암치료 1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억겁의 시간과 다투며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아픈 동안 내내 시를 읽고 시를 쓰고 시에 젖어 살았다. 시는 모든 아픔과 고통을 잊게 만드는 마법이자 기적이었음을.... |
ⓒ 이정민 |
죽음의 수렁에서 겨우 회복한 몸은 탈탈 털린 영혼의 숨결을 다시 불어넣었고, 다시 태어나듯 삶의 순수한 여정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이라는 암을 통해 삶이라는 앎을 배우는 소중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암 투병 이후 다시 업무에 복귀하는 건 좀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육신과 영혼이 지칠대로 지쳐있었고 나이도 어느덧 지천명의 숨턱을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암도 끝내 이겼다는 당당함으로 다시 부활의 생이라는 도전과 열정을 이어갔습니다.
미천한 경력이지만 임기제 공무원의 노하우를 되살려 몇 달 전 청년들과 당당하게 경쟁하여 다시 광역의회 공무원으로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미치면 통한다고 했듯 진심으로 간절히 원하면 그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호오포노포노의 지혜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 이정민 |
책 <시크릿>, <호오포노포노의 지혜>, <괜찮아, 분명 다 잘될거야!>가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사건이 벌어지든 '내 책임이다', '내문제다'라는 의식을 가지니까 일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잠들기 전에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라는 긍정의 메시지를 되새겼습니다.
최근엔 정말 어렸을적부터 늘 동경해왔던 대학원 입학의 꿈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진솔한 삶의 스토리밖에 없었던 진심이 통했나봅니다. 물론 그동안 책도 여러 권 냈고 수필 등단도 하는 등 글을 짓는 능력이 더해졌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지난했던 삶의 파편들을 떠든 이유는, 저처럼 혹시나 암 등 질병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동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힘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 대학병원에서 대장암 판정을 받고 저는 그날그날의 일기를 기록했습니다.
결장암 수술 동의서를 받아든 뒤 죽음이라는 현실과 마주했던 시절, 뱃속에 6개의 구멍을 뚫고 대장을 통째로 드러냈던 시절, 한 달만에 첫 죽을 먹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시절, 투명인간처럼 지냈던 시절, 항암치료를 하며 혈관이 터져 온몸이 냉동인간처럼 마비된 시절, 시를 읽으며 가시같은 시간의 결을 추억으로 바꾸던 시절 등등.
블로그를 통해 다시 회상해 본 그날의 일지들은 제 생애 더 없는 투쟁사로 남았습니다. 이보다 더 아름답고 숭고한 투쟁이 어디 있을까요. 암을 통해 사랑하는 법도 다시 배웠고, 이별하는 법도 다시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저 자신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진솔하게 배우게 됐습니다.
끝으로 제가 너무 좋아했던 영화 <인디언 썸머>의 명대사를 적어봅니다. 희망을 말해주는 대사입니다.
"겨울이 오기 전 가을의 끝에 찾아오는 여름처럼 뜨거운 날,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오지만 그 모두가 기억하지는 못하는 시간. 다만 겨울 앞에서 다시 한 번 뜨거운 여름이 찾아와주길 소망하는 사람만이, 신이 선물한 짧은 기적 인디언 썸머를 기억한다. 내가 그날을 기억하는 것처럼..."
지금 여러분이 그토록 소망했던 그 짧은 화양연화같았던, 첫사랑의 '인디언 썸머' 기적을 떠올려보세요. 그 기적은 반드시 일어납니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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