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아카데미의 만행... 88세가 돼서야 음악상 수상한 거장

김상목 2023. 7. 4.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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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예술영화 개봉신상 리뷰]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김상목 기자]

우리의 귀를 사로잡은 영화음악의 대가라면 당장 누구의 이름이 떠오를까?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류이치 사카모토나 스튜디오 지브리 음악들로 친숙한 히사이시 조, <스타워즈>의 테마로 기억되는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모리스 자르 등의 쟁쟁한 이름이 열거될 테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이고 영향력이 크다는데 반대를 찾기가 힘들 이름이 거대한 산맥처럼 우뚝 솟아 있다. 바로 그 이름이 이 영화의 원 제목이다. 국내 개봉 명에 더해진 '마에스트로'가 전혀 어색하지 않지만 그의 이름은 곧 '거장'을 뜻하는 단어와 동의어라 해도 무방하기에, 마치 '역 전 앞'이란 표현이 중복인 것처럼 동어반복 느낌은 지울 수 없는 노릇이다.

2020년에 작고한 엔니오 모리코네와 <시네마 천국>을 비롯해 여러 편의 작품을 협업한 이탈리아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그의 영화경력에서 이례적인 다큐멘터리 작업을 기꺼이 맡았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기록영화였기 때문이다. 신인감독이던 1980년대 후반, 이미 350편의 영화에서 음악을 맡아 살아있는 전설이 된 지 오래이던 엔니오 모리코네와 만난 인연이 어느새 30년이 지나 있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시네마 천국>과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등에 모두 엔니오 모리코네가 함께 했으니, 30여 년간의 우정이 깃든 인연을 기억하며 굳이 다큐멘터리에 도전했을 테다(모리코네 또한 자신의 전기 다큐멘터리 연출은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해야 한다고 콕 찍어 지목했다 전한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자신의 영화경력 내내 함께해 온, 본인 스스로 경외해마지 않는 대가를 기록하는 헌사에 더해 자신의 작가적 야심도 살짝 버무려낸다. 이미 살아생전 전설이었으며 누구나 그의 이름과 대표작을 알고 있지만, 항상 타인이 감독한 영화에서 부분 조각으로 소개되고 기억되어오던 엔니오 모리코네가 비로소 온전한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는 작업에 도전한 것이다. 오랜 인연 덕분에 많은 지점을 공유하며 누구보다 주인공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감독은 엔니오 모리코네를 마치 한 그루 아름드리 거목을 다루듯 뿌리의 기초부터 나이테 밑동의 세밀한 단면도를 거쳐 줄기와 꽃, 이파리까지 총체적으로 다루려 시도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거장의 숨겨진 이면에 근접한다.

그런 작가적 야심을 충족하기 위해 영화는 거장의 반세기가 넘는 거대한 궤적을 극한의 압축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2시간 30여분의 상영시간은 엔딩 크레디트를 빼면 온전히 엔니오 모리코네라는 존재를 A부터 Z까지 풀이하려는 도전에 할당된다. 검색엔진으로 알아볼 수 있는 나열되고 파편적인 정보 텍스트가 아니라 철저한 구조 설계에 힘입어 그의 인생이 어떻게 위대한 음악의 구성요소로 정교하게 전환되고 축성되었는지 관객에게 들려주고픈 집요한 의지의 소산인 셈이다. 짧지 않은 분량이라 여겨지다가도, 400편이 넘는 영화음악과 100 단위의 클래식 창작을 보유한 거장의 생애와 활동상을 요약하기엔 턱없이 모자랄 지경이다. 거의 외줄타기 수준으로 아슬아슬한 균형감각을 유지했다고 봐도 무방할 테다.

우리가 잘 몰랐던 거장의 기원을 해설하다
 
▲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이의 전기영화에는 거의 필수적으로 그의 업적을 상찬하는 또 다른 대가들의 한마디가 따라붙게 마련이다. 이 영화 역시 그 궤도를 이탈하지 않는다. 오히려 최상위급으로 기꺼이 한 말씀 보태려 줄을 선 명망가 목록이 실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그러나 그런 경의와 칭송의 향연이 시작되기 직전에 가장 처음 도입부를 차지하는 건 노구에도 불구하고 엄격한 자기관리로 작업에 임하기 전 스스로를 단련하는 구도자 혹은 수도승 같은 엔니오 모리코네의 일상풍경이다. 메트로놈의 따닥따닥 규칙적 신호음과 함께 구순에 가까운 거장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 온몸을 정비하듯 체조와 스트레칭을 거듭한다.

