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도 "탄소배출 기준 청정수소인증제…수소경제 마중물"
"좋은 기술, 나쁜 기술 따로 없어"
"수소 인센티브 전향적 검토해야"
탄소중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는 수소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술에 따라서 색깔로 구분한다. 천연가스를 개질해서 만들면 회색수소, 이 때 배출되는 탄소를 포집·저장(CCS)하면 청색수소다. 녹색수소는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분해해서 만들고, 원자력발전의 전기를 사용하면 핑크수소다. 원자력의 열과 전기를 함께 사용하는 퍼플수소도 있다. 수소 경제를 처음 접하는 누구나 한 번쯤은 보게 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한 수소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수소 색깔론'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국내 대표적인 수소 산업 진흥기관인 수소융합얼라이언스(H2KOREA)의 문재도 회장이다.
29일 서울 강남 집무실에서 만난 문 회장은 "색깔이 없는 수소에 색깔을 입혀서 마치 무지갯빛 수소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멋지게 얘기를 하지만, 수소 사업을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나이트메어(악몽) 그 자체"라며 "용도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혼란만 가중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럽에서 녹색수소는 좋고, 나머지는 안 된다며 논란이 벌어졌는데 색깔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라며 "(해법은) 수소 생산 시 각자가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최소화할 수 있는 자신에 적합한 기술을 활용하기만 하면 된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문 회장은 "궁극적으로는 탄소배출이 없는 녹색수소로 가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이 녹록지 않다"면서 "녹색수소를 대량 생산하려면 태양광, 풍력 같은 대규모 발전단지를 조성해야 하고 수전해 설비도 만들어야 한다. 또 생산한 수소를 운송할 수 있는 운송 수단도 갖춰야 한다. 막대한 투자가 선행돼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런 프로젝트가 성사되려면 수요처에서 상당한 물량을 사겠다고 해야 하는데 지금 그걸 해줄 당사자가 없다"며 "수요도 생기고 기술도 발전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현실을 인정하고 그 전 단계로 청정수소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국가나 기업의 상황에 따라 CCS나 원전을 사용해 수소를 만들고 인증제를 통해 검증받으면 청정수소로 인정을 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국내에서는 청정수소 인증제 법령 심사가 진행 중이며, 인증 방법론과 인센티브에 대해서도 연구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올 하반기 청정수소 인증기관을 지정하고 내년부터 인증제를 시행할 계획이다.
해외에서도 인증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은 2025년을 목표로 협의 중이며, 유럽(EU)도 회원국 간 입장을 조정하는 단계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청정수소(전주기 배출량 4kg 이내)에 세액공제를 부여하며 실질적인 인증 형식을 운영하고 있다.
문 회장은 "국가마다 인증제를 도입하려고 하면서 세계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는 문제도 있다"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정 수준 이하라면 청정수소로 인정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가 될 텐데, 다만 전주기에 대한 배출량은 동일한 기술로 검증하도록 하는 등 많은 문제를 합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와 기업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수소경제로 나아가기 위한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소는 모두 처음 가보는 분야다 보니 기술이나 안전기준 등 완전히 새로 마련해야 한다"며 "기업은 규제로 인한 불확실성을 빨리 해소해달라고 요구하지만 서두르다가는 예기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예로 인센티브를 들었다.
그는 "미국이 미래 에너지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IRA로 수소 산업을 지원하는데 우리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는 누구를 지원할 거냐는 문제, 다시 말해 해외에서 청정에너지를 이용해 수소를 만들면 해외 사업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또 해외 사업자에 보조금을 주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축하는 것이라는 논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기업들도 청정수소 전환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 석유화학이나 반도체 등 국내 기업들이 연간 200만t가량 수소(회색수소)를 사용하는데 모두 청정수소로 전환하면 그만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다"며 "석탄을 사용해온 철강이나 시멘트 기업들도 수소를 적용한 공정 전환에 지속해서 관심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 회장은 에너지와 통상, 산업 분야 전문가다. 1959년생으로 광주제일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행시 25회에 합격한 후 산업통상자원부의 요직을 거쳤다. 2013년부터 대통령비서실 산업통상자원비서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한국무역보험공사장 등을 역임하고, 2019년 수소융합얼라이언스 회장에 올랐다.
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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