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통일부 황당 일감 독식…文의 사람이 尹정책 설계한 꼴"

정진우 2023. 7. 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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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통일부 장·차관을 동시에 교체한 뒤 공개적인 쇄신을 요구한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와 반대로 가는 통일부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실 등을 투입해 1년여 통일부에 대한 다각적 점검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점검 결과 통일부의 인적 쇄신과 조직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문승현 통일부 차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 고위 관계자는 3일 중앙일보에 "윤 대통령이 언급한 '약탈적 이권 카르텔', '대북 지원부' 등의 말은 1년여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며 "신임 통일부 장·차관의 인선은 정부의 국정 기조에 맞는 통일부의 전면 개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文정부' 인사가 '尹정부' 정책 설계"


정부가 통일부의 근본적 체질 개선을 요구하게 된 핵심 배경은 1차적으로 연구 용역 몰아주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전임 정부와 현 야당의 통일·외교안보 라인, 싱크탱크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전문가 그룹이 정권이 바뀐 뒤에도 여전히 통일부가 발주하는 주요 연구 과제를 독식하고 있는 구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며 "비유하면 문재인 정부 대북 정책 입안에 관여했던 인사들이 윤석열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설계를 담당하는 황당한 상황이 지속되는 셈"이라고 전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통일부 복도에서 신임 차관 취임식에 참석했던 직원들이 사무실로 돌아가는 모습. 연합뉴스

실제 중앙일보가 지난해 5월 이후 지난 5월까지 공개된 통일부 발주 외부 용역 가운데 정책 연구와 관련된 주제 13건의 수주 결과를 전수조사 한 결과 절반이 넘는 7건의 연구 과제를 사실상 전 정부와 관련된 인사들이 맡아 진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권의 고위 인사는 "정부 과제의 경우 연속으로 몇 년 이상 같은 연구 책임자나 연구진이 포함되면 제한을 걸 수 있는 규정이 있는데도 이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고 특정 진영에 연구 용역 과제가 쏠려왔다"며 "특히 과거부터 정부의 용역을 사실상 독점해왔던 진영에게만 계속 정부의 대북·통일 정책 설계를 맡기다보니 통일부가 '대북 지원부'가 돼 버린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정부 인사도 "통일 분야의 연구에서 통일부의 과제를 수주하느냐는 해당 연구자 및 기관의 명성에 직결되는 핵심 이익이 걸린 사안"이라며 "윤 대통령이 부처 내 '약탈적 이권 카르텔'을 언급한 것은 이러한 비정상적 수주 구조와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일감 몰아주기는 아직 입찰 정보가 공개되지 않은 최근까지도 계속돼왔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통일부는 지난달 15일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 발간과 관련한 용역 심사를 진행했다. 그런데 외부 심사위원에는 해당 입찰에서 연구 과제를 낙찰 받은 곳과 같은 기관에서 겸임 직책을 맡은 사람이 포함됐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인사는 "해당 인사는 이재명 캠프 정책 설계에 관여했던 인물"이라며 "이재명 캠프 인사가 윤석열 정부의 정책 과제를 심사한 격"이라고 말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김석기·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 4월 2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북한인권 조사기록의 의미 및 북한인권 인식 제고를 위한 민·관·국제사회의 역할' 토론회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뉴스1

통일부는 해당 입찰 과정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결과 발표 이후 뒤늦게 해당 심사위원의 평가 결과를 제외시켰다. 그러나 심사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해당 인사를 제외하더라도 4명의 외부 심사위원이 진보 성향 3명, 보수 성향 1명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원한 여권 인사는 "당시 연구 과제의 입찰가는 3억 4400만원으로 통상 통일부가 발주해온 3000~4000만원짜리 프로젝트에 비하면 10배나 큰 규모의 사업"이라며 "당시 통일부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여권 내 비판 기류를 뒤늦게 확인하고 낙찰을 받은 진영에 '이 사업 이후 과거처럼 입찰받기는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北인권보고서 번역에도 '시큰둥'