이 묵언수행의 찰나는 의도적으로 봉쇄수도원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일평생 자기관리에 철저하고 독실한 종교인이면서도 후술할 수많은 난관을 하나씩 묵묵히 돌파해낸 거장의 태도를 각인시키는데 지극히 효과적인 도입부 장면이다. 그렇게 예열을 마친 후 과묵한 거장의 준비동작과 병행해 그를 일컫는 무수한 형용사와 수식어가 엔니오 모리코네 못지않은 명망과 업적을 이룬 이들에 의해 증언된다. 말 그대로 증언, 혹은 '간증'의 시간이다.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정석적인 방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몰입과 흥미를 유발하는 참신한 변주로 자칫 엇나가면 비판적 시선의 관객에겐 식상해 보일 수 있는 통과의례를 멋들어지게 풀이한다. '거장'이 '거장'을 소개하는 방식은 역시 비범하다.

곧이어 그동안 텍스트 외엔 국내에서 그리 주목되지 않았던 시간대의 엔니오 모리코네가 등장한다. '호구조사'의 차례다. 그가 영화음악가로 명성을 떨치기 전의 생애를 다큐멘터리는 거의 30분 넘게 소개한다. 이는 주인공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과정이긴 하지만 지루하고 나열식이 될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얼른 귀에 익은 명곡들의 위대한 탄생설화를 목격하고 싶은 이들에겐 현기증 나는 대기시간 격이기 때문이다. 얼른 쟁쟁한 고전명작들이 마치 뮤직비디오 배경화면처럼 깔리면서 모리코네의 선율이 깔리기만 기다릴 관객들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해당 단락은 도전에 가깝다.

관객의 요구를 깊숙이 간파하면서도 감독은 '하지만 but'의 소신으로 도입부를 풀어낸다. 위대한 영웅의 탄생에는 반드시 사연과 시련이 없을 수 없다. 관객은 이를 이해하고 공명해야 한다. 하지만 공감을 얻어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그렇게 밸런스 게임이 이어진다. 외줄타기의 긴장감이 팽팽하게 보는 이의 눈과 귀에 꽂힌다.

아마 대부분 처음 접하게 될 거장의 어릴 적 환경과 순수하게 고전예술로 음악을 익히던 청년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연대기적인 구성의 전형 같지만 서서히 모리코네의 독창적 개성과 함께 일평생 트라우마가 되었던, 평생 극복하거나 돌파하려던 숙제들이 포착된다. 그의 영화인생 동료였던 세르지오 레오네가 그랬듯이 스스로 자멸하듯 2차례 세계대전으로 몰락해가던 유럽에서 대서양 건너 기회와 번영의 땅 미국을 동경하던 어린 시절, 그리고 파시즘과 전쟁의 폐허 속에서 궁핍의 그림자, 엄격한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존재감이 차례로 소개된다. 그런 요소 하나하나가 엔니오 모리코네를 형성하는 키워드가 될 것임을 관객은 곧 간파할 것이다.

순수음악가가 '딴따라' 세계에 발을 들이다
 
▲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유년기부터 트럼펫 연주자로 가족 생계를 외벌이 하던 아버지에게서 엄격한 연주 훈련을 받았고, 아버지가 건강문제 등으로 예정된 연주활동을 못하게 되면 어린 소년의 몸으로 실전을 뛰며 연주 실력을 가다듬던 모리코네는 엘리트 음악인을 양성하던 산타 체칠리아 국립음악원에 진학해 전문교육을 받았다. 피는 못 속인다고 트럼펫 연주자로 성장했지만 겉보기엔 샌님처럼 얌전하던 그의 마음속에는 '경계'를 뛰어넘겠다는 이글거리는 불씨가 도사렸던 것 같다. 그는 기술 위주의 연주자로 만족하지 않고 작곡에 도전한다. 일반인이 듣기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프로 음악인들 사이에선 금기를 깨트리는 행위였다. 중세 이후 확립된 엄격한 분업체계를 뒤흔드는 셈이었다.

