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늦깎이 공부 중... 너도 나도 등단하는 이 수업의 비결

월간 옥이네 2023. 7. 4.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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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평생교육원 독서문화 프로그램 '글 더하기 삶'... 함께 읽고 듣고 쓰며 성장하는 시간

[월간 옥이네]

 '글 더하기 삶' 수강생들이 보이는 태도에서 글쓰기 비결을 찾은 것도 같다. 나의 말을 멈추고, 잠잠히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 그리하여 곁의 사물과 풍경, 그리고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 월간 옥이네
 
"오늘도 호미를 손아귀에 쥐어 잡고 땅과 씨름 아닌 대화를 나누려 노력해 본다. 잡초란 뿌리의 습성이 제각기 다르다. 땅바닥을 기어다니면서 세력이 점점 확대되는 걷잡을 수 없는 녀석. (...) 햇빛은 왜 나를 태우려는지, 잡초를 태워 버리지!" -김홍국씨 수필과제 '통제가 없어요?' 중

웬만한 이에게 평일 오전은 가장 바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농사짓는 이들은 해가 더 뜨거워지기 전 마쳐야 하는 작업에 열중하고, 양육자들은 자녀들이 학교·유치원 등으로 떠난 사이 집을 정리하고, 가게를 운영하는 이들은 손님맞이에 여념이 없을 시간이다.

이 바쁜 때에 충북 옥천군민도서관 지하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정성스레 써온 수필 과제를 낭송하는 소리다.

낭독의 시간이 끝나면 합평이 이어진다. 어미의 다양한 활용과 의도에 따른 느낌의 변화, 문장 구조 등 세세하게 집어내는 강사의 평에 "아이고, 바빠서 퇴고도 못 하고 그냥 과제 냈나 보네" 하는 놀림과 "그래도 이렇게 써야 늘지요", "강사님이 이야기 해주니 이제야 보이네, 집 가서 얼른 고쳐 봐야겠어요" 하는 겸허한 수용이 뒤섞여 터져 나온다.

글과 말이 쏟아지는 곳, 옥천 문정문학회(이하 문정문학회) 회원들이 매주 모여 시와 수필 창작 공부를 하는 '글 더하기 삶' 수업 시간이다.

서로의 삶 들여다보며, 서로를 가르치고 배웁니다

'글 더하기 삶'에서는 인문학적 시선을 담은 시·수필 창작 기법을 배운다. 두 시간여의 수업은 성은주 박사의 이론 강의와 수강생 작품 합평 시간으로 채워진다.

강의를 맡고 있는 성은주 박사가 처음 옥천을 찾은 건 2011년이다. 당시 옥천군 평생학습원 글쓰기 수업 강사의 사정으로 2주 동안 대신 강의를 진행한 것이 계기가 돼 14년 동안 강의를 이어왔다. 긴 시간 덕택인지 성은주 박사가 바라보는 수강생들의 면면은 더 깊고 애틋하다.

"여기 제일 오래 다닌 분이 이선근 선생님이에요. 수업이 처음 개설된 때부터 현재까지 하고 계시거든요. 이선근 선생님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언어표현이 어눌하셨는데, 이제는 말씀도 잘하시고 글 쓰는 표현력도 많이 느셨어요. 다른 곳에서도 강의를 많이 하고 있지만, 어디보다도 여기서 지도할 때가 제일 행복해요. 수강생분들을 통해서 저도 인생을 배우거든요. 제가 강사이지만 오히려 배우는 것이 많은 곳이 이 수업이에요."

최장기 수강생인 이선근(74, 청산면)씨는 1991년 트럭 사고를 당해 머리를 크게 다쳤다. 글을 쓰기엔 녹록지 않은 상황. 누구보다 더딘 속도와 투박한 글솜씨였지만 이를 극복하게 한 건 꾸준함이었다.

"게다가 내가 가방끈도 짧어. 초등학교 1학년 책을 보면서 6개월 동안 혼자 공부해 한글을 뗐어. 책 보며 써보고, 또 써보고 한 거지. 그래도 여기 다른 분들 따라가기가 힘들었어. 선생님께 평가 받으며 글을 뜯어보고 계속 쓰는 수밖에 없었지. 열심히 쓰다 보니 신춘문예 등단하고, 전국장애인 수필집에 글을 싣기도 했어. 보상이 따르지는 않아도 명예로운 일이지."

