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강한 신입 드물다"…최고참 맞짱 뜬 첫 흑인 女대법관

김형구 2023. 7. 4.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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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7일 미국 워싱턴 DC 연방 대법원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AP=연합뉴스

미국 연방 대법원이 최근 교육·정체성 등 굵직한 사안마다 보수적 판결을 잇따라 내놓은 가운데 진보 블록에 있는 대법관 셋 중 한 명인 커탄지 브라운 잭슨(52) 대법관에게 이목이 쏠린다. 지난해 2월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관 후보자가 된 그는 전임 스티븐 브라이어 대법관이 지난해 6월 30일(현지시간) 퇴임하면서 같은 날 공식 취임한 최초의 흑인 여성 대법관이다.

잭슨 대법관은 대법원이 지난달 29일 대입 소수인종 우대 정책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에 위헌 판결을 내린 데 이어 바이든 행정부의 학자금 채무 탕감 정책에 대해 정부 패소 판결을 내리며 바이든표 정책에 연달아 제동을 건 지난달 말 대법관 취임 1년을 맞았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2일 ‘잭슨의 대담한 데뷔와 독립적인 행보’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잭슨 대법관의 취임 1년을 돌아봤다.

잭슨 대법관이 최근 관심을 모은 계기는 어퍼머티브 액션 판결에서 같은 흑인인 클래런스 토마스(75) 대법관과 정면충돌하면서다. 1991년 조지 H.W. 부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흑인 남성으로는 두 번째로 대법관 자리에 오른 토마스 대법관은 9명의 연방 대법관 중 가장 경력이 오래된 최고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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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대법관은 소수인종 우대 제도를 비판하며 “모든 이가 법 앞에서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헌법 원칙에 따라 살기를 바란다”고 했다. 특정 인종에 대한 정책적 배려보다 능력에 기반한 공정한 경쟁의 가치를 우선시한 관점이었다. 그러면서 잭슨 대법관을 겨냥해선 “노예제라는 원죄가 오늘날까지 우리 삶을 결정하며 여전히 인종차별 사회에 갇혀 있다는 시각으로 사물을 본다”고 비판했다. 예일대 로스쿨 출신의 토마스 대법관은 소수인종 우대 정책으로 혜택을 본 당사자지만 ‘인종 중심적 사고’에 비판적이며 보수적 법리에 충실한 법률가로 분류된다.

잭슨 대법관은 판결문 각주에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토마스 대법관을 비판했다. 잭슨 대법관은 토마스 대법관을 향해 “‘인종에 대해 더 생각하지 말라’고 요구하는데 이는 미국의 잠재력을 줄곧 가로막은 인종 간 격차라는 ‘방 안의 코끼리’에 눈 감으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8일(현지시간)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지명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행사에서 잭슨 당시 대법관 후보자의 손을 잡으며 미소짓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잭슨 대법관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재임 중 지명된 소니아 소토마요르(69) 대법관, 엘리나 케이건(63) 대법관과 함께 '진보 블록'으로 분류된다. 셋 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 때 지명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잭슨 대법관은 진보 블록 중 한 명이면서도 진보 진영과 늘 같은 목소리를 내진 않았다. 사안에 따라 보수 성향 대법관과 같은 편에서 설 때도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WP는 그가 “세 명의 진보 진영 대법관 가운데 누구보다 가장 많은 단독 반대 의견을 냈다”고 보도했다.

잭슨 대법관은 근로자 파업으로 회사가 입은 손해와 관련해 회사가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 소송에서 “근로자의 파업권 보호를 위해 손해배상을 제한해야 한다”는 단독 소수의견을 낸 적이 있다. 당시 진보 블록의 소토마요르, 케이건 대법관은 보수 성향 대법관 6명과 마찬가지로 “회사가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쪽이었다.

지난해 10월 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의 연방 대법원 건물에서 대법관들이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 존 로버츠 대법관(대법원장),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뒷줄 왼쪽부터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 닐 고서치 대법관, 브렛 캐버노 대법관, 커탄지 브라운 잭슨 대법관. AP=연합뉴스

그런가 하면 잭슨 대법관은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대법관과 같은 의견을 낸 적도 있다. 잭슨 대법관은 정부가 세금으로 인한 채무보다 더 큰 금액으로 재산 압류를 가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한 여성의 소송에서 고서치 대법관과 함께 이 여성의 손을 들어줬다. 고서치 대법관의 법률 서기를 지낸 토비 영은 “개인의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잭슨과 고서치 대법관) 의견에는 확실히 공통점이 있다”고 WP에 말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잭슨 대법관은 워싱턴 DC 연방 지방법원 판사(2013~2021년), 워싱턴 DC 연방 항소법원 판사(2021~2022년)를 지내다 지난해 바이든 대통령에 의해 연방 대법관으로 지명됐다. 역시 바이든 대통령이 지명한 사상 첫 흑인 여성 백악관 대변인 카린 장피에르와 함께 바이든 대통령 재임 중 요직에 오른 대표적인 흑인 여성으로 꼽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법무장관을 지낸 그레고리 G. 개러 대법원 변호사는 “이렇게 강력한 목소리를 내는 신임 대법관을 떠오르긴 쉽지 않다”며 “잭슨 대법관은 소토마요르 대법관과 함께 대법원의 가장 왼쪽(좌파)에 있지만 좌파의 많은 주장에 새로운 생명과 신선한 관점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소수인종 우대정책 위헌 판결에 52% ‘지지’


한편 연방 대법원의 어퍼머티브 위헌 판결에 대해 미국인 절반 이상은 지지한다는 여론조사가 발표됐다. 미 ABC 방송과 여론조사 업체 입소스가 지난달 30일부터 이틀간 성인 937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2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소수인종 우대 정책에 대한 대법원의 위헌 결정에 응답자의 52%가 ‘지지한다’고 답했다. ‘반대한다’는 쪽은 32%, ‘모르겠다’는 답변은 16%였다.

학자금 대출 탕감 제도를 무효화시킨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찬성(45%)과 반대(40%)가 대략 엇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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