여기에서 그는 '스승'을 만난다. 음악원 교수로 원장 못지않은 명망을 얻던 고프레도 페트라시가 바로 그 스승이다. 스승님은 겉으론 유약해 보이는 제자가 실은 음악적 야심 가득한 존재라는 걸 파악하고 그의 경계를 넘는 도전을 응원한다. 고루한 정형화에 빠져 있던 음악원 내 보수적인 파벌이 모리코네의 근본을 문제로 삼고, 전위적 실험을 헐뜯을 때 페트라시 교수는 음악원 내 정치적 대립을 감수하고 제자를 보호하려 애썼다. 그 덕분에 모리코네는 다양하고 깊이 있는 클래식 음악의 정수를 소화하고 자신만의 방향성을 견지할 수 있었다. 순수음악계 내 그러한 긴장과 텃세에 직면했던 20살 즈음의 엔니오 모리코네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가 왜 영화음악에 그렇게 혼신을 다했는지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드디어 장대한 영화음악 경력이 시작된다.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들지만 그 당시의 영화음악작업의 열악한 환경은 물론이거니와, 영화음악가가 속된말로 딴따라 취급을 받던 이면이 낱낱이 드러난다. 음악으로 성공하길 원하던 모리코네이지만, 음악원을 졸업하자마자 마치 허허벌판에 내쫓긴 것처럼 생활고가 시작된다. 가족을 책임져야 할 젊은 음악가에게 비록 스승 페트라시와 친구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패전 후 아직 재건도상이던 이탈리아 상황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얻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었다. 그래서 모리코네는 가명을 써가며 대중음악 편곡에 참여한다. 대형 음반회사에서 모욕적인 대우를 감수해가며 모리코네는 수백 곡의 편곡에 참여해 인정을 받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영화음악에 발들일 거라곤 본인도 주변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호구지책으로 음반회사의 노예가 되어 숱한 작업을 수행하던 모리코네였지만,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후원해온 스승과 동료들이 순수음악에 집중해도 모자랄 판에 천박하고 깊이 없는 대중음악에 재능과 시간을 낭비한다며 부정적 시선으로 그를 대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영화음악에 참여하게 되자, 그런 비판은 격화된다. 특히 스승 페트라시는 영화음악에 전향적으로 참여하려다 모욕적 대접을 받고 깊은 원한을 품은 상태였다. 그래서 심지어 모리코네의 영화음악 작업을 매춘에 비기며 매도하기까지 했다.

존경하는 스승과 몇 안 되는 음악원 동료들의 그런 비판을 듣던 젊을 적 모리코네의 낙담은 결코 가볍지 않았을 것임을 누구나 이해할 테다. 그런 부담을 떨쳐내면서 동시에 자신이 옳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필사의 도전이 그의 음악을 정체되지 않고 구르는 돌처럼 이끌어간 궤적이 장절하게 흐른다. 이 '달의 어두운 면' 부분은 엔니오 모리코네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경유해야 한다는 감독의 의지가 전달된다.

엔니오 모리코네, 세르지오 레오네 & 스파게티 웨스턴과 만나다
 
▲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이제 모두가 기다리던 순간이 도래한다. 엔니오 모리코네라는 이름에 반드시 동행하는 또 다른 거대한 이름, 세르지오 레오네가 그의 몇 편 성공적인 서부극 음악작업에 이끌려 찾아온다. 그리고 이후 레오네의 모든 작품에는 엔니오가 함께 한다. 어릴 적 동창이었지만 오래 소식이 끊어졌던 둘의 기이한 필연적 만남이다. <황야의 무법자>-<석양의 건맨>-<석양의 무법자(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이어지는 레오네의 무법자 3부작에서 둘의 성공적인 협업이 정착된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가 영화 좀 봤다면 공유할 수 있는 잊을 수 없는 서부극의 청각적 이미지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물론 둘의 궁합은 환상적이었지만 의외로 세세한 결에서 부딪히는 지점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의견 충돌이 창조적으로 승화될 때 시대를 초월하는 위대한 결과물이 탄생해왔다는 건 고금의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지만. 엔니오 모리코네는 평생 400편이 넘는 영화음악 작업에 참여해가며 세계 영화역사에 기록될 여러 거장과 협업했지만 역시나 가장 거대한 줄기는 누구나 세르지오 레오네와의 6편 공연이라 여길 테다. 그 장구한 내력이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빠질 순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영화 전체 분량에서 지배적이진 않다. 그의 알려지지 않은 청년기를 애써 세세하게 풀어내듯 감독은 지나치게 모리코네가 서부극, 특히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틀에 갇혀 박제된 존재로 이해되지 않고 그 자체로 거대한 산맥과 봉우리처럼 보이길 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엔니오 모리코네는 한창때는 1년에 20편씩 영화음악 작업에 매달렸기에 고작 6편(?!)에 불과한 레오네와의 공동작업은 비율로만 따지면 1.5%에 불과하다. 모리코네는 레오네 감독과 작업하는 와중에도 다른 수많은 거장과 명작에 참여하고 있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이 다큐멘터리는 확인시킨다. 그럼에도 세르지오 레오네와의 작업이 두드러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귀부터 쫑긋 반응이 오니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눈빛만 봐도 이해되는 영혼의 콤비가 된 모리코네 & 레오네는 이제 불멸의 영화들로 향한다. <옛날옛적 서부에서>-<석양의 갱들>-<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의 시간이 깃든다.

