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납치 주도한 이후락에게 “해외 도피 안 하셔도 된다”-김대중 육성 회고록〈8〉
김대중 육성 회고록 〈8〉
이듬해 7월 미국에서 유신 반대 운동의 구심체로서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를 발족했다. “망명정부를 세우자”는 주장도 있었으나 단번에 물리쳤다. 8월 15일에는 한민통 일본 본부를 구축할 예정이었다. 박정희 정권에게 나는 불편한 망명객이었다.
긴장감이 고조되던 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사건’이 터졌다. 이날 오후 1시 도쿄 그랜드팰리스 호텔 22층 2212호실, 나는 일본을 방문한 양일동 의원과 식사를 마치고 방을 나서던 참이었다.
옆방 2210호실에서 괴한 네댓 명이 갑자기 뛰쳐나와 덮쳤다. 이어 2210호실로 끌고 간 뒤 마취 손수건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자동차에 실려 오사카의 한 가옥(한국 중앙정보부의 안가)에 끌려갔다. 납치범들은 나에게 허름한 옷과 신발로 갈아 입혔다. 다시 자동차에 태워 바닷가로 이동한 뒤 큰 배(중정 공작선 ‘용금호’)에서 나를 넘겼다.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갑판 밑에 감금당했다. 몸을 관(棺) 바닥에 까는 칠성판 같은 판자에 송장처럼 묶었다. 입에는 재갈을 물렸고, 두 눈은 붕대로 가렸다. 손과 발에는 돌덩이처럼 무거운 물체를 매달았다.
“솜이불을 덮어야 물속에서 안 떠오른다” “후까”(일본어로 ‘상어’라는 뜻)란 말을 괴한들은 쑥덕였다. “나를 바다에 던져 상어 밥으로 주려는 것”이라는 끔찍한 상상이 스쳤다.
수장(水葬)의 공포에 떨던 그 순간 나는 예수님을 봤다. “성당에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예수님의 옷소매를 붙들고 ‘내가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살려주십시오’라고 간절히 애원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펑! 펑!’ 조명탄 터지는 소리가 났다. “비행기!”라는 외침이 들리고, 배가 미친 듯이 달렸다.
이틀간 현해탄 망망대해를 떠돌던 용금호는 11일 부산 연안에 도착했다. 영문도 모른 채 한국으로 강제 송환된 것이다. 죽음은 모면한 듯 했다.
129시간 만의 극적 생환
내가 감금된 2층 양옥(중정의 서울 근교 안가)에 정보기관원이 찾아왔다.
“우리는 애국청년구국대원이다. 상부 지시가 내려왔다. 집 근방에서 풀어줄 테니 하나부터 열을 센 뒤 눈을 가린 붕대를 푸시고 집으로 돌아가시라.”
괴한들은 서울 동교동 집 근처에 나를 떨어뜨렸다. 13일 밤 10시쯤이었다. 피랍 5일, 정확히 129시간 만에 사람 세상으로 돌아왔다. 바다 3일, 육지 2일 동안 생사를 넘나들다 생환했다.
‘김대중 납치사건’은 정부에서 수사본부를 차리는 등 법석을 떠는 시늉만 한 채 핵심 가담자는 단 한 명도 처벌하지 않은 채 덮어버렸다. 이후 납치사건의 윤곽은 여러 증언과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이후락(1924~2009) 중앙정보부장의 지휘 아래 중정 해외공작원들이 저지른 범행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납치 동기와 실행 과정 등 실체적 진실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첫째 의문: 김대중을 왜 납치했나?
박정희 정권에게 DJ는 눈엣가시였다. 박정희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은 71년 대선에서 94만 표 차로 DJ를 가까스로 물리쳤다. 이에 놀라 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해 장기집권에 들어갔지만, DJ는 망명 투쟁으로 맞섰다.
DJ는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박정희와 유신을 비난하고 ‘한민통’을 결성, 국제적인 ‘반독재 인사’로 부상했다. 박정희 정권은 ‘거북한 존재’로서 김대중 제거를 꾀했고, 납치사건을 감행한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둘째 의문: 박정희는 납치를 지시했나?
