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의 자살 다룬, 이 작가의 놀라운 출세작
[김성호 기자]
중요한 모든 일이 이미 이뤄진 것만 같다고 느낀 때가 있었다. 이를테면 위대한 모험과 발견, 대단한 혁명이며 목표 같은 것들을 누군가가 벌써 이루어버려서 남은 건 죄다 자투리처럼 느껴지곤 했던 것이다.
무심코 켠 TV 뉴스에서 세계 최초 무산소 등정이며 여성 최초 등정, 셰르파 없이 등정 했다는 내용 따위를 보게 되는 날이면 그런 생각이 치밀곤 하였다. 이미 오를 만한 봉우리는 옛 사람들이 모두 올랐기에 이제는 이런저런 조건들이 덕지덕지 붙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 <표백> 책 표지 |
ⓒ 한겨레출판사 |
장강명의 출세작 <표백>은 세상에 더는 위대한 무엇도 남아 있지 않다고 믿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보다 정확히는 그녀가 목숨을 끊은 뒤 벌어지는 일을 다룬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이다.
죽은 이는 대학생 세연이다. 남다르게 예쁘고 학벌도 좋은 데다 굴지의 대기업에 최종합격까지 한 그녀다. 그런데 웬걸, 세연은 제 삶이 가장 푸르러 보였던 바로 그 무렵 자살을 한다. 더욱 황당한 건 그녀가 죽은 곳이 깊이가 고작 50cm 정도인 학교 연못이란 점이다. 많이 취한 것도 아니고 따로 삶을 비관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주변 사람들은 세연의 죽음에 관심을 갖는다.
흥미로운 건 이후의 일이다. 세연이 죽기 직전 가깝게 지내던 이들에게 메일을 보낸 것이다. 그 안엔 그녀가 직접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글뭉치가 잔뜩 담겨져 있다. 세연이 친구들과 나눈 일상의 모든 기록이 마치 소설처럼 써내려진 것으로, 친구들은 이를 읽고서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된다. 세연이 적은 기록엔 친구 대부분이 세연이 죽은 뒤로 몇 년이 지나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약속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약속들은 실제로 이행된다.
젊은이를 좌절케 하는 완성된 세상
그런데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있는, 그런 끝없는 흰 그림이야.
(중략)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찬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 책 중에서
세연은 이미 완성된 세상에서 뛰어나고 야심 있는 젊은이는 제 자리를 얻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아무리 노력하여도 어떠한 위대함도, 새로움도, 사회를 뒤흔드는 충격도 줄 수 없다는 확신이 그녀를 거듭 실망하고 좌절하게 한다. 그리하여 그녀가 선택한 것은 저 자신의 죽음이다.
그 죽음은 패배며 절망의 결과가 아니며, 실망과 좌절을 딛고 세상을 뒤흔들어보겠다는 도전에 가까운 것이다. 오래 노력한 무엇이 성과를 보이는 순간 자살을 선언하고 죽는다면, 또 그런 죽음들이 연달아 이어진다면 세상에 파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세연이 세운 계획의 출발이다.
젊은이를 죽이는 세상, 소설 속 이야기뿐일까
소설은 세연의 죽음으로부터 5년이 지나 친구들의 죽음이 이어지는 상황을 제법 흥미롭게 그려낸다. 세연의 글 속에서 등장하는 여러 친구들이 하나하나 죽음을 선택하고, 세연이 쓴 글과 그녀를 따라 죽은 이들의 유서가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며, 자살 퍼레이드는 전국적 화제로 떠오른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건 의외의 자살과 이를 둘러싼 이야기 자체보다는 소설이 반영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 있다. 원룸이며 고시원 같은 단칸방에 살며 수년씩의 노력을 들인 끝에 공무원이나 사기업 취업을 이루는 세대의 모습을 우리는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가. 그렇게 얻어낸 일자리가 제 정체성이며 적성과는 전혀 맞지 않아 실망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또 얼마나 흔하게 보았던가.
평등과 평화, 독립과 민주 같은 온갖 대단한 구호들은 이미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이다. 오로지 나보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갖는 것이 삶의 격인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심지어 세상은 이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기까지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이겨서 남보다 조금 안정된 직장을 얻고, 조금 더 나은 수입을 얻는 것으로 삶을 소모해도 좋은가를 소설은 거듭하여 묻는다. 온갖 굉장한 것들의 상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꿈을 저도 모르는 새 작게 만든다는 문제의식도 분명한 생명력이 있다.
그리하여 대단함을 이룰 수 없는 청년의 삶이란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니냐는 소설 속 물음을 되묻게 한다. 누구도 가치를 말하지 않는 이 세상 안에서 가치를 잃어버린 세상이야말로 무가치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건 얼마나 놀라운 자세인가. 여러모로 완성도 높은 작품은 못되지만 <표백>이 여태 생명력 있는 작품으로 분류되는 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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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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