분량 배분 때문에 옛날옛적 3부작 중에서 <석양의 갱들>은 아주 특별한 일화에 언급될 뿐 거의 소개되지 못한다. 이는 무법자 3부작 중에 2번째인 <석양의 건맨> 역시 동일하게 겪은 지점이다. 레오네와의 6편 작업을 빠짐없이 다루다간 영화가 거기에서 끝나버릴 테니 어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 부분을 좀 더 만끽하고 싶다면 <석양의 무법자> 제작과정과 그 배경이 되던 동네에 대한 다큐멘터리 <새드 힐 - 석양에서 돌아오다> (현재 넷플릭스 서비스 중)이나 본 작품과 함께 2023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던 <세르지오 레오네 - 미국을 발명한 이탈리아인>을 찾아서 확인하면 될 일이다. 어디까지나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는 모리코네의 광대무변한 세계를 종합적으로 다루려는 시도에 충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 속에서 <옛날옛적 서부에서>가 갖는 서부극의 장대한 종언으로서의 위상은 충분히 매혹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리고 레오네의 유작이 된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음악의 탄생과정이 관객을 매혹시킨다. 둘의 신뢰가 깃든 협력이기에 가능했던, 완성된 영화에 음악을 덧입히는 게 아니라 음악이 하나의 총체적 개념으로 영화 제작과정 전반과 함께 하는 특수한 현장, 그리고 위대한 음악이 탄생하기 직전에 피아노에 앉은 엔니오와 그 곁에서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최초의 순간을 목격하는 세르지오의 풍경은 괜히 보는 이를 뭉클하게 만들 테다. 그렇게 관객은 데보라의 테마를 받아들이게 된다.

장대하지만 외딴 산봉우리처럼 엔니오의 시간은 계속된다
 
▲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스틸 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흡혈귀 같은 영화사의 횡포 때문에 건강을 해친 레오네는 실의와 함께 이른 죽음을 맞는다. 마치 엔니오도 함께 내리막을 걸을 것만 같은 기분이지만 위대한 음악가를 안목 있는 감독들은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제 레오네와의 완벽한 호흡 때문에 간과되어온 당대의 거장들과 그의 파트너십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심지어 세르지오 레오네와도 창조적 갈등으로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숱하게 충돌하던 엔니오가 고집이라면 세상 누구보다 더 센 괴팍한 영화감독들과 물에 물 탄 듯 부드럽게만 관계를 유지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 호기심 천국 같은 온갖 미공개 에피소드가 봉인 풀린 듯 개방된다.

레오네와의 이상적인 협력 속에서도 엔니오는 당대의 명감독들과 다양한 시도를 거듭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 주인공이 끝내 공동작업을 이루지 못해 일생 아쉬워했던 사례는 아이러니하게도 레오네의 질투와 경계에서 비롯되었다. 당대의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그의 영화들 중에도 시대를 뛰어넘는 문제작이던 <시계태엽 오렌지> 음악작업에 엔니오를 기용하고 싶었으나 레오네의 모종의 훼방으로 포기했다고 전한다. 나중에야 레오네의 농간(?)을 알게 된 엔니오는 무척 복잡한 심경이었을 테다(해당 작업은 역시 영화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웬디 카를로스에 의해 완성된다). 그렇게 끝내 이어지지 못한 미완의 프로젝트들은 관객의 "만약에?" 상상력을 끌어올린다.

