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美 휴미라 대전…셀트리온·에피스, 가격 제각각인 이유?
삼성바이오에피스 '하드리마', 85% 할인
셀트리온 '유플라이마'는 5% 인하 그쳐
미 시장 변수인 'PBM'·'리베이트' 영향
높은 가격 책정으로 점유율 향상 노려
낮은 가격은 공보험 시장 타깃 가능
미국 '휴미라(성분명 아달리무맙)'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시장의 문이 드디어 열렸다. 24조5000억원에 달하는 미국 시장을 두고 전략에 따라 다양한 가격이 매겨지 있고, 제품 선택 과정에서 농도·부작용 개선 여부 등 다양한 요소가 존재해 치열한 전략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4일 국내 휴미라 바이오시밀러 개발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은 최근 미국 시장 진출의 포문을 열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미국 파트너사인 오가논과 손잡고 '하드리마'라는 품명으로 지난 1일부터, 셀트리온이 개발하고 셀트리온헬스케어가 해외 판매를 맡는 '유플라이마'는 지난 2일 출시됐다. 특히 셀트리온그룹은 서정진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들이 미국 현지에서 직접 영업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이한 건 두 약의 가격이 크게 차이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바이오시밀러는 보다 저렴한 약가로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드리마의 유통사인 오가논은 이 같은 인식에 발맞추듯 도매가격(WAC)을 휴미라의 월 6922달러(약 905만원) 대비 85% 인하한 1038달러(약 136만원)로 정했다. 반면 셀트리온헬스케어는 유플라이마의 WAC를 오리지널 대비 5%만 낮춘 6576.5달러(약 860만원)로 시장에 내놨다. 같은 바이오시밀러끼리도 무려 약 5500달러의 월 비용 차이가 발생한 것이다.
다른 바이오시밀러들도 마찬가지다. 코헤루스의 '유심리'는 삼성바이오에피스처럼 오리지널 대비 85.6% 인하한 995달러(약 130만원)의 WAC을 제시하며 저가 경쟁에 나섰다. 반면 베링거인겔하임은 '실테조'의 가격을 셀트리온헬스케어 수준의 오리지널 대비 5~7% 낮춰 잡았다. 복합 전략을 내놓은 곳도 있다. 통상 수준의 할인을 택한 약과 함께 할인 폭을 대폭 키우는 대신 정식 브랜드명이 아닌 성분명 등으로만 판매가 이뤄지는 '무브랜드(unbranded)' 제품을 함께 내놓는 것이다. 지난 1월 '암제비타'를 가장 먼저 시장에 내놓은 암젠은 기본 할인 폭을 5%로 설정하되 무브랜드는 55%의 할인율을 매겼고, '하이리모즈'를 개발한 산도스 역시 기본 5% 할인 외에 81% 할인을 적용한 무브랜드 제품을 내놨다.
미국 시장의 핵심 변수, 'PBM'과 '리베이트'
이 같은 상황은 미국의 의약품 시장 구조가 한국과는 매우 다르다는 데 기인한다.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라는 특수한 기관이 존재하고, 국내에서는 불법인 리베이트도 미국에서는 허용된다. 이 두 요소가 시장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저가 또는 고가, 혹은 투 트랙 전략으로 정해지고 있는 것이다.
PBM은 보험사를 대신해 제약사와 약가 및 리베이트 수준을 논의하고, 이를 통해 약국에서 실제로 처방 가능한 약제 목록인 처방집(formulary)을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공보험 영역에서도 PBM에 이 같은 업무를 위탁하는 경우도 많다. 휴미라와 같은 일부 특수의약품은 PBM의 처방집에 등재되지 않는 한 사실상 약국 판매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처방집에 등재되고, 이 중에서도 어느 등급에 놓이느냐에 따라서 제품의 성패가 갈릴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의 휴미라 PBM 시장은 CVS케어마크(33%)와 익스프레스 스크립트(Express Scripts, 24%), 유나이티드 헬스 그룹 산하의 옵텀Rx(OptumRx, 22%) 등 3개 대형 PBM이 약 80%에 달하는 시장 점유율로 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처방집 등재에 성공하면 시장 점유율을 크게 올릴 수 있는 것이다.
고가 전략을 내건 곳들은 이들 대형 PBM 등재를 우선시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PBM에게 지불되는 리베이트는 약가의 일정 비율로 책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높은 약가는 PBM들에게 더 많은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PBM 입장에서는 같은 성분이라면 할인이 덜 된 약이 더 많이 팔려야 더욱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옵텀Rx가 사보험 처방집에 하드리마와 유플라이마를 제외하고 채택한 것으로 알려진 암제비타, 하이리모즈, 실테조는 모두 기본 WAC을 5%가량 내리는 데 그쳤다.