정부가 ‘가치외교’ 기조에 따라 중시하던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통일부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통일부는 지난 3월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예산 부족 문제에 시달렸는데, 이에 대해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애초에 통일부가 예산 확보 의지가 없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통일부가 지난 4월 공개한 북한인권보고서 영문판 표지와 면책문구(Disclaimer). 보고서 캡처

본지가 확보한 국민의힘 예결특위 소위원회 위원들의 의견 취합 문서에 따르면 지난해 여당 예결위원들은 북한인권보고서 예산과 관련 "국문판 1만부뿐 아니라 영문판 1000부 발행에 드는 비용 등 2억원의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최초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고, 이를 번역해 전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대통령실의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과 달리 야당과의 협의 과정에서 관련 예산 증액분은 44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이에 대해 통일부 당국자는 "당시 야당이 인권보고서 공개는 물론 번역본 발간에도 반대했기 때문에 예산을 확보할 수 없었다"며 "이 때문에 영문판 보고서를 번역하는 일도 통일부 내 인력들이 자체적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예산 결정 과정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인식은 다르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인사는 “야당의 반대가 있었지만 더 중요한 건 북한 인권의 실태를 고발하는 자체를 부담스러워 하는 통일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영향이 크다”며 “예산이 왜 줄어든 건지 의아해 기획재정부에 문의했더니 ‘통일부가 애초에 예산 자체를 원치 않아 2억 증액분을 지키지 못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미국을 국빈 방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에서 북한에 억류됐다 혼수상태로 풀려난 오토 웜비어 씨의 모친, 탈북민 조셉 김씨 및 북한 인권 전문가들을 만나 북한 인권 간담회를 갖았다. 연합뉴스

예결위에 참여했던 여당 의원도 “통일부가 북한 인권 보고서에 대해선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했다”며 “국문판 인권보고서는 어쩔 수 없이 수용했지만, 이를 번역해 해외에 공개하기 위한 예산 확보와 관련해선 의도적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국회 외통위 소위원회에 참석한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관련 예산 삭감에 대한 입장을 묻는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대해 "수용하겠다", "꼭 필요한 돈이라면 예비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란 답변을 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통일부 당국자는 “원활한 북한인권보고서 발간을 위해 예산 증액의 근거를 국회와 기획재정부에 적극 제출하며 노력해왔지만 결과적으로 기존 요청액(5900만원)보다 오히려 예산이 줄어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며 “예산 심사는 국회 고유 권한으로 예산이 책정된 과정에 대해선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해법은 인적 쇄신"


대통령실 관계자에 따르면 "공무원 출신인 윤 대통령은 직업 공무원에 대한 신뢰도가 워낙 높아서 문제점을 알고도 이를 인사로 해결할 생각이 적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복지부동'을 보여주는 일부 공무원 조직에 대한 인내심이 1년만에 한계에 달한 상황으로 보면 된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지난 2019년 11월 판문점에서 탈북어민 2명을 북한으로 송환하던 당시 촬영한 사진을 지난해 7월 12일 공개했다. 당시 정부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탈북해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추방했다. 사진은 탈북어민이 몸부림치며 북송을 거부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 관계자는 이어 "특히 통일부의 경우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나 탈북어민 강제 북송과 같이 대북 정책의 철학이 반영되는 사건과 관련해 윤 대통령의 우려가 매우 컸던 것으로 안다"며 "결국 1년여만에 지난 정부 당시 해당 사안에 대해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었던 인사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취임하면 대대적인 인적 개편에 나설 것"이라며 "지난 정부에서 임명된 고위 공직자부터 정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이번 인사가 발표되기 한달여 전부터 여권의 핵심 인사들 사이에선 "통일부 내에서 행시 36기 이상은 옷을 벗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공교롭게 현재 통일부 내 1급 이상 고위 공무원 중 전임 정부 때 승진한 인사는 36기 이상, 이번 정부 들어 승진한 인사는 37기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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