김종필(JP, 1926~2018) 전 총리는 2015년 중앙일보에 증언했다. “(DJ의 생환 이튿날인) 8월 14일 오후에 박정희 대통령을 뵈었다. 박 대통령은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대뜸 ‘임자는 몰랐어?’라고 물었다. 박 대통령은 ‘이후락 그자가 서울에 김대중을 데려다 놓은 뒤에야, 나한테 보고하잖아. 나한테 한마디도 않고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라며 화를 감추지 못했다. 그제야 나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박 대통령이 지시했거나 개입하지 않았음을 알고 안도했다.” 〈2015년 7월 13일자 ‘김종필 증언록’〉
JP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박정희의 뜻이나 재가를 받지 않은 채 이후락이 ‘과잉 충성’ 차원에서 일을 저질렀다는 얘기다. 당시 이후락은 ‘나는 새도 떨어트린다’는 말을 듣던 실세였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공권력이 대낮에 도쿄에서 한국의 유력 정치인을 납치하는 건 일본의 주권을 침해한 범죄였다. 이런 중차대한 외교적 문제를 ‘절대 권력자’ 박정희의 허락이나 묵인 없이 감행했다는 가설은 설득력이 다소 떨어진다.
DJ는 “납치사건은 박정희가 지시한 것이 확실하고, 그 목적은 나를 살해하는 것이었다”고 확신했다.
셋째 의문: 이후락의 단독 결행이었나?
생전에 이후락의 말은 오락가락했다. 이후락은 납치사건 직후인 73년 8월 29일 기자회견에서 거짓말을 했다. 납치 사건의 중앙정보부 연루설에 관한 기자 질문에 시치미를 뗐다. “중앙정보부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할 기관은 아니며 그 정도의 양식은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박정희 개입설’을 줄곧 부인하던 이후락은 박정희가 서거한 10·26 사태 이후인 80년 3월 ‘서울의 봄’이 오자 고향 친구인 최영근(국회의원 역임)에게 ‘박정희 지시설’을 털어놨다고 한다. 최영근이 전한 이후락의 말은 대략 이러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이 불쾌한 어조로 김씨(DJ)를 없애라는 취지의 욕설을 했다. 며칠 뒤 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나(이후락)를 부르더니 엄명을 내리는 것이었다. 고민했다. 김씨를 죽였을 경우 그 책임이 언젠가는 나한테 올 것이라는 걸 모를 만큼 바보는 아니지 않은가. 결국 납치를 해서 한국에 그를 데려다 놓는 선에서 명령을 소화하기로 했다.”
이후락은 87년 월간지 인터뷰에서 다시 번복했다.
“박 대통령의 직접 지시는 없었다. 진상을 밝힐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
DJ는 영상 구술에서 이후락의 오락가락에 관해 설명했다.
“그(이후락)는 약은 사람이다. 80년 서울의 봄이 오고 세상이 바뀔 것으로 생각했다. ‘(납치사건은) 내가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고 박 대통령이 김대중을 없애버리라고 해서 할 수 없이 나섰다’고 흘린 것이다. 그러다가 전두환 신군부가 정권을 잡으니까 (박정희 지시설) 발언을 취소한 것이다.”
넷째 의문: 납치인가, 살인 미수인가?
납치의 최종 목적이 암살이었을 정황은 있다. 호텔 납치 현장에서는 대형 룩색 2개, 숄더백 1개, 길이 10m 나일론 끈, 북한산 담배 등이 발견됐다. DJ는 “범인들이 살해해 토막 낸 시체를 룩색에 넣어 나오려는 계획”이었다고 주장한다. 북한산 담배는 북측 소행으로 위장하려는 장치였으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살해 시도는 무산됐다.
2차 살해 시도는 용금호 선상이었다. DJ가 “수장 직전에 예수님을 봤다”는 장소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납치 한 시간 만에 정보를 입수했다. 하비브 주한 미국대사와 그레그 CIA 한국지부장이 한국 정부에 “당신네가 (김대중을) 죽이면 그대로 안 있겠다”고 경고했다. (DJ가 예수님을 본 그 시각에) 일본이 용금호 위로 비행기를 띄운 것은 미국 개입이 있었기 때문에 생명을 건졌다.”
진실 알 방법 사실상 사라져
박정희 지시설과 이후락 단독 결행설을 확인할 직접적인 증거 자료는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던 2007년 국가정보원은 ‘김대중 납치사건 진실규명 보고서’를 내고 “박정희의 최소한 암묵적으로 승인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추정일 뿐이었다. 두 당사자가 이제 고인이기에 직접 증언을 통해 진실을 알아낼 길은 영원히 사라졌다.
이후락에 얽힌 에피소드 하나. DJ 차남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기자에게 들려준 일화다. DJ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이후락이 해외로 도피하려 한다는 정보가 DJ 측에 들어갔다. 납치사건의 후환이 두려웠던 모양이다.
DJ는 이후락 측에 “해외에 안 나가셔도 된다. 국내에서 편히 계시라”고 전했다.
이후락은 DJ 정권에서 납치사건과 관련돼 조사도, 처벌도 받은 적이 없다. 입을 꾹 다문 채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납치사건의 진실을 역사적 미궁에 빠뜨린 채로….
9회 〈두 번의 결혼 … DJ의 두 여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고대훈·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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