또한 최근 미국 정부가 공보험 적용 약제에 대해 약가를 물가상승률 이상으로 올릴 경우 이로 인한 초가 이익을 정부가 환수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제재가 시작된 것도 높은 가격을 선택한 요인으로 풀이된다. 가격 상승에는 제한이 있지만 반대로 약가 인하는 특별한 규제가 없는 만큼 향후 시장 및 정책 변화에 발맞춰 유동적인 가격 정책을 가져갈 수 있도록 출시 초에는 작은 할인폭만을 적용한 것으로도 보인다.
에피스는 '초저가' 전략…오히려 PBM에 압박 가능성도
반면 오가논과 코헤루스는 85%가량 할인된 초저가 전략에 나섰다. 김민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들 약에 대해 "고 리베이트 전략 빅 파마들에 비해 아주 미미한 수준의 리베이트를 제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저렴한 WAC 가격은 리베이트 경쟁력을 다소 잃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오히려 "정책적인 압력을 PBM에게 행사할 수 있다"며 "PBM은 왜 가격이 85% 이상 저렴한 제품을 커버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며 역공의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은 이어 기저인슐린 '란투스(성분명 인슐린 글라진)'의 바이오시밀러 '셈글리'를 예로 들며 저가 전략도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도 짚었다. 비아트리스가 개발한 셈글리는 2021년 오리지널과 크게 가격 차이가 없는 제품으로 출시됐다. 이후 익스프레스 스크립트의 가장 큰 처방집에 오리지널을 제외하고 포함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다른 대형 PBM의 처방집에는 등재되지 못했다. 지난해 총 처방수(TRx) 기준 상업 시장에서 셈글리는 29%의 점유율만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셈글리의 무브랜드 버전인 인슐린 글라진이다. 성분명을 그대로 제품명으로 쓰면서 가격을 65% 할인한 148달러에 시장에 나왔다. 인슐린 글라진은 지난해 기준 상업 시장에서도 19%의 점유율을 보였고, 저소득층 대상 공보험인 메디케이드에서는 셈글리(3%)를 훨씬 뛰어넘는 30%의 TRx 점유율을 갖고 있다. 즉, 저가 전략을 펼칠 경우 공보험이나 지역 의료기관들의 선호도가 높을 수 있고, 일부 PBM에서도 리베이트보다는 저렴한 가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코헤루스가 유심리 판매를 위해 손잡은 마크 쿠반 코스트 플러스 드러그 컴퍼니(MCCPDC)는 의료보험에 관계없이 대중에게 저렴한 제네릭·바이오시밀러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공익 기업이기도 하다.
품질도 변수…'고농도'·'상호교환성' 확보해야 경쟁력
품질도 핵심 변수다. 휴미라는 50㎎/㎖의 저농도 제형과 농도를 높여 약물 투여량을 절반으로 줄인 100㎎/㎖의 HCF로 나뉜다. 지난해 기준 미국에서 판매된 아달리무맙 성분의 85%가 HCF로 HCF에 대한 선호도가 훨씬 더 높다. 이는 아직 저농도 제품만 개발된 암제비타가 출시 후 반년여 간 시장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 유플라이마는 HCF로만 개발됐고, 하드리마는 저농도와 HCF 모두 보유하고 있다. 이외에는 하이리모즈만이 저농도와 HCF를 모두 갖춘 상태고 다른 회사들은 아직 개발 중이거나 저농도 제품만으로 시장에 나서고 있다.
또 다른 품질 변수는 '상호교환성(interchangeable)'이다. 완전히 똑같이 생산이 어려운 바이오의약품의 특성상 바이오시밀러는 동등성이 아닌 ‘유사성’을 입증하게 된다. 제네릭(합성의약품 복제약)과 달리 바이오시밀러의 교차 조제가 허용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상호교환성을 인정받으면 약사가 휴미라를 처방받아 온 환자에게 해당 바이오시밀러를 대체 조제해 판매할 수 있게 된다.
현재 휴미라와 상호교환성을 인정받은 건 실테조 뿐이다. 하드리마와 유플라이마 등 다른 바이오시밀러들은 상호교환성 확보를 위한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지난 5월 임상을 마치고 관련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는 상태로 "적기에 남은 절차를 완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설명이다. 셀트리온 역시 현재 유럽 에스토니아에서 판상 건선 환자 366명을 대상으로 상호교환성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상호교환 바이오시밀러는 출시 후 1년간 독점적인 지위를 누리기 때문에 이들 제품에 대한 상호교환성이 인정되더라도 실제 대체 조제가 가능해지는 건 내년 7월 이후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PBM 구조로 운영되는 미국 시장의 특성 상 상호교환성의 파괴력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실테조가 등재되지 않은 PBM의 처방책을 통해 보험을 적용받는 환자의 경우 아무리 상호교환성을 인정받았다 하더라도 실테조에 대해서는 보험 적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약국에서 실테조로 대체 조제를 할 경우 오히려 환자가 약값을 모두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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