이미 그는 레오네와의 작업만으로도 불멸의 이름을 획득했지만 영화는 그의 도전이 평생에 걸쳐 숱한 암초와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수행 차원임을 입증해낸다. 몇몇 대표곡 뿐 아니라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한 음악가로서 마르지 않는 아이디어 생성과 전성기에 과밀하게 쏟아지던 업무량의 비화들이 줄줄이 등장한다. 레오네가 작고한 후 마치 그 자리를 대신하듯 새로운 미래의 거장들이 엔니오에게 손을 내민다. <킬링필드>로 주목을 받은 롤랑 조페와의 작업은 <미션>으로 완성되고 가브리엘의 오보에를 세상에 선보이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영화를 연출한 신예 쥬세페 토르나토레와의 인연이 '수줍게' 소개된다. 이미 350편의 경력을 가진 전설과 첫 작업을 하게 된 두 번째 장편 감독의 노력이 입가를 흐뭇하게 만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시네마 천국>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런 변화무쌍한 도전기는 엔니오 본인이 자신을 평가하듯 '카멜레온'의 그것을 초월한다. 그 무수한 컬러가 모두 자신이라는 것이다. 물론 확고한 정체성이 받침하기에 가능한 일이고, 그 기반은 바로 그가 외도의 길로 접어들었다며 비판한 순수음악이었다. 영화음악에서 정체감이 들고 매너리즘에 빠진 것 같으면, 새로운 자양분 겸 근원으로의 회귀를 위해 엔니오는 수시로 놓은 적 없었던 교향악에 도전했고 영화음악 명성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서서히 그의 순수음악에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런 내적 훈련을 통해 수백 편의 영화작업을 워커홀릭으로 치르면서도 답습에 굴복하지 않고 실로 다채롭고 전위적인 시도가 이어졌다. 바로 그런 점이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반세기를 롱런할 수 있었던 저력으로 기능한다. 그 어마어마한 경력은 어느덧 또 하나의 영화 역사를 형성하기에 이르렀음은 물론이다.

평생 극복하려했던 존재들과의 기나긴 인연

스승 페트라시와 음악원 동료들은 엔니오가 부와 인기에 굴복해 순수음악과 예술가 정신을 저버렸다고 오랜 세월 규탄해 왔었다. 이를 의식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기에 더욱 더 형식에 빠지지 않고 변화무쌍한 도전을 거듭하며 자신을 극한에 몰아넣었을 테다. 영화 내에 전문용어가 난무하기에 음악 애호가나 관련자가 아니라면 오롯이 다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음악적 배경지식이 요구되는 제약이 있지만, 그저 대충 알아만 들어도 엔니오가 결코 정형화되지 않는 당대 첨단의 음악적 실험을 자신의 영화음악으로 수행해 왔다는 게 확인된다.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와 함께 꾸준히 순수음악 창작에도 시간을 할애하며 정진한 끝에 페트라시와의 해후가 이어진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스트 사이에서 비교적 낯선 이름이지만 각자 일가를 이룬 그의 동기들이 진솔한 회고로 그런 엔니오의 자세를 증언해준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영화제를 석권할 때도 대서양 건너 미국은 자신이 세계영화의 본산이라는 자만으로 그저 외국어영화로만 치부했고, 감독은 위트 넘치게 미국 동네영화상이라며 아카데미상의 오만을 비꼬았다. 그래서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은 더 거대한 존재감과 위상을 불러왔다. 그런데 미국 아카데미상의 만행은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특히나 더 지독하게 가혹했다. 그는 무려 6번 음악상 후보로 올랐지만 번번이 미끄러져야 했고, 본인 뿐 아니라 세계 영화계 대부분이 이 상황을 당혹해 했다. 결국 그는 88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음악상을 엔니오의 음악 광팬이던 쿠엔틴 타란티노와의 협연 <헤이트풀 8>으로 수상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평생공로상을 거의 10년 전에 수상했음에도 말이다.

그렇게 전 세계적인 엄청난 영향력을 지녔음에도 유독 텃세가 심했던 미국 동네영화상 아카데미가 거장을 홀대해온 내력과, 카멜레온처럼 변화무쌍한 스타일 실험 중에도 더 굳건해지는 정체성에 대한 포커스는 영화 후반부를 면밀히 나눠가며 각각의 꼭지를 구성한다. 그런 딜레마 속에서도 엔니오는 아집이나 원망으로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명성을 활용해 시네마 콘서트를 전 세계로 다니면서 그가 꿈꿨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서 활동을 노구에도 이어간다. 그리고 그런 활동을 통해 그가 꿈꿨던 이상적인 영화음악, 영화의 시각적 이미지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의 음악으로 온전히 상상되는 경지 - 그는 영화음악이 두발로 일어선다는 표현을 자주 썼다 -를 완성한다.

