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에게 물려주고 싶기까지 한 재밌는 철학 신간

박균호 2023. 7. 4. 0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를 읽고

[박균호 기자]

 책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 도마뱀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것처럼 철학자만큼 쓸모없는 인간도 없다. 철학자는 농부처럼 농산물을 생산하지도 군인처럼 전쟁터에 나가 나라를 지키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철학자는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가령 독재자가 온갖 만행과 부정을 저질렀을 때 불의를 느끼고 대항할 힘을 철학이 제공한다. 우리가 평소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며 권력자의 비리를 비판하며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힘은 태어나면서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서 체득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철학에서 왔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에 철학이라는 말을 붙여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농사 철학, 돈 쓰기 철학, 자녀 교육 철학, 근무 철학 등. 인간은 철학을 떠나서 살 수 없으며 철학이 없는 삶이란 그저 먹이를 찾아 무리 지어 다니는 쥐떼나 다름없다고 생각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다. 이런 사실로 진즉에 철학이 꽤 실용적인 학문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충녕 선생이 쓴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라는 읽다 보니 철학이 무척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의 소제목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철학이 우리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학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고양이에게도 예술 작품은 아름다울까?', '공포가 선사하는 즐거움', '해리포터는 존재할까', '알파고는 바둑에서 상대방을 이기고 싶어 할까', '환경보호 활동가가 매연을 배출하면 비난받아야 할까'....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서 소제목을 알쏭달쏭하게 단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데카르트는 '놀랍게도' 세상 사물들의 기본적인 정체성을 길이로부터 파악해야 한다고 주창한 최초의 사람인데 데카르트 이후로 과학이 해야 할 중점적인 일은 길이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수학이 더 중요해졌고 서구 사회에서는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날 기계문명이 데카르트가 주창한 '길이 측정'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돈키호테'보다 더 재밌는 철학책

한편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를 지금 읽게 될 독자를 부러워하게 되는 대목도 있었다. 야구공이 창문을 향해 날아가서 창문을 깨트렸을 때 우리는 당연히 야구공이 원인이고 그 결과가 깨진 창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철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원인과 결과가 애매모호일 수가 있다. 가령 창문이 마침 갈라져서 깨지기 직전에 우연히 야구공이 날아갔을 수도 있고 창문이 좀 더 튼튼했다면 야구공이 날아와도 창문이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원인을 규정하지만 따지고 보면 원인을 규정하는 것이 쉽지 않고 원인 자체가 실존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와 아내가 툭하면 다투는 원인이 허망하게 사라진다. 둘 중 하나가 불쾌한 언사를 했다는 원인을 규정하지만, 상대가 좀 더 너그럽거나, 이해심이 많거나 인내심이 많았다면 우리들의 다툼은 애초부터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을 한 번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불필요한 분쟁이 줄어들 것인가 말이다.

직장에 환경보호를 늘 주창하는 동료가 있는데 나는 수년 전부터 그토록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이 왜 노후 경유차를 운행하냐며 뒷담화 했더랬다. 나의 뒷담화는 정당하며 환경보호주의자인 내 직장 동료는 비난받아야 하는가? 철학에서는 '환경적 뚝심'이라는 개념으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즉, 환경보호론자가 다소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할지라도 꾸준하게 환경을 지켜나가려는 경향성을 띠고 있다면 그를 비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환경은 개개인의 작은 행위의 수정보다는 정책의 변경으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큰 정책이라는 것이 개개인의 작은 행위가 모여서 이뤄진다는 반론은 가능하겠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어렵고 딱딱하게 생각했던 학문이 우리들의 실생활과 이토록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를 내 딸아이에게 물려주고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재미'만으로 따를 적수가 없다는 <돈키호테>보다 어쩌면 더 재미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가 재미있고 웃기기는 하지만 주인공이 한 명이라 늘 결말이 예상되는 것에 반해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는 수십 명의 철학자가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통쾌하게 부수는 반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