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대의 은퇴일기㉙] 서귀포에서 만난 황소

데스크 2023. 7. 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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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언제 찾아도 나를 반긴다, 하얀 모래사장과 청잣빛 바다, 한라산 중턱에 걸쳐있는 구름은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바람의 소리가 들리고 눈 부신 햇살이 내리는 돌담길 따라 소품 가게들이 살포시 웃고 있는 이중섭 거리를 거닐면 마냥 행복해진다.


서귀포 올래시장에서 이중섭거리로 내려가며 보이는 풍경(이중섭관련 그림이 걸려있다)ⓒ
이중섭 거리의 자그마한 공방과 가게가 있는 거리 풍경ⓒ

서귀포 올레 시장에서 도로를 건너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이중섭거리다. 매번 둘러봐도 운치가 풍긴다. 거리에 들어서면 이중섭 화가의 그림이나 조형물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비탈진 거리에는 오래되고 나지막한 지붕의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수수한 옷가지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공방이나 가게에는 관광객들이 느긋하게 구경하거나 선물을 고른다.


이중섭 가족이 피난 시절 거주했던 1.4평 방ⓒ

옆에는 한국전쟁으로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1951년 1월 원산에서 서귀포로 피난 와서 지냈던 초가집이 있다. 마을 이장 부부가 곁방 한 칸을 내주어 살았다. 부엌을 거쳐 들어가면 방이 있다. 1.4평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누우면 꽉 찰 공간, 방이라기보다는 관에 가까운 그곳에서 네 식구가 어떻게 살았을까. 아무리 전쟁 기간에 피난 와서 잠깐 기거한 곳이라고 하지만 상상이 안 된다. 그래도 여기에서 생활할 때가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서귀포 앞바다로 나가 게를 잡아 허기진 배를 채우며 온 가족이 함께 지냈던 시기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이중섭 거리 벽면에 걸려있는 이중섭 화가 그림ⓒ

벽에는 ‘소의 말’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이 붙어있다.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라는 구절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것 같아 가슴이 찡하게 울려온다. 내가 어린 시절에 조그만 방에서 8형제가 함께 지낼 때가 생각난다. 잠자다 일어나 소변보고 들어가면 누울 곳이 없어 어디에 들어갈까 한참을 망설이다 사이를 비집고 칼잠을 자곤 했다. 살을 비비고 부대끼며 자란 까닭에 지금까지도 형제애를 느끼며 가끔 그때를 이야기할 추억거리가 있어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초가집 주변은 이중섭거리로 지정된 뒤 예술촌으로 탈바꿈하여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곳에 머문 기간은 1년도 채 되지 않지만, 소를 비롯하여 한국적인 미를 탁월하게 그린 그림들이 많이 남아있어 지자체에서 그가 거주한 집을 복원하고 미술관도 개관했다. 부산광역시가 이중섭 가족이 피난 시절에 머물렀던 범일동 풍경거리를 2014년 뒤늦게 이중섭거리로 조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중섭을 이야기하면 이제 서귀포를 떠올릴 정도로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거주했던 가옥 근방에 있는 이중섭미술관ⓒ

거주지 위쪽에는 2002년 개관한 이중섭미술관이 있다. 외벽에는 “들소처럼” 제목의 특별전을 하고 있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대표작인 황소 그림을 조각으로 커다랗게 만들어 놓았다. 내부에는 ‘길 떠나는 가족’, ‘섶섬이 보이는 풍경’,‘파란 게와 어린이’,‘게와 가족’과 같은 은지화, 양면화, 엽서화가 전시되어 있다. 담뱃갑 은박지에 못으로 긁어 그린 은지화나, 종이 양쪽에 그림을 그린 양면화는 끊임없는 창작열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궁핍한 생활에서 얻어진 지혜일 수 있겠으나 예술가로서 새롭고 독특한 화법을 추구했을 것이라는 평가에 공감이 간다. 판잣집 골방에서 시루의 콩나물처럼 끼어 살면서도 그림을 그렸고, 부두에서 짐을 부리다 쉬는 참에도, 대폿집 목로판에도 그렸다고 한다. 캔버스나 스케치북이 없어 합판이나 맨 종이에도, 물감이나 붓이 없으니 연필이나 못으로 그렸다. 그림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컸으면 그리 했을까.


이중섭 화가의 대표작인 황소 그림ⓒ
이중섭 미술관에 전시된 그림ⓒ

일본인 아내가 친정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간 뒤 이중섭은 심한 고독감과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 시절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와 함께 엽서화가 전시되어 있다. 절절한 그리움이 담긴 편지를 읽다 보면 가슴이 저민다. 그림 속 아이들이 대부분 정면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림에서만이라도 자식들과 대면하고 싶은 작가의 무의식이 투영된 결과가 아닐까. 벌거숭이 아이들을 은지화에 그려낸 그림을 보면 사랑을 갈구하는 애절한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한국전쟁 이후 태어나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지만 한창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 살아온 우리는 운 좋은 세대다.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어 보람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이중섭 거주 가옥에서 자구리해안으로 내려가는 골목길

미술관 3층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족과 함께 게를 잡았던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자구리 해안이 손에 잡힐 듯하다. 어떤 곳인가 궁금했다.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한 좁다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더니 10분 거리다. 섶섬과 서귀포항 그리고 문섬이 눈앞에 있다. 해안가는 조그만 공원으로 꾸며져 작가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예술과 조각 작품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바닷가에는 그 당시 이중섭이 많이 잡았다는 게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때 너무 많이 잡아 씨가 마른 걸까?. 부인에게 “게를 너무 많이 잡아먹은 것이 미안하여 게 그림을 많이 그렸다”라고 고백했단다. 게 그림에 그런 깊은 뜻이 숨어 있을 줄이야.


이중섭이 가족과 함께 게를 잡았던 자구리해안과 좌측의 섶섬ⓒ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나 ‘섶섬이 보이는 풍경’ 그림은 지금 보이는 바다 전경과 거의 같다. 이곳에서 게를 잡아 반찬으로 먹으면서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살아야 했던 가장으로서의 심정과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피난살이 중이라고 하지만 가족들의 배고픔을 채워주지 못하는 무능함을 얼마나 자책했을까? 내가 어린 시절 보릿고개에 식량이 부족하여 장래쌀을 내야 했던 아버지의 심정이 얼마나 아렸을까 어슴푸레 짐작이 간다.


이틀에 걸쳐 미술관과 주변 거리와 자구리 해안까지 둘러보며 이중섭 화백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시대의 아픔과 생활상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그림을 보면서 작가의 애환과 가족애와 아름다운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당시의 이중섭 처지였다면 그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었을까?. 가장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황소처럼 뚜벅뚜벅 걸어왔지만 40세의 나이로 요절한 것에 숙연함이 느껴진다.



조남대 작가ndcho5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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