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마이뉴스에 글을 쓰는 이유

정승주 2023. 7. 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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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주 기자]

 60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글쓰기에 열심을 내본다. 시작에는 처음만이 있을 뿐 늦음은 없다고 믿기에.
ⓒ 정승주
오마이뉴스에 글을 쓴 지 어느덧 한 달이다. 이번 글이 다섯 번째니, 1주일에 한 번 꼴로 썼다. 내 딴은 제법 열심히 쓴 셈이다. 작성한 글이 모두 게재되어 뿌듯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우쭐해진다.

노년의 문턱에 서 있는 나는 왜 이제야 글을 쓰게 된 걸까? <동물농장>,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나는 왜 쓰는가>, 한겨레출판, 2010, 289~300쪽)에서 글 쓰는 동기를 생계 때문인 경우를 제외하고 네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이다. 똑똑해 보이고 싶어, 유명해지고 싶어, 죽어서도 기억되고 싶어 등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돋보이려 쓴다는 것이다. 둘째, '미학적 열정'이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낱말과 적절한 배열이 갖는 묘미 등 글이 갖는 예술성을 체감하고 추구하려 한다는 것이다. 셋째, '역사적 충동'이다. 사실과 진실을 기록하고 보존하여 후세에까지 전하려 한다는 것이다. 넷째, '정치적 목적'이다. 세상이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고 쓴다는 것이다.

한 사람이 한 가지 동기로만 쓰는 것은 아니라고 오웰은 말한다. 네 가지 동기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는 쓰는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개인에게 있어서도 시기나 시대 상황에 따라 각 동기의 중요도가 달라진다고 지적한다. 오웰 자신만 하더라도 스페인 내전이나 히틀러 등장 이전에는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동기를 능가하는 사람이었다고 고백한다. 후로는 네 번째 동기에 따라 쓰되 두 번째 동기를 추구하는, 즉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어 했다.

작가 유시민은 <표현의 기술>(생각의길, 2016)에서 자신의 글쓰기 목적이 언제나 '여론 형성'에 있으며 오웰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반면 유시민과는 달리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은 2014년 한국언론문화포럼에서 한 강연에서 자신은 여론 형성에는 관심이 없고, 대신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겠다는 목표로 글을 써왔다는 취지로 말했다. "글로 남을 설득하고 진리를 얘기하고 나의 명석함을 증명하려는 이런 욕망이 없다"고도 했다. 오웰의 네 가지 동기와는 다소 비켜난다. 두 번째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지만 모호하다.

작가 장석주는 자신을 위해 쓴다고 했다. 김훈과 비슷한 듯하지만 잘 살려고 쓴다는 점에서, 오웰의 첫 번째 동기인 '순전한 이기심'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글쓰기는 권태와 우울에서 벗어나 충만감으로 향하는 일이다. 나 자신을 위하여 쓴다는 것은 일면 이기적으로 비칠지도 모르지만 진실이다. 내 기쁨과 슬픔을 위해서, 자기실현과 자아의 충일감을 위해서, 상처를 치유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쓴다." (장석주 지음, <나를 살리는 글쓰기: 전업 작가는 왜 쉼 없이 글을 쓰는가>, 중앙북스, 2018, 27쪽)
 
이처럼 글 쓰는 이유나 동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극히 당연하지 싶다. 그러함에도 장석주의 동기는 공유하고 싶은 지점이 많다. 나도 많은 경우 고통과 행복, 절망과 희망, 분노와 감사가 혼재하는 삶이 내는 오묘한 빛깔이 궁금해서 쓰고 힘들어서 쓰고 희망을 찾아내서 아니 찾으려고 쓰곤 하기 때문이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어선지 몰라도 한편으로는 나의 경험과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소통하고 싶어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글로 그렇게 된다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좋은 표현을 쓰려고 노력도 하고, 어쩌다 좋은 표현을 발견해 내면 스스로 뿌듯해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숨길 수 없다. 나는 오웰의 네 가지 동기를 모두 보유한 욕심쟁이인 셈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나는 왜 60이 넘어 글쓰기에 열심을 보이는 걸까? 첫 번째는 그동안 축적된 독서 때문이다. 삶, 신 그리고 세계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나는 관심 안테나에 걸리기만 하면 책을 구해 읽는 걸 좋아했다. 직장에 얽매여 있으면서도 20년 정도를 매달 다섯 권쯤은 꾸준히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읽기만 하고 기껏 일기장에 쓰는 정도였다. 은퇴도 하고 여유가 생겨서인지 이제는 표현하라고 나의 내면이 자꾸 충동질한다. 어쩔 수 없이 쓴다.

두 번째는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한 아쉬움 때문이다. 나는 30여 년 넘게 자료를 분석하여 보고서를 쓰는 일에 종사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한 셈이지만 나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글쓰기는 아니었다. 가끔 언론 기고도 하곤 했지만 일의 연장선에서 쓴 글이었다. 고백하건대 외부의 지시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쓴 글도 제법 있었다.

마지막으로 쉽지 않은 삶에서 나 자신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다. 생각을 표현하고, 고민을 표현하는 순간마다 자유로움도 하나씩 늘어감을 나는 느낀다. 하여 작가 김영하의 말은 나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후의 자유이며, 아무도 침해할 수 없는 마지막 권리입니다. 글을 씀으로써 우리는 세상의 폭력에 맞설 내적인 힘을 기르게 되고 자신의 내면도 직시하게 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뭔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는 직장이나 학교, 가정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나 육체적, 정신적 학대를 겪었거나 현재도 겪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런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으십시오.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김영하 지음, <다다다(보다 읽다 말하다)>, 복복서가, 2021, 429쪽)

오늘도 나는 고민거리와 생각의 실타래를 풀어놓으려고 자판을 두드린다. 시작에는 처음만이 있을 뿐 늦음은 없다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오마이뉴스가 허용해주는 지면은 그저 고맙고 소중하다. 여러분도 자신만의 색깔과 호흡으로 글쓰기에 도전해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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