문학은 멀리 있지 않다
 
 충북 옥천 문정문학회(이하 문정문학회) 회원들이 매주 모여 시와 수필 창작 공부를 하는 '글 더하기 삶' 수업 시간 모습.
ⓒ 월간 옥이네
 
 '글 더하기 삶' 수업을 듣고 있는 수강생
ⓒ 월간 옥이네
 
"이 사람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이 시간에 생업도, 일상도 내려두고 매주 이렇게 와서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연신 자신을 낮추던 이선근씨가 자신 있게 말하는 때는 함께 하는 수강생들을 자랑하는 순간이다. 이성근 씨가 좋은 글을 쓰는 분이라며 소개해 준 조익재(61, 옥천읍)씨는 지난달 종합예술잡지 '한국문학예술'에서 수필 신인상을 받았다. 자랑할 법한 경력에도 "책을 쓰고 싶다는 꿈이 있어 글을 꾸준히 써왔지만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었는데 마침 문학 강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게 되었다"며 의지를 내보인다. 함께 공부하는 사이라 서로의 품성을 닮는 것인지, 겸손한 모습이 똑 닮았다.

'글 더하기 삶' 수강생들이 보이는 태도에서 글쓰기 비결을 찾은 것도 같다. 나의 말을 멈추고, 잠잠히 들려오는 주변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 그리하여 곁의 사물과 풍경, 그리고 사람이 가진 고유의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시를 쓴다고는 하지만 결국 시는 발견하게 되는 거 같기도 해. 마주치는 사물과 풍경 너머를 느끼는 게 시 쓰는 삶인 거지. 시를 쓰고 싶다고 단박에 시가 나오지는 않으니, '시'라는 안경을 쓰고 산책하다 갑작스레 영감이 찾아오면 얼른 펜을 드는 거야." (이흥주씨, 옥천읍)

어머니가 주위에 계시면 항상
어머니 냄새가 났다
...
나를 세상에 있게 한
하늘 아래 하나밖에 없는 상큼한 향취
내 어린 머리에 새겨진 기억은
희끗한 머리칼만큼이나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때보다도 더 진한 향기로 살아나고 있다

동탄 이흥주의 '어머니 향기' 중

이흥주(76)씨는 옥천신문에도 다수의 글을 기고하고, 2015년 지필문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하는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온 이다. 그는 학교에서 기능직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하고서야 막연하게 꿈꾸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흥주씨에게 시 쓰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글감이 되기 때문.

'글 더하기 삶'에서 나누어지는 다른 작품에도 수강생 개개인의 일상이 녹아들어 있다. 오래전 다녀온 여행, 매일 같이 나를 괴롭히는 밭일,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 한 자락. 나의 삶이 모두 시가 되고 수필이 되니 일상을 치밀하게 관찰할 수밖에.

단순한 쓰기를 넘어서
 
 문정문학회가 그동안 발간해온 문집들
ⓒ 월간 옥이네
 
"시만 배우는 게 아니라 시 낭송으로, 멜로디에 가사를 얹는 작사로 활동을 이어보고, 수필만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산문으로 풀어 쓰는 포에세이(poessay), 사진을 찍어 함께 전시하는 포토 포엠(photo poem)도 시도해 볼 수 있잖아요. 시와 수필에서 확장된 활동을 강의 틈틈이 알려 드리고 싶어요."

단순히 시와 수필을 쓰는 것을 넘어 다른 문화예술과 융합하는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성은주 박사다. 흥미로운 건 '글 더하기 삶'의 수강생이자 문정문학회의 회장인 이흥주씨가 전한 바람도 성은주 박사의 이야기와 결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문집 형태로만 작품을 공유하고 있는데, 가능하다면 사진과 함께 작품을 전시하는 형태를 시도해 보고 싶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자들이 같은 바람을 품었다는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 터. 오랫동안 애정과 신뢰를 주고받아 온 이들이 바라는 대로 탐스러운 열매를 맺길 기대해 본다.

월간옥이네 통권 72호(2023년 6월호)
글·사진 이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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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천 문정문학회 회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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