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미신고 반송' 처벌 관세법·특가법 조항 합헌 결정
관세법상 '반송'의 개념을 정한 정의 조항과 '미신고 반송'을 미신고 수출입과 동일하게 처벌하면서 물품원가 상당액을 반드시 벌금으로 병과하도록 한 조항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또 헌재는 원가 5억원 이상의 물품을 반송했을 때 가중처벌하도록 정한 특정범죄가중법상 처벌 조항도 합헌 결정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윤모씨 등 3명이 관세법 제2조 3호, 제241조 1항, 제269조 3항 1호, 특정범죄가중법 제6조 3항 등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해 자신들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고 평등원칙에 반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
윤씨 등은 2015년 7월1일부터 1년 반동안 수백 회에 걸쳐 1㎏ 금괴 4만여개를 밀반출한 혐의(특정범죄가중법 위반 및 관세법 위반)로 기소됐다. 홍콩에서 사들인 금괴를 국내 공항 환승구역에 반입한 후 신고하지 않고 일본으로 반출했다.
대법원까지 간 끝에 2020년 1월 윤씨는 징역 4년과 벌금 6669억원, 양모씨는 징역 1년4개월과 벌금 6623억원, 김모씨는 징역 1년6개월과 벌금 5914억원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이들에게 공동으로 약 2조원에 달하는 추징 명령도 내렸다.
수천억원의 벌금형은 세관장에게 신고하지 않고 물품을 반송한 경우 물품원가 이하의 벌금형을 반드시 병과하도록 정한 관세법 제269조 3항 1호에 따라 선고됐고, 형이 가중된 건 반송한 물품의 원가가 5억원 이상일 때 '1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처벌하도록 한 관세법 제6조 3항 때문이었다.
이들은 대법원에 상고하면서 해당 조항들이 헌법상 '책임과 형벌의 비례원칙' 등에 반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지만 기각되자 2020년 3월 직접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윤씨 등은 먼저 '반송'의 개념을 '국내에 도착한 외국물품이 수입통관절차를 거치지 않고 다시 외국으로 반출되는 것'으로 정한 관세법상 정의 조항이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이 사건 정의 조항의 사전적 의미와 관련 조항을 종합하면, 이 사건 정의조항에서 규정하는 '국내에 도착한' 외국물품이란 외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들여와 관세법에 따른 장치 장소, 즉 보세구역 또는 관세법 제155조 및 제156조의 장치 장소에 있는 물품으로서 수입신고가 수리되기 전의 물품을 의미하는 것으로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세법 제155조는 수출신고가 수리된 물품이나 검역물품, 압수물품 등 보세구역 외의 장소에 보관할 수 있는 예외를 정한 조항이고, 같은 법 제156조는 세관장의 허가를 받은아 보세구역이 아닌 장소에 보관할 수 있도록 한 예외 조항이다.
이들은 외국물품을 소지하고 우리나라 공항을 경유하는 모든 환승 여행객에게 반송신고의무를 부과한 관세법상 신고의무 조항이 환승 여행객에게 지나치게 넓은 범위의 반송신고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환승 여행객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한다고도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재는 "이는 관세법과 기타 수출입 관련 법령에 규정된 조건의 구비 여부를 확인해 통관행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려는 것으로서 그 입법목적이 정당하고, 반송신고가 성실하게 돼야만 반송통관행정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으므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또 "관세법은 휴대품, 탁송품 등은 반송신고를 생략하게 하거나 간소한 방법으로 신고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전자신고의 방법으로 반송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반송신고의무와 관련해 기본권 제한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익균형성에 대해서는 "통관질서의 유지는 관세수입 확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경우에도 국가경제의 보호와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그 자체로 중요성이 매우 큰 공익인 반면, 반송신고의무자는 반송물품에 대해 기본적인 신고 및 검사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불이익을 입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윤씨 등은 "이 사건 처벌조항은 관세수입 확보와 무관하고 국가경제에 미치는 해악이 크지 않은 밀반송행위를 과중하게 처벌해 책임과 형벌 간의 비례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반송물품의 원가가 5억원 미만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물품원가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의 범위에서 다양한 경중의 형을 선고할 수 있고, 법정형의 하한에 제한이 없으므로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대해서 정상참작 감경 없이도 각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가중처벌 조항에 대해서도 "반송한 물품의 원가가 5억원 이상인 경우의 법정형으로 1년 이상의 유기징역을 규정하고 있으나, 법정형의 하한이 징역 1년으로 법관은 나머지 양형요소들을 고려해 정상참작 감경 없이도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필요적 벌금 병과 조항에 대해 헌재는 "이 사건 병과 조항은 반송물품원가가 5억원 이상인 범죄행위에 대해서만 물품원가의 벌금을 필요적으로 병과하도록 하고 있다"라며 "반송물품원가가 5억원 이상인 대규모 밀반송범의 경우 막대한 범죄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범죄일 가능성이 크고, 물품이 일단 반출되고 나면 범죄의 수사와 처벌이 힘들다는 밀반송범의 특성을 고려하면, 밀반송 물품을 몰수·추징하는 것과 별개의 경제적 불이익을 가함으로써 경제적 동기에 의한 대규모 밀반송 범죄를 예방하고 엄단할 필요가 크다"고 밝혔다.
이어 "벌금형이 필요적으로 병과되더라도 반송물품의 원가에 비례해서 벌금이 책정되고, 벌금의 액수와 무관하게 선고유예가 가능하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반송물품원가가 5억원 이상인 경우 물품원가에 상당하는 벌금을 필요적으로 병과하는 것이 입법재량의 한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밀수출행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죄질이 가벼운 밀반송행위를 밀수출죄와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하도록 정한 것은 평등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재는 "수출이나 반송 모두 미신고행위를 처벌함으로써 통관절차의 이행을 강제해 관세행정상의 목적을 달성할 필요가 있고, 밀반송범과 밀수출범은 모두 일단 물품이 해외로 반출된 이후에는 증거 확보조차 곤란해 법적 강제력을 통해 신고를 확보할 필요성이 있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밀반송행위는 각국의 관세, 소비세, 소득세 등 조세포탈 범죄로 이어지는 특성이 있고, 밀반송행위 및 이와 관련된 조직적·지능적인 범죄행위가 반복되는 경우 경제·외교의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가 저하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하면, 밀반송행위가 밀수출행위에 비해 반드시 그 죄질이 낮다거나 처벌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윤씨 등이 밀반출한 금괴는 시가 합계 약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 등이 벌금을 내지 못하면 최고 3년까지 노역장에 유치된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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