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日 후쿠시마 오염수, '방사능 테러'냐 '정치 괴담'이냐
국내 정치권 이어 과학계 의견 충돌
"방류 후 5년 뒤 한국에 돌아와
삼중수소 농도 더 낮아질 것"
"먹이사슬 관점 인체에 방사능 축적"
'핵 폐수·방사능 테러'냐, 아니면 '제2 광우병 선동에 괴담 정치'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동안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4일 안전성 평가를 담은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면 방류 개시 시점은 전적으로 기시다 후미오 총리의 결단에 달리게 된다.
오염수 방류가 현실로 다가오자 우리나라 국민의 불안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이고 과학계에서도 여전히 유해성을 우려하는 의견과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가운데 중국·러시아는 방류에 반대하는 반면, 미국·유럽연합(EU)은 일본의 판단을 존중하겠다고 하는 등 국가별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도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안전한가. 과학이 말하는 것'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오염수 안전성에 대한 과학계의 논란을 집중 조명했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내지 못했다. 오염수 방류의 여파를 두고 양극단의 이견이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방류 시점은 점차 다가오고 있다.
"오염수 위험 제로(0)… 한국도 삼중수소 방출"
현재 일본 후쿠시마 원전 저장탱크에는 오염수 133만t이 보관돼 있다. 일본은 다핵종제거기술(ALPS) 처리를 거쳐 오염수를 정화했는데 저장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이를 바다에 방류할 예정이다.
방류 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오염수에 포함된 삼중수소다. 오염수에 포함된 전체 64종의 핵종 중 62종은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권고 수준 이하로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삼중수소와 탄소-14는 ALPS로 걸러지지 않는다. 특히 삼중수소는 베타(β)-방사선을 방출해 인간의 DNA를 손상할 수 있어 우려가 크다.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바닷물과 섞어 삼중수소 농도를 ℓ당 1500Bq(베크렐·방사능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희석해 배출할 예정이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식수 방사능 기준치의 7분의 1 수준이다. 탄소-14의 방사능 농도도 현재 기준치 상한의 2%이며 방류 전 희석되면 더 낮아질 것이란 게 일본 측 설명이다. 학계에서도 일본이 공개한 처리 과정을 거쳐 오염수를 방류한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환경과학 전문가인 짐 스미스 영국 포츠머스대 교수는 오염수 방류 위험은 "명백히 제로(0)"라며 "태평양 섬들은 2000㎞나 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오염수는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북미에 먼저 도착한 뒤 다시 태평양을 돌아 동아시아로 유입된다. 한국엔 약 5년 뒤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이미 배출 기준을 총족한 삼중수소 농도가 더 낮아질 것이란 설명이다.
전문가들 상당수는 많은 국가들이 이번에 방류할 오염수보다 많은 삼중수소를 배출하고 있으나 인체 유해성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기도 한다.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 214TBq(테라베크렐), 중국은 2020년 기준 1054TBq의 삼중수소를 방출했다.
일본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이보다 훨씬 적은 연간 22TBq의 삼중수소를 배출할 계획이다. 토니 어윈 호주 국립대 명예부교수는 "한국 고리원전은 2019년 기준 일본의 배출 계획보다 4배 이상 많은 91TBq의 삼중수소를 방출했다"며 "전 세계가 60년 넘게 삼중수소를 포함한 물을 일상적으로 방류해 왔지만, 인간이나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미스 교수도 "프랑스 라 헤이그 재처리 시설은 연간 약 1만TBq의 삼중수소를 영국 해협으로 방출한다"며 "하지만 이 지역의 방사능 양은 굉장히 적고, 생태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상 최악의 원전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 사례를 언급하면서 "동료들과 후쿠시마 주변 바다보다 수천 배 더 오염된 물을 담고 있는 체르노빌 인근 호수 생태계를 연구했다"며 "그 결과 호수 생태계는 번성했고, 방사선 양도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먹이사슬로 인체에 방사능 축적"
일본의 안전성 검증 과정이 미비했다며 방류 결정에 반대하는 학계 의견도 관측된다. 우선 먹이사슬로 인체에 방사능이 축적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해양 생물학자인 미국 하와이대의 로버트 리치먼드 교수는 "더 큰 생물체가 오염 물질에 노출된 더 작은 생물체를 잡아먹는 과정에서 삼중수소가 축적될 수 있다"며 "'희석'이란 화학적 성질은 해양 생물학에 의해 약화하기 때문에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도쿄대 대기해양연구소의 시게요시 오토사카 해양학자도 "유기적으로 결합한 형태의 삼중수소가 어류와 해양 생물에 축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조류와 플랑크톤, 어류 등 먹이사슬을 따라 최종 포식자인 사람의 몸에 방사능이 쌓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리치먼드 교수는 "오염수 처리 후 해양 방류를 추진하는 이들은 (오염수가) 인체와 바다에 안전하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했다"며 장기적인 환경 영향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의 데이터 자체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미국의 100개 해양학 연구소가 모인 국립해양연구소협회(NAML)는 지난해 12월 "일본의 (오염수 방류가) 안전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적절하고 정확한 과학적 데이터가 부족하다"며 오염수 방류에 반대했다.
오염수를 ALPS로 처리해 62종의 핵종을 제거, 방류한 전례가 없었다는 점을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한국을 포함해 많은 국가는 정상 가동 중인 원전에서 발행한 폐기물을 ALPS와 유사한 방식으로 처리하는데 세슘 등 소수 핵종을 제거하는 수준에 그친다. 이에 따라 향후 ALPS 정상 운용 여부는 물론 처리 후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하로 내려갔는지 과학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이처지(紙)는 "물속의 방사선은 거의 자연적인 수준까지 희석될 것"이라며 "하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위험을 완화하기에 충분한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안전성 논란이 지속될 경우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호주 애들레이드대의 토니 후커 부교수는 "오염수를 콘크리트로 만들어 남아 있는 방사성 삼중수소를 가두자는 제안도 있다"고 말했다.
美·EU는 日 결정 존중… 中·러시아, 방류 반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각국의 반응도 온도 차가 크다. 일본에 인접한 중국 등 동아시아 국가와 태평양 섬나라들은 안전성을 놓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반면 오염수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하는 미국, 캐나다는 별다른 반응이 없다.
미국은 일본이 "엄격한 처리 절차를 거친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IAEA의 검증 결과를 신뢰하겠다는 입장이다. 앞서 IAEA는 중간 보고서에서 "방사성 핵종 등 위험물질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EU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시행한 일본산 식품 수입 규제를 이달 말 전면 철폐할 것으로 전해졌다. 외신은 EU가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폐지가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 정부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에 반대한다. 중국 정부는 "태평양은 일본이 핵 오염수를 방류하는 하수도가 아니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고 있다.
일각에선 앞서 일본 정부가 주변국과의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오염수 방류를 추진하면서 주변국의 불안을 키웠다고 지적한다. 향후 오염수 방류 과정에서 정상 처리 여부 등 꾸준한 모니터링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오염수 문제를 과학적 검증 차원이 아닌 정치적 목적에서 접근해선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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