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 시달리는 해양동물…선박 속도 줄였더니 '일석삼조' 효과
선박이 운항할 때는 프로펠러와 선체, 엔진 등에서 소음이 발생한다.
배에서 내보내는 소음은 바닷속에서 무려 1000㎞까지 퍼지기도 한다.
고래와 같은 해양 포유류나 일부 해양동물은 먹이를 찾고, 방향을 잡고, 포식자를 감지하고, 의사소통하는 데 청각을 사용한다.
선박의 해양 소음은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세계 물류의 90%는 선박을 통해 이뤄지는데, 2050년까지 3배로 늘어날 전망이다.
빈번한 선박 통행은 해양 포유류의 먹이 찾기와 휴식, 상호작용과 이동을 방해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선박의 운항 속도를 줄이면 해양동물의 소음 피해를 줄이는 것은 물론 온실가스 배출량도 줄고, 고래와의 충돌도 예방할 수 있어 '일석삼조'가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해양 소음 줄이는 3가지 방안
연구팀은 선박의 운항 속도, 선박과의 거리 등에 따른 해양 소음 노출 정도를 측정했다.
또, 화물선이 300~3000m 범위에서 서로 다른 속도로 이동할 때 발생하는 소음을 시뮬레이션해서 소음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즉, ▶선박의 운항 속도를 줄이는 방법 ▶선박이 서식지를 우회하는 방법 ▶선박의 설비를 개선하는 방법 등 세 가지 방안의 효과를 검토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선박의 속도를 낮출수록 배출되는 해양 소음 낮아지고, 선박과의 거리가 멀수록 해양 소음 노출이 줄어드는 것이 뚜렷했다.
화물선 소음 영향 40분 지속
그 결과, 화물선이 통과하는 동안 광대역 수신 음압 레벨에서 최대 155 수중 데시벨(㏈ re 1 μPa)까지 증가했고, 전체적으로 소음은 40분 동안 이어졌다.
대형 선박의 운항은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바닷속 소리 환경(soundscape)을 변화시키는 셈이다.
연구팀의 시뮬레이션 결과, 20노트(시속 37㎞)로 '고속' 항해하는 295m의 컨테이너 선박의 소음 발생을 6㏈ 줄이면, 선박이 통과할 때 순간 음향 발자국이 75%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주어진 시간에 소음의 영향을 받는 해양 포유동물의 수가 평균 75% 감소함을 의미한다.
선박에서 배출하는 소음이 10㏈ 줄면 순간 음향 발자국이 90% 감소한다는 의미다.
순간 음향 발자국(instantaneous acoustic footprint)은 매 순간 수중에서 방사되는 소음의 영향을 받는 선박 주변의 수체를 물 표면에 투사해 넓이(㎢)로 표시한 것이다.
선박에서 배출하는 소음은 3차원 입체적으로 공처럼 퍼져나가지만,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소음이 '원통형'으로 퍼져나가는데, 이 경우 소음 감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
선박 소음 수준이 6㏈ 감소하면 얕은 곳에서는 주어진 소음 노출 영역이 94%나 줄어든다.
연구팀은 "종에 따라서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파수가 있지만, 선박 소음을 줄이면 해양 포유류나 소음에 민감한 다른 물고기나 무척추동물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속도 20% 줄면 6데시벨 감소
선박이 본격적으로 운항할 때는 소음이 속도의 6 제곱에 비례한다.
이는 속도가 조금이라도 낮아지면 소음 발생은 크게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속도가 20% 감소하면 선박의 소음 배출은 주파수와 상관없이 평균 6㏈ 감소하고, 속도가 50% 줄어들면 평균 소음도는 18㏈ 감소한다.
해양 보호 구역 및 기타 민감한 서식지 내에서 속도를 50%로 낮추면 선박의 순간 음향 발자국을 98.5%까지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선박이 범고래 서식지 내에서 자발적 감속과 소음 감소 노력으로 범고래가 먹이 찾기 시간 손실이 22% 줄어들었다는 보고도 있다.
선박이 느리게 운항할 경우 동물들이 소음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연구팀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빠른 선박 통행(20노트)과 비교하여 50% 감속하면(즉, 10노트), 300m 거리를 기준으로 모든 주파수에 대해 동물이 선박 소음(90㏈ re 1μPa)에 노출되는 시간이 76% 줄어든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감속으로 선박이 서식지 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지만, 동물이 노출되는 소음 수준과 노출 시간은 모두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어
감속은 화물선의 연료 소비를 개선, 비용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일 수 있다.
해운 산업이 국제해사기구(IMO)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맞추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더불어 선박과의 치명적인 충돌을 줄이는 이점도 있다.
연구팀은 서식지에서 멀리 돌아가는 경우도 분석했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 접근 거리를 300m에서 3000m로 늘리기만 해도 최대 노출 소음 수준은 118㏈에서 98㏈로 줄고, 노출 지속시간은 25분에서 23분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박 접근 때 소음 상승 속도(acoustic looming)는 분당 8.9㏈에서 0.9㏈로 낮아졌다.
소음이 갑작스럽게 커지면서 해양동물이 놀라는 상황도 줄어드는 셈이다.
선박의 설비를 개선하고 운항 속도는 줄이지 않을 경우에도 소음이 영향을 미치는 범위나 노출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소음 상승 속도는 크게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동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세 가지 방안 결합하면 더 큰 효과
캐비테이션 현상은 프로펠러가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주변 압력이 낮아지면 바닷물에 녹아있던 공기가 분리되면서 기포가 생기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때 고주파 소음이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통상 캐비테이션 발생 속도 이전에는 엔진 등이 수중 방사 소음의 주원인이지만, 캐비테이션이 발생하는 속도 이상에서는 캐비테이션이 수중 방사 소음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연구팀은 "감속, 경로 변경, 기술 수정 등을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수중 소음의 영향을 받는 동물의 숫자와 영향 범위를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요한 서식지 등 보호구역 내에서는 선박 속도를 낮추거나, 보호구역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해양 포유류를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옆집 연예인 아들만 넷, 소음 힘들다" 호소에…정주리 재차 사과 | 중앙일보
- “차 안 팔아 묵을랍니까?” 현대차 前노조위원장의 변신 | 중앙일보
- "분당서울대 응급실로 갑시다"…환자들 택시가 된 구급차 | 중앙일보
- 잠실 석촌호수서 여성 시신 발견…"롯데월드 직원이 신고" | 중앙일보
- 日 호텔서 머리 없는 남성 시신 발견…CCTV 마지막 모습 보니 | 중앙일보
- 伊차관, 공개석상서 "많은 여성과 잠자리" 발언…사임 압박 후폭풍 | 중앙일보
- 文 얼굴에 반창고·시퍼런 멍…"사진 내려라" 지지자들 격앙, 왜 | 중앙일보
- 한국 영부인 최초 '아오자이' 입은 김건희 여사..."반했다" | 중앙일보
- 목에 닭뼈 걸리자 "콜라 드세요"…환자 놀라게한 이 처방의 결과 | 중앙일보
- 국내 첫 레즈비언 임신부…"역겹다" 맘카페 혐오글에 일침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