만면에 미소를 띈 채 인생의 승리자이자 후광을 뿜어내는 존재가 된 엔니오 모리코네의 위력은 그렇게 거대한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오직 음악 연주만으로 추억의 명작영화를 각자의 마음속에 그려내며 황홀해 하는 정경 속에서 절정을 이뤄낸 것이다. 그런 빛나는 성취의 순간들과 함께 영화가 종막으로 접어들면서 이제 스크린에 펼쳐진 화면은 엔니오 모리코네에게 존경과 헌사를 바치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는 잔칫집을 방불케 한다. 너무나 당연한 찬사이지만 특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엔니오와 함께 영화음악 역사의 성전에 모셔질 존재들의 입장이다. 존 월리암스와 한스 짐머, 퀸시 존스 같은 또 다른 전설들이 엔니오에게 전하는 평가와 경의는 그가 어떠한 위치에 우뚝 선 존재인지 새삼 깨닫게 해준다. 브루스 스프링스틴과 존 바에즈, 메탈리카 같은 현대 대중음악계의 거인들이 평하는 엔니오의 음악세계는 순수음악가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그의 영향력과 업적을 증명한다.

200년 후 세대는 마에스트로를 어떻게 기억할까 흥미로운 질문

누군가는 엔니오를 예찬하며 그는 현대의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존재라고 논한다. 물론 엔니오 본인은 무척이나 쑥스러워하면서 손사래를 치지만 말이다. 현대음악의 중심이 순수음악에서 대중음악으로, 그리고 동시대 음악이란 의미의 '컨템포러리' 중심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영화음악이라는 파급력 가득한 경로는 분명 핵심에 속할 테고, 이의 아이콘 같은 존재인 엔니오 모리코네는 어쩌면 정말로 그런 반열로 후대에 기억될지 모를 일이다.

20세기 판 모차르트나 베토벤, 슈베르트로 23세기쯤에 기록될지는 본인 말대로 그때가 되어봐야 확인 가능할 테지만 정말 그럴듯한 예언이 아닐 수 없다. 한스 짐머가 뭉클한 표정으로 "그의 음악은 곧 우리들 인생의 사운드트랙이죠!"라 표현할 때 절로 고개를 끄덕이며 손뼉을 치게 되니깐 말이다.

다만 영화는 모리코네의 음악과 그 음악이 깃든 영화에 대해 기꺼이 찬탄하는 이들이 아니라면 그에 대한 소개교재 느낌일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영화가 구현해내는 몇 가지 테마들, 영화에서 음악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점유하거나 혹은 할 수 있는지 여부, 그가 작업하며 지분을 차지하는 영화들의 목록이 당대 대중문화의 혁신과 세계영화사에서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응시하는 것은 방대한 영화의 역사에 입문하는 색다른 숨은 통로로 기능할 것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길을 인도하는 대안적 영화역사 같은 작업이다. 영화를 만들거나, 특히 음악작업을 해보려는 이들이라면 필히 봐야 할 마스터피스를 목격하는 중이다.

이 훌륭한 전기영화의 가장 큰 문제라면 너무나 방대한 정보량 때문에 한번 봐서 온전히 소화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400편이 넘는 영화음악 경력은 물론 60여 년 간의 순수음악 활동과 수많은 또 다른 거인들과의 흥미로운 관계들, 무엇보다 이 외유내강의 거장을 총체적으로 수용하려면 당연히 대가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하나 더, 그의 음악만 들어도 해당 영화가 머릿속에서 3D, 아니 4DX로 재현되는 바람에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한동안 계속 OST 재생해 놓고 넋을 놓게 되거나 다시 그 음악이 활약하는 영화들을 찾아보게 된다. 너무나 필연적인 운명에 우리들은 즐겁게 처하고야 말 테다.

<작품정보>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Ennio
2021|이탈리아|다큐멘터리
2023.07.05. 개봉|156분|12세 관람가
감독 쥬세페 토르나토레
출연 엔니오 모리꼬네, 클린트 이스트우드, 쿠엔틴 타란티노, 존 윌리엄스,
한스 짐머, 왕가위, 브루스 스프링스틴, 퀸시 존스, 쥬세페 토르나토레,
제임스 헷필드, 올리버 스톤, 롤랑 조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다리오 아르젠토, 펫 메스니, 주케로, 질다 부타, 둘체 폰테스 외
수입/배급 ㈜영화사 진진
공동배급 ㈜씨네필운

2021 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
2023 24회 전주국